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 시인

(나기황 시인) 12월, 한 장 남은 달력도 절반이 지났다.

연말이 다가오면 들뜨고 즐거운 기분 보다는 왠지 허전하고 섭섭한 센티멘털에 빠지게 된다. 한 해 동안 살아 온 삶의 성과가 기대치에 못 미치는 탓도 있지만 휘 닥쳐 지나가는 세월의 속도를 감당하기 어려워서다.

지구상의 생물 가운데 유독 인간이라는 종(種)만이 세월을 인식하고 자신의 삶에 가치를 부여 한다는 것이데, 그런 속성 탓에 ‘2017년, 올해는’이라는 빤한 얘기에도 신경이 쓰인다.

사실, 연말에는 새롭게 생성되는 뉴스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게 된다.

올해의 인물, 올해의 영화, 올해의 가요, 올해의 트렌드, 올해의 뉴스 등 크고 작은 사건사고부터 다양한 사회현상에 이르기까지 미래지향적이기 보다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반성이나 곱씹어 새기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뉴스를 대하는 태도도 ‘또 한해가 가는구나.’하는 감상주의(Sentimentalism)에서 ‘그래서, 뭐가 달라지는데’하는 시비조 냉소주의(Cynicism)사이를 오가며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7년 올해는’ 아무리 가리려 해도 가려지지 않고, 곱씹을 때마다 전혀 다른 감정으로 살아나는 무엇이 있다.

2017년, 참 대단한 한 해였다. 숨 가쁘게 변화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왔다.

낚시로 말하면 정치·경제·사회·문화 어느 포인트에서 캐스팅을 해도 ‘뼘치’급 뉴스는 채비가 바쁠 정도로 줄줄이 올라왔던 한 해였다.

크기로 보나 마릿수로 보나, 지구촌 어디서도 ‘대한민국湖’만큼 입질이 활발했던 어장은 없었다. 기억하려 애쓰지 않아도 그냥 딸려오는 뉴스만 펼쳐놓아도 한 마당 가득이다.

금년 들어 ‘촛불’이 활활 타오르더니 ‘태극기’의 가림 막을 뚫고 ‘탄핵정국’을 이끌어 냈고, 적폐청산의 덫에 걸려 분리수거하듯 하루가 멀다 하고 굴비처럼 엮여 법정을 드나드는 낯익은 얼굴들을 보게 된다.

진흙더미에 묻혀있던 세월호가 수면으로 떠올랐다.

생존자는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유가족은 진실규명에 목이 메고, 미수습자는 애끓는 가슴속을 유영하던 세월호가 미수습자 수습과정에서 벌어진 ‘유골은폐’까지 세월호의 망령이 따라붙었다.

‘노망난 늙은이(dotard)-트럼프와 ‘병든 강아지(sick puppy)'로 바뀐 김정은이 험한 말을 주고 받으며 일촉즉발의 전쟁놀이를 멈추지 않고 있다.

‘알파고’가 자라서 이제 인공지능이 사람 알기를 우습게 알아도 하나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됐다. 4차 산업시대를 맞아 큰 산을 넘고 있는 중이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성추행, 성폭행이 전염병처럼 번지더니, ‘미투페인(#MeToo-성추행고발캠페인)’의 칼날이 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를 겨누기 시작했다.

타임지가 뽑은 ‘올해의 인물’도 바로 미투운동의 시발점이 된 ‘침묵을 깬 폭로자들(The Silence Breakers)’이 선정됐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국정원 댓글사건도 ‘물 반, 고기 반’의 ‘뉴스 풍어(豊漁)’에 한몫을 했다.

사회현상으로는 이런 저런 걱정을 달고 사는 ‘램프증후군(Lamp Syndrome)’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났고, 홧김에 쓰게 되는 ‘먹어’ ‘입어’와 같은 ‘시발비용’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지난 달 ‘포항지진사태’로 수능이 일주일 연기되는 등 재난에 대한 경각심도 높아졌다.

‘방탄소년단’이 미 유명 신년맞이쇼 ‘뉴이어스 로킹 이브’에 출연할 만큼 음원시장을 휩쓸며 대박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암호 화폐 비트코인 시장이 과열되다 못해 폭발직전에 이르렀다.

나의 올 한 해는 어땠을까. ‘2017년, 올해는’ 하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보자.

센티멘털리즘에 빠질 필요도 없고 시니컬한 태도를 취할 일도 아니다.

보름 남짓 남은 기간 동안 12월이 주는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생각하며 2017년을 잘 마무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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