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송 에른스트국제학교 교장

(한희송 에른스트국제학교 교장) 민주주의는 사회유지의 기본개념이다. 그런데 사회라는 것은 하나의 개인이 아니라 여러 명의 구성원에 의해서만 성립되므로 민주주의는 단체주의원리가 된다. 단체의 의사는 그를 구성하는 개개인의 의견을 산술적으로 합한 것임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구성원 개개인의 의견을 무시해야만 하는 속성을 가진다. 만일 구성원 모두의 의견이 동일하다면 이는 이미 민주주의의 성립의 필요조건으로부터 벗어난 일이므로 민주주의를 논의할 가치조차 없어지게 된다.

단체의 의사를 결정하는 방법으로는 '다수결'이 가장 합리적 수단으로 채택되었다. 다수결은 필연적으로 그것이 표명하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의 개인적 의사를 묵살한다. 그래서 단체의견은 다수의 의견으로 집결되어 표명된다. 그것이 민주주의이다.

이러한 생각이 성립되는 논리적 바탕은 '사회'라는 유기물의 존재가치이다. 사회적 동물이란 의미는 각각의 사회구성원이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자유를 보장받을 경우에 의미가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생물의 역사가 객체의 자유를 극대화 할 방법으로 찾아낸 최고의 개념이 '사회'이고 이의 성립과 유지를 담보할 방법으로 찾아낸 것이 '다수결'이어서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할 수단으로써의 가능성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필연적으로 생산해 내는 이 사각지대를 위해 등장한 것이 자유주의이다. 다수의 의지로부터 외면당한 개인은 민주주의에 의해 다수결에의 강제적인 복종을 인용(認容)하던지 아니면 사회에서 멀어질 기회만을 부여받는다. 이들의 의견에 사회라는 단체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자유주의에서만 찾아질 수 있다. 따라서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양산된 개념이며 동시에 '다수결'에 속하지 않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배려이다.

자유주의가 개인주의적 속성을 갖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하나의 국가에서 2 + 3의 답에 관해 논의가 벌어졌다고 하자. 단지 몇 명만이 그 답이 5임을 천명한 반면 대다수의 국민은 유행에 편승하여 4라는 것을 답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회는 무엇을 답으로 정해야 할 것인가? 논리적으로는 당연히 5가 답이다. 그러나 이 사회의 유지를 위해 우리는 민주주의 원리를 외면하면 안 된다. 민주주의 원칙에 의하면 이 문제의 답은 4여야만 한다. 정치는 민주주의를 따르는 것이 원칙이다. 정치지도자가 진실을 근거로 그 답이 5라고 한다면 그 나라의 민주주의와 그 자신의 정치적 생명은 위협받을 것이다. 반대로 민주주의 원칙수호와 자신의 정치적 생명유지란 이익에 부응하여 4라고 한다면 그는 국민과 진리를 속이는 것이 된다. 이 두 가지 위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것이 정치이다.

교육이란 숭고한 개념이 가야할 방향을 스스로 택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교육은 위의 문제에서 바보스럽게도 5가 답이라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동의하지 않는 순간에도 스스로 5라는 것만을 답으로 여기는 것이 교육이다. 정치는 태생적으로 민주주의의 원칙에 의해 지배당한다.

그러나 교육과 교육개혁의 개념과 방향은 민주주의적 원칙과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정책의 수립은 민주주의 원칙에 의해 지배를 당한다. 진리와 진리를 찾는 방법에서 늘 진리가 상위개념이다. 교육과 교육정책 중 늘 교육이 상위개념이다. 그런데 교육이 민주주의적 다수결의 원칙에 부응하여 교육정책보다 하위개념이 되면 이미 그 것은 교육이란 이름을 가진 다른 개념이다. 교육이 정치에서 해결방법을 찾으면 안 된다. 올바른 교육개혁은 선거를 통해 당선되는 정치인들의 정치행위로 그 근본적 방향이 설정되는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구조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그 사회가 아직 교육적으로는 본질에 가까이 갈 수 없는 후진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올바른 교육개혁의 장(場)안에 편입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의미이다.

본질과 진리에의 탐구에 경도된 지식인들이 우리의 사회 안에서도 존재한다는 사실은 교육이 교육정책보다 고귀한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함으로써 증명된다. 이 증명과정을 현재의 한국에서 보는 것보다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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