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덕 시인 시집 ‘블랙홀에 뜨는 노래’

(동양일보 박장미 기자) “뿌연 때깔 점점이 깨진 몰골로 춤추다 까칠까칠한 검버섯이 별꽃처럼 싹트고 오래된 노래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귀를 쪼아 대고 있다 // 별의별 것들 감추고 함몰된 광대뼈에서 기어나온 울음 낱낱이 변사체임을 알리고 있다 햇살 사이로 그림자를 드리운 꽃들 떨어지고 있다 //…중략…// 낡은 외투를 벗고 길을 열다 날개깃 유혹의 자락을 끊어낸다 떨리는 가슴 파고드는 찬란한 불꽃의 노래로 끓어 넘치는 생명의 멜로디다//”(시 ‘블랙홀에 뜨는 노래’)

정연덕(76) 시인이 최근 시집 ‘블랙홀에 뜨는 노래’를 펴냈다. 2005년 서울 용산중에서 교직생활을 마무리한 그는 지난해 고향인 충주에 돌아와 이 시집을 냈다. 이 책은 한평생 교사이자 시인으로 살아온 그가 희수(喜壽)를 얼마 앞두고 8년 만에 펴낸 열한 번째 시집이다. 4부로 구성된 이 책에는 80여편의 시가 담겨 있다.

평생 시를 쓰며 지내 온 정 시인. 첫 시집부터 그는 꾸준히 기존 관성에서 벗어나기 위한 변모를 거듭하며 새롭고 독특한 시 세계를 보여준다. 10여년간 하이퍼텍스트 문학을 공부해 온 정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표제작인 ‘블랙홀에 뜨는 노래’ 등 하이퍼텍스트 문학의 특징을 보이는 일련의 시들을 선보인다.

하이퍼텍스트 문학은 전통적인 이야기의 선형적 구조를 벗어나 독자가 선택해서 읽을 수 있고 그 독자는 다시 생산자가 되기도 하는 등 과거 개개의 작품을 통해 추구돼 오던 문학이 아닌 의도적으로 열린 구조, 빈자리를 갖는 문학이다. 쉽게 접할 수 없는 하이퍼텍스트 시가 주는 ‘낯섦’이 이 책을 읽는 하나의 묘미로 다가온다.

기존 관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치열하게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며 살아온 정 시인의 삶의 여정과 시적 자세를 엿볼 수 있는 작품과 고향, 부모 등 어떠한 대상을 향한 정 시인의 뜨거운 사랑의 욕망을 읽어낼 수 있는 작품도 있다.

또 ‘부여 궁남지 연꽃들의 변주’, ‘백제의 아낙’, ‘다시 6월이 오면’, ‘기마인물도’ 등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하거나 역사의 현장에 깃든 예술혼과 민족정신을 시로 표현해 보여준다.

김석환 시인은 “이 시집에 일관적으로 흐르는 것은 대상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욕망”이라며 “또 그는 작품에 민족정신과 역사정신을 형상화 해 보여줌으로써 진정한 예술정신은 물론 이 시대의 시인을 포함한 예술가의 자세를 넌지시 제시하고 있다”고 평했다.

정 시인은 홍익대, 청주대, 고려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1976년 월간 ‘시문학’으로 등단해 ‘달래강’, ‘박달재’ ‘망종일기’, ‘달빛 타기’, ‘겨울새는 잠을 깬다’, ‘흘러가는 산’, ‘곱사등이 춤꾼’ ‘샤론의 꽃바람’ 등을 펴냈다.

시문학상, 한국예총 예술 공로상, 홍익문학상, 목련문화예술상, 오늘의 스승상, 홍조근정훈장 등을 수상했으며 교육부 국제교육진흥원 겸임교수, 서울 용산중학교장, 한국시문학문인회 회장, (사)한국현대시인협회부이사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사료조사위원, 국제PEN한국본부 자문위원, 한국현대시인협회 지도위원, 한국기독시인협회 자문위원 등을 맡고 있다.

정 시인은 “앞으로는 고향인 충주와 성경·역사 인물 중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을 소재로 한 시를 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시문학사, 141쪽,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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