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택 전 제천교육장

(최성택 전 제천교육장) 공무원 사회에서는 벽지(승진 등 인사에 영향을 주는 오지나 도서 벽지 등)라는 것이 있다 면 소재지가 3급 벽지이고 면내에는 2급 그리고 1급 벽지도 있었다.

면장이 1급 벽지인 마을을 돌아보고 와서 한 말이 생각난다. 모처럼 면장이 오자 그 마을의 촌로가 아픈 곳과 증상을 얘기하면서 하소연하더란다.

그러나 면장은 오랜 지방행정 경험은 있지만 의약에 관한 지식이 없어 아무런 도움을 못 줬다고 하면서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이 생각났다고 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지식과 정보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꽤 배운 사람도 자기 분야의 일이 아니면 모르는 것이 많고 그 중에서도 전문용어를 보통용어로 알아 혼동 할 때가 많다.

지난 8월 합참 합동 작전 과장, 국방부 정책 차장과 정책 기획관, 등 군사작전과 정책분야에서 오래 근무한 전 합참 작전 본부장 신원식 예비역 중장의 인터뷰 기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다.

인터뷰 기사 중 중요한 몇 가지를 보면 먼저 ‘미국은 핵을 개발해 위협하는 북한을 조만간 공격 할 것인가’하는 문제에 그는 “지금 당장의 가능성은 제로”라고 했다.

이유는 군 이동과 전개 상황 그리고 주민 대피 등의 문제 때문이다. 주한 미국인 철수 등 자국민에 대한 사전 보호 조치 없이 북한을 공격하면 미국 대통령은 탄핵 감이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2016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같은 자리에서 한 민구 국방장관은 “있다”, 이순진 합참의장은 “없다”고 했는데 이것은 전문용어 해석상의 문제라고 했다.

적의 공격이 임박 했을 때 적의 제한 된 표적을 미리 때리는 게 ‘선제적 타격’ 이며 이는 작전의 기본이므로 국방장관이 “있다”고 답한 것이다.

반면에 공격의 징후와 관계없이 때리는 것은 ‘예방타격’이다. 의원들이 군사적 개념을 모르고 사용한 ‘선제적 타격’ 을 합참의장은 ‘예방타격’으로 받아들여 “없다”고 대답 한 것이다. 용어의 혼란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는 ‘전시작전권(전작권)환수’를 들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전작권 환수로 군사주권을 되찾겠다’고 했고 문제인 대통령도 임기 내에 전작권 전환을 하겠다고 했다.

신 장군은 ‘전작권’을 주권 문제로 연계한 것은 ‘정치적 쇼’라고 했다. 유럽에서 전쟁이 나면 나토(NATO) 사령관이 작전권을 갖는다. 자존심이 센 프랑스도 이를 받아들였다.

전작권은 전략적 측면과 전쟁 수행의 효율성 관점에서 판단 할 사안이다. 설령 우리에게 전작권이 넘어왔다 해도 전쟁이 나면 미7함대 사령관이 한국 해군을, 미7공군사령관이 우리 공군을 통제, 지휘한다.

우리로서는 구경도 못한 미 항공모함이나 핵 잠수함을 지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동안 전 정권에서 ‘신뢰 프로세스’라는 말을 쓴뒤 소위 식자층에서 이 말을 무분멸하게 쓰는 경우들을 보았다.

‘신뢰프로세스’란 북한과의 관계에서 정치, 국방 등의 민감한 분야에서는 회담을 해도 접근이 어렵기에 조림, 농업기술, 생활개선 등의 비교적 정치색이 옅은 분야에서 도와줌으로 그들의 벌거벗은 산야의 녹화와 농업 분야의 생산성증대, 그리고 낙후 된 생활을 합리적으로 운영하도록 하여 점차 신뢰를 쌓아가고 그것을 기초로 대화와 통일을 모색 하자는 것인데 뜻도 모르면서 남용하는 경우가 많다.

1998년 IMF 사태의 책임을 묻는 청문회에서 강경식 경제부총리에게 책임을 추궁하던 의원들이 경제 용어도 몰라 역습을 받고 망신을 당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이런 점은 비단 용어만의 문제가 아니고 전문성의 문제다.

그렇게 보면 요즈음 유행하는 전문성 없는 사람들로 채워진 배심원제도나 국가 대사를 논하는 각종 위원회, 그리고 별 실속도 법적 효력도 없는 MOU 체결 등도 생각해 볼 일이다.

사람 잘 보는 것도 전문성인데 전문지식도 도덕성도 없는 사람을 추천하여 청문회장에서 발가벗겨지는 일이 더는 없어야겠다. 선진국은 천천히 가되 갔던 길 뒷걸음질 쳐서 되짚어가지 않고, 천천히 가도 제대로 가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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