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막내딸애가 제 신랑감을 따라 나가더니 영 들어오질 않는다. 딸애가 어제저녁에 내일 남자친구가 인사하러 올 것이라고 하기에 그저 그 말이 반가워서, 어 그러냐고 선뜻 대답하고 오늘 아침부터 기다렸다. 정말 데리고 왔는데 인상이 괜찮았다. 실은 괜찮고 말고가 없이 무조건 오케이를 놓으려던 참이었다. 읍내 전자회사 사무원으로 나가는 이 막냉이가 삼십이 4년이나 넘도록 시집소리를 꺼내놓지도 못하게 해왔던 터라 그저 눈치만 살피며 은근히 이때나 저때나 하고 기다리던 판인 데다 갑작스런 일방적인 통보이긴 하지만 제가 제 눈으로 보고 사귀다가 그래도 격식 차린다고 부모께 인사시키러 온다는데 그러면 감지덕지지 늙은이들 눈에 안 든다고 퇴짜 놓고 말고 할 게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흐뭇한 표정을 보이며 점심까지 해먹였는데, 잠깐 제 신랑감 바양하고 곧 들어오겠다던 애가 어둑하도록 오질 않으니 두 내외가 끌탕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영감, 무슨 일 없겠쥬?” “그러게, 왜 여태꺼정 안 와 그래, 제 남자친군가 뭔가 차 세워 논 데 데까지만 바래다주구 온다구 그랬잖여!” 그러자 밤 9시가 다 돼서야 들어왔다. “워트케 된겨, 무슨 일 있었던겨?” “무슨 일은, 아무 일 없었어.” “근데 왜 이리 늦은겨?” “요 앞에 차 세워 논 데까지만 바래다주려고 했는데 차에 타래잖어. 그래 탔더니 청주까지 내빼잖아.” “청주가 예서 육십 리가 넘는디!” “그래서 집에 가겠다구 하니까 그럼 차루 여기까지 데려다준다면서 아까 차 세워 논 데까지 왔잖어. 근데 어떻게 또 혼자 보내, 그래서 또 청주까지 바래다준다구 하구 같이 갔지.” “그럼 서루 그 짓을 여태꺼정 한 겨?” “그러다가 저녁때가 되구. 그래서 읍내서 저녁 같이 먹구, 나 여까지 태워준다구 그래서 지금 온 거라구.” “그럼 그 남자친군가 뭔가가 여기 집 앞까지 와서 들여다 보지두 않구 그냥 간 겨?” “내가 그냥 얼른 가라구 그랬어. 그렇잖으면….” 이때 옆에 있던 내자가 얼른 끼어든다. “잘했다 잘했어. 여기 또 들렀다 가믄 너 또 따라 나갔을 것이구, 그러믄 또 그쪽에서 여까지 또 올 것이구, 서로 그러다 날 샐 것 아니냐.” “아니, 그러니까 임자말은 서루 밤 바래기하다 날 샌다 이거여?” “그럴 거 아뉴 옛날 누구들 마냥.” 이 말을 듣고 딸애가 불쑥 나선다. “‘밤 바래기’는 뭐고 ‘옛날 누구들 마냥’이라는 건 또 뭐야?” “어, 그런 말이 있고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러게 그게 뭐냔 말여?” “옛날에 말이다. 두 사돈지간이 있었는데, 한 사돈이 다른 사돈집에 갔단다. 사돈 간이니 얼마나 어렵고 귀한 손님이냐. 또 얼마나 반가운 손님이냐. 그래서 둘이 양가 수 빠뜨리지 않으려고 예의 갖추며 이야기하다 저녁까지 먹고 헤어질 때가 돼서 사돈 바양을 가는데, 옛날에는 ‘사돈집과 뒷간은 멀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뭔 말인고 하니, 사돈집 사이에는 말이 나돌기 쉽고 뒷간은 고약한 냄새가 나기 때문에 멀수록 좋다 이런 말이제. 그런데 이 두 집은 이웃이었던지 동구 밖까지만 바래다주면 될 것을 예의 차리느라고 집에까지 바래다줬겠다. 그러니 상대방 사돈두 그냥 돌려보낼 수 없어 그도 또 사돈을 그의 집에까지 바래다주었다는구나. 이러니 또 상대방 사돈두 다시 그 사돈집까지 데려다주구. 이렇게 서로 밤새도룩 왔다 갔다 했다는 거지. 그래서 ‘이 편에서 바래다주면 곧 이어 다음번에는 상대편에서 바래다주고’ 하여 자꾸 되풀이되는 걸 ‘사돈 밤 바래기’라 하는데 여기서 ‘밤 바래기’ 라는 말이 나온 것이고, ‘옛날 누누들 마냥’ 이라는 건 이 두 사돈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인제 알었느냐?” 그런데 영감은, 내자가 한 ‘옛날에 누구들 마냥’ 이라는 말은 바로 영감 내외들이라는 걸 안다. 실은 이 영감 내외가 총각처녀시절 이웃마을이었던 양가가 정혼을 하고 얼마 뒤였다. 신랑감이 색시 감을 찾아왔는데 저녁을 먹고 돌아갈 때 색시가 바양을 하러 나갔다. 그런데 둘이 지금말로 휠에 감겼던지 둘이 신랑감의 동네 뒷동산까지 와서 사랑을 속삭이다 돌아올 땐 다시 신랑감이 색시 감 뒷동산까지 바래다주면서 사랑을 속삭였다. 이러기를 서로 반복하다 보니 새벽녘이 되었던 것이다.

영감은 내자가 이런 둘의 사실을 딸 앞에서 폭로하기 전에 얼른 말꼬리를 돌린다.

“얘, 넌 시집갈 다 큰 지지배가 늙은 부모한테 이랬어 저랬어 하고 말꼬리가 아직도 왜 그 모양이냐?” 그러자 딸램이도 한 마디 한다. “알았어요, 근데 그러는 아부진 다 큰 시집갈 딸한테 지지배가 뭐예요 지지배가?” 이러는 걸 듣고 마나님도 한 마디 한다. “인자 서루 조심해야겄네. 영감두, 너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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