김경회 <전 중부대 교수>

중국의 산수비경 장가계를 유람했다.

이름 그대로 중국역사에서 진나라를 멸망시킨 한나라 고조 유방의 토사구팽이 두려워 삼십육계를 놓고 숨어 살았다는 장량의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는 전설이 남아 있는 곳이다.

장가계 관광의 시발지인 무릉원에 도착하자마자 넋을 놓고 바라본 것은 보봉호의 뱃놀이였다. 보봉호는 인공호수다.

두 세군데 산봉 사이 계곡에 높은 둑을 쌓아 물을 가두어 인공폭포와 호수를 조성해 놓은 것이다.

호수는 하늘과 산봉, 물이 합쳐져 짙은 비취색을 띠고 있다.

호숫가에 매달아 놓은 조그마한 나룻배에서 아리따운 지방 토가족 아가씨가 커튼을 열고 나타나 독특한 중국 특유의 음색으로 구슬픈 노래를 몇 곡 들려준다.

그 노래 소리는 함께한 관광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음색이 아직도 귓가에 울린다.

‘황석채’도 아름다웠다. 평지에서 위로 올려만 보다 1000여m 높이의 황석채를 케이블카를 타고 높은 곳에 올라서 내려다보니 장가계의 만봉절경은 한 마디로 절경 그 자체였다.

토가족의 풍습은 남·여 쌍쌍이 놀이를 하다 남자 총각이 마음에 드는 처녀의 발을 되밟으면 OK, 밟지 않으면 NO라는 의미다.

만약 발을 밟은 총각이 마음이 변해 반응이 없으면 총각은 무반응에 대한 벌로 처녀의 집에 들어가 머슴살이 3년을 보내야 된다니 아찔한 풍습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 풍습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어느 상점에 들러 토가족 아가씨의 발을 살며시 밟아 보았다. 그 순간 아가씨는 얼굴이 홍당무가 된 채 도망 가는게 아닌가!

금편계곡의 평지도보산책도 기억에 남는다.

이 산책로의 돌길은 어느 홍콩 화교재벌이 희사 했다고 한다. 몇 군데 볼거리 마련돼 있다. 한 뿌리에서 자란 나무가 두 줄기로 나누어졌다가 다시 하나로 합쳐진 ‘중환수고’, 두 애인이 양쪽 끝에서 따로따로 걸어와서 거의 중심부근에서 서로 만나 데이트한다는 ‘십리상회’, 염료를 쓰지 않고도 파랗게 염색된다는 자초담, 음침한 잡목 그늘에 가려진 곳에서 만년 짝짓기를 하면서 늠름하게 이 계곡을 바라보는 암·수거북이 한 쌍, 이 계곡을 지키며 날카롭게 하늘을 찌르고 엄엄하게 솟아 있는 ‘금편암’ 등….

인간세상에서 꿈꾸듯 황홀한 ‘무릉도원경’이란 바로 여기를 두고 말함이 틀림없었다. 마음 속 깊이 이 풍광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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