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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에세이-‘수학여행의 공포’와 행정직 선생님
동양 에세이-‘수학여행의 공포’와 행정직 선생님
  • 박승렬
  • 승인 2017.12.10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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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렬 <충주 학생회 관장>

교육행정직 공무원으로 37여년이 지나며 정년퇴직을 몇 년 앞두고 있는 나에겐 공직생활 중 잊을 수 없는 수학여행의 공포와 함께 특별한 제자가 있다.

OO중학교 행정실장으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그 학교에서는 매년 2학년들을 대상으로 설악산에 수학여행을 다녀오곤 했다. 어린 아이들도 있고 맞벌이 부부라 집을 비우기 어려운 상황인데도 선생님들의 요청도 있었고 교장선생님께서도 내가 함께 가야 든든하다며 몇 번씩 당부하셔서 할 수없이 처제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설악산 등반이 포함되어 있는 수학여행이라 떠나기 전날까지 혹시나 일어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안전사고(근육통, 급체 등)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오래전에 배웠던 수지침 책을 꺼내 읽어보고 사혈침 등을 준비하여 여행길에 올랐다.

운명의 장난 이었는지 예기치 않은 사고가 발생한 것은 수학여행 2일째 되던 날이었다.

설악산은 수학여행시즌이면 전국에서 많은 학생들이 오기 때문에 가끔씩 다툼이 생기기도 하고 안전사고의 발생 위험이 높아 인솔자들은 긴장하게 되고 교대로 불침번 근무를 서가며 학생들을 보호하게 된다. 근무계획에 따라 나는 첫째 날 불침번 근무를 하여 너무 피곤했던 터라 다음날 저녁 일찍 잠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세면장에서 샤워를 하고 있는데 학년부장 선생님(여)이 새파랗게 질린 모습으로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시며 “실장님 큰일 났어요! 학생이 세면장에서 쓰러졌는데 숨을 쉬지 않아요.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죠? 하시는 것이 아닌가!

“큰일이 생길수록 침착해야 하니까 진정하시고 차근차근 이야기해보세요.”하자 “어떤 여학생이 아이들과 말다툼을 하다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세면장에서 세수 중 넘어져 급히 교감선생님 숙소로 옮겼는데 숨을 쉬지 않아 교감선생님께서 실장님께 연락해보라”고 해서 급히 달려 왔다는 것이었다.

대충 옷을 챙겨 입고 사혈침을 가지고 급히 교감선생님 숙소로 가서 학생의 상태를 살펴보니 정말 숨이 멈춰 있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할 시간도 없었다. 급한 마음에 옛날 운동할 때 합기도 관장님께 배웠던 응급조치로 인중을 몇 번 누른 후 사혈 침을 꺼내 열손가락과 열 발가락을 모두 사혈하고 숙소사장님께 “급히 차를 운전해 달라”고 요청해서 속초 의료원으로 긴급후송을 하기 시작했다.

가는 도중에 ‘아차’ 하는 생각이 든다. ‘혹시 저 학생이 죽으면 나는 어떻게 되는 것 인가?’ ‘의사도 아닌데 괜한 짓을 하여 사혈을 한 것은 아닌가?’ ‘나중에 학생 부모님이 내가 응급조치를 잘못하여 문제가 생겼다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아! 이제 내 공무원 생활도 여기서 끝나는가 보다”고 생각하니 아내와 가족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어쩌다 내가 오기 싫은 수학여행을 따라와서 이런 일이 생긴 것인가?

고뇌와 침묵의 시간이 흐르며 차는 계속 질주하고 있었다. 그 시간이 왜 그리 길게 느껴지던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학년부장 선생님이 “어머! 실장님” 하고 놀라 부르는 목소리에 얼른 뒤를 돌아보니 그 학생이 꿈틀하고 몸부림을 치는가 싶더니 “으앙” 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이제 저도 살았습니다. 하고 마음속으로 기도를 드렸다.

그 학생은 속초의료원으로 가서 이런 저런 기초 조사를 받게 되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자초지정을 묻더니 큰일 날 뻔 하셨다며 그나마 응급조치를 잘하고 빨리 병원으로 와서 다행이라고 하신다. 이후 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고 그렇게 한바탕 소란을 피운 후 수학여행은 끝이 났고 학교로 돌아온 나는 교직원과 학생들 사이에서 영웅이 되어 있었다.

그해 5월 15일 스승의 날! 나는 그 학생으로부터 “살려주신 은혜에 감사드린다.”는 편지를 받았다. 오히려 운이 좋아 살아난 그 여학생에 대하여, 겁도 없이 용감했던 내가 감사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닐 런지….

그런 저런 인연으로 당시 그 반 반장이자 학교 학생회장은 꼭 가르치는 분만 선생님이 아니라며 행정직원인 나를 “진정한 선생님”으로 부르며 30대 중반에 들어선 지금까지도 매년 스승의 날이면 편지 또는 전화로 안부를 물어 오고 있다. 군복무 때는 어머님을 통해 안부를 묻고 편지를 보내기도 하는 열성 제자다. 인하대를 졸업하고 몇 년 전 공무원에 발령받아 근무하고 있는 그 제자는 첫 월급을 탔다고 찾아와 식사도 함께하기도 했고, 올해도 어김없이 스승의 날 안부전화를 하고 얼마 전 추석에도 찾아와 오랫동안 이런 저런 옛 이야기를 나누고 갔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2018년도 무술년 새해가 시작된다. 공직생활 하는 동안 때론 힘들고 고통스런 날들로 서러움과 마음고생도 많았지만 행정직원으로서 ‘진정한 선생님’ 소리를 들으며 살아가고 있는 나는 그래도 가슴 뿌듯한 인생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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