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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칼럼-외롭지 않을 침묵<이현수>
동양칼럼-외롭지 않을 침묵<이현수>
  • 이현수
  • 승인 2017.12.10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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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수 한국폴리텍대 청주캠퍼스 학장

(이현수 한국폴리텍대 청주캠퍼스 학장) 누구에게나 어쩔 수 없는 반사회적 성향이라는 것들이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조언이라는 구색으로 강제해서도 안 될 일이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저마다의 기질일 수도 있으려니와 딱히 설명하기 힘든 개성일 수 있다. 나는 한때 의례적 일들로 사람을 만나는 게 내키지 않았던 적이 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귀차니즘에 빠져있고 싶은데 타인의 이야기를 흥미로운 척, 애써 듣는 일이 내키지 않아서 그랬다. 가식적이기도 하려니와 사회적 관계를 위한 억지 경청이 내겐 달갑지 않았다. 사실, 타인과의 대화를 위해 마음의 문을 연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생각해보라. 관계의 발전을 위해 우리는 어떤 경우는 타인과 많은 말을 나눈다. 그러나 그 말들은 자신의 입장과 설득을 위해 기술적으로 위장되고 가공된 말일 때가 많지 않은가. 타인의 이야기를 진중하게 기다리며 경청하는 침묵은 타자와의 수용능력을 향상시킨다. 침묵과 수용은 소통과 한 축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장과 입장이 득세하는 시대에 쉽지 않은 일이긴 하다.

사회 속에서 대중의 분노는 대게가 정당하다. 다만 대중이 주목하는 유명인에 대한 말초적 분노는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가공된 여론에 의해 누군가를 매장시키는 분노가 들불처럼 번지는 사회는 야만의 사회다. 그 도탄의 카르텔은 가공할 정도여서 종종 소름이 돋는다. 인간의 성난 언어는 거칠고 차갑기에 반드시 흉터를 남긴다. 분노가 휩쓸고 간 자리는 냉소가 도사린다. 컴퓨터의 키보드 앞에서 적개심으로 혼자 진저리 치지만 현실 세상의 관계에선 이윽고 침묵하는 시대, 이때의 침묵은 비효율적이다. 그 결과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외로움을 수반한다.

한때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단어는 ‘공감’이었다. 타인과 감정을 주고받는다니, 인간의 지독한 이기주의의 본성 앞에 얼마나 막연한 허상인가라고 말이다. 외로울 때는 견뎌보자고 마음 다독이며 스스로를 달랬다. 그걸로 부족하다면 단순하고 고된 일을 하면서 머리를 비워냈다. 그러나 그 끝에 감내해야 될 부산물은 외로움이었다. 혼자의 힘은 성찰과 자성일 때 적절할 뿐,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서는 혼자의 힘으로는 역부족임을 깨닫게 된다. ‘공감의 힘’은 그래서 위대하다. 불의 앞에서는 더 요긴하다. 그럴 때 우리 사회의 ‘나선형 성장’은 덤이다.

듣고 싶은 이야기보다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사람일수록, 그래서 결국 누구에게도 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없게 된 사람이 많은 사회일수록 슬픔이 깊이 차오를 것이다. 여문 달이 지듯이 시대의 그늘에서 그들의 슬픔도 모질게 늙어갈 것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있으나 귀 기울일 생각은 없는 시대, 아무 말없이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제법 괜찮은 처세다. 이때의 침묵은 그들도 나도 외롭지 않다. 때론 단단하기까지 하다.

존재가 미울 때는 혼자 마시는 술로 족하지만, 세상 전체가 슬플 때는 그것으로 부족하다. 누군가 만나 슬픔과 고통을 나눠야 한다. 그 태도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나잇살이 들어서야 알아차렸다.

나의 젊은 시절은 장미의 봉우리처럼 무난하고 무탈했다. 눈물 흘린 날이 많았고, 웃음이 희귀한 날도 많았지만, 그것은 주로 사랑과 사회에 대한 것이었다. 말하고 싶은 분노는 거대했고 문장은 요란했으며 단어는 많았다.

그러나 자본과 탐욕으로 막강한 세상을 상대할 지성은 허약했고, 그걸 버티어낼 감성도 제대로 여물지 못했다. 그때의 생채기는 두고두고 인간에 대한 진정성을 저해했다. 지금도 이 산을 넘어서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우리 대부분에게 12월은 혼란스럽다. 한해 삶의 돌아봄이 존재에 대한 연민으로 세밑 끝자락에서 들이닥칠 수도 있다. 잘 살아내지 못했다는 냉소의 회오리에 휘말리면 필연적으로 외로워진다. 인간의 기억은 편익 추구의 자세로 늘 상 덩어리져 있다. 관계의 단절이나 사회적 실패의 경험들은 쉬이 솎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슬픔을 들쑤시게 되기도 한다. 추수 끝난 논들에서 농약을 치는 꼴이다. 슬픔은 그 기원을 가리지 않고 서로 알아차리므로, 그것에 질식당하지 않으려면, 12월만이라도 알 수 없는 심연을 침묵으로 관찰하는 기간이 필요하다.

각자도생을 도모하면, 가진 것이 많은 이들만 살아남는다. 지키려는 사람들만 생존한다. 우리 모두가 외롭지 않을 새해를 위해 하고픈 말보다 타인의 아픔에 끈덕진 침묵의 자세를 견지해보자. 그래야 세상이 덜 외로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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