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내년 취업 예정 학생들 거취 불투명” 우려
중소업체 인력채용 ‘발등의 불’…산학협력 기피도
“폐지 아닌 제도 개선 통해 근본적인 해법 찾아야”

▲ 5일 오전 국회에서 바른정당 정책위원회 주최로 특성화고 현장실습 제도 개선을 위한 정책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동양일보 이도근 기자) #. 충북의 한 특성화고에 다니고 있는 A(18)군은 교육부의 갑작스러운 현장실습 폐지 결정이 반갑지 않다. 홀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그는 조기 취업해 집안사정에 보탬을 주려 특성화고에 진학했지만 전격적인 폐지 결정으로 막막한 심정을 토로했다. A군은 “취업이 시급한 학생들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제도만 없애면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제주도 고교 현장 실습생 사망사고 이후 교육당국이 내년부터 특성화고의 조기 취업형 현장실습을 전면 폐지키로 하면서 일선 특성화·마이스터고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11일 충북도교육청 등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1일 사회관계장관 회의를 갖고 조기 취업 형태의 직업계고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제도를 전면 폐지키로 결정했다. 3학년 2학기부터 시작해 6개월가량이었던 기간은 최장 2개월로 줄어들고, 취업률 위주로 이뤄지던 특성화고 평가와 예산 지원체계도 손보기로 했다.

6일 오전 제주 서귀포산업과학고에서 열린 현장실습 도중 사고로 숨진 이민호군의 영결식에서 유가족들이 헌화 후 오열하고 있다.

학생들의 안전과 학습권 보장을 위해 전격적인 폐지를 결정했다는 게 정부 설명이지만 정작 특성화·마이스터고는 “당장 내년부터 취업을 해야 하는 재학생들의 거취가 불투명해졌다”고 반발하고 있다.

충북지역 직업계 학교들도 정부 발표 이후 깊은 고민에 빠졌다. 정부 방침대로 학습위주의 교육을 하려면 산·학 연계 프로그램이나 강사 섭외 등 취업 관련 교육 커리큘럼을 대폭 손봐야 하는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 등까지 겹쳐 점점 학교 신입생 미달률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지원율이 더 떨어져 특성화고·마이스터고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실제 최근 충북도교육청의 2018학년도 특성화고 원서접수 결과 총 정원 3855명 선발에 지원자는 3476명으로 379명이 미달됐다. 일반 전형의 현도정보고가 122명이 미달됐고, 증평공고 111명, 제천디지털 전자고 51명, 충북상업정보고 36명 등이 미달됐다.

도내 한 특성화고 교사는 “현재 많은 특성과고들이 신입생 미달사태를 겪고 있는데 취업에 유리하다는 당근이 사라진다면 누가 특성화고에 지원하겠냐”고 토로했다.

현장실습을 진행해 온 업체들도 불만을 내비치고 있다.

매년 산학협력 프로그램 등을 통해 특성화고 학생들을 채용해 온 중소업체들은 당장 젊은 인력 수급에 차질을 우려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안전사고 발생 가능성이 매우 낮은 소프트웨어나 IT 관련 업체들의 경우에는 업종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반발하고 있다.

한 산학협력 업체 관계자는 “학생들이 제대로 일을 배우려면 6개월 정도 실전 중심으로 가르쳐야 하는데 달랑 한 달 정도 이론 중심으로 가르친 학생들을 어떻게 채용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일선 교사들도 기업들이 산학협력을 기피하게 될 수 있다고 염려했다.

일선 학교에선 무조건적인 폐지보다는 특성화고의 장점인 현장실습과 취업을 살릴 수 있도록 단계적 추가적인 별도 보완책을 마련하는 등 제도 개선이 먼저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도내 한 마이스터고 교사는 제주 현장실습 학생 사망에 대해 안타까워하면서도 “이번 결정은 ‘산업수요 맞춤형 인재 양성’이라는 마이스터고의 설립 취지에도 영향을 줄 수 있거 걱정스럽다”며 “실제 현장실습을 통해 우수기업에 취업하는 경우가 많은 등 취업 연계 효과가 큰 만큼 폐지가 아닌 제도 개선을 통해 학생들의 안전과 학습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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