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유영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아침이면 습관처럼 안경부터 찾는다. 오늘도 눈을 뜨자마자 손을 뻗어 침대머리맡을 더듬거리다가 ‘아참 안경이 없지’라는 생각에 스마트폰을 집어 들어 맨눈으로 문자를 점검해 본다. 신기하다. 안경이 없이도 깨알 같은 글씨들이 또렷이 보인다는 게.

안경을 써야만 하루가 시작되던 세월이 40년인가, 50년인가.

언제부터인지 안경이 삶에서 가장 소중한 물건이 되었다.

안경이 없으면 책이나 신문은 물론, 스마트폰의 그 많은 정보도 무용지물이고 거리로 나가면 간판의 글자가 두 개로 겹쳐 보여 운전도 쉽지 않으니 안경에 의존하는 삶이 되었다는 것이 옳은 표현이리라.

그렇게 안경과 함께 살다보니 어느 땐 안경을 썼다는 사실을 잊고 안경을 쓴 채 세수를 하기도 하고, 어느 땐 안경 위에 로션을 바르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수년 전 해외여행지에서 안과의원의 원장과 동행한 적이 있었다.

여행 짐을 꾸릴 때마다 안경이 큰 짐이었다. 평소 쓰는 안경과 돋보기, 돗수를 넣은 선글래스, 그리고 강한 자외선을 차단하기 위한 짙은 색 선글래스, 수면안대까지 몇 개의 안경을 들고 가면서 그 불편을 토로했더니 원장이 말했다.

“모두 자연의 뜻이에요. 젊을 때는 세세한 것들을 보면서 일을 해야 하지만, 나이가 들면 가까이 있는 것들은 너무 자세히 보지 말고, 먼 곳을 보며 살라는 뜻이니 순리에 맞춰 살면 됩니다.”

혹시 눈에 좋은 약이나 눈이 좋아지는 방법이 있을까하여 질문한 우문에 대한 현답이었다.

그 뒤 눈이 침침하거나 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그 원장의 말을 생각하며 노화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 생각했었다.

그러나 평생 문자중독자로 살아온 처지라서 읽고 싶은 책을 마음대로 읽지 못하고, 눈을 부비면서 작은 글씨들을 보다 보면 ‘아, 이제 다 늙었구나’ 싶어서 우울해졌다.

그런데 우연찮게 노안수술을 한 지인들을 보면서 포기하고 살던 눈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젊은 사람처럼 안경 없이 책을 읽고, 맨눈으로 스마트폰의 정보들을 뒤져보는 것을 보면서 나도 수술을 해볼까라는 용기가 생겼다.

마침 백내장이 진행되어서 백내장을 핑계로 노안수술이라는 것을 했다. 노안수술이란 혼탁해진 수정체 대신 다초점 인공렌즈를 바꿔넣는 것으로 안경을 눈 안으로 집어 넣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수술을 하고 자리를 잡을 때까지의 불편한 과정을 견디고 난 요즘, 아침마다 ‘개안’을 했다는 생각으로 즐겁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조간신문을 샅샅이 보고 스마트폰 문자를 확인하고, 일상으로 사용하는 상품들의 설명서를 꼼꼼이 들여다보는 재미가 생겼다.

그리고 생각해본다. 오래된 물건도 수리하고 고쳐 쓰면 새 물건이 되듯 노화된 인체도 교정하고 보정하면 새로운 기능을 회복할 수 있는데, 굳이 자연의 현상이라고 노화를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수술을 집도한 의사는 노화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했다. 100세 시대에 아직 봐야할 것, 읽어야할 것, 써야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오랜 시간을 미리부터 포기하고 흐린 눈으로 불편하게 살겠느냐고.

하긴 눈 뿐인가. 임플란트로 음식먹는 재미를 느끼고, 무릎 인공관절로 나들이를 다닐 수 있는 것을 보면 노화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우매한 일인지.

노화가 무엇인가. 늙어가면서 일어나는 각종 쇠퇴적인 변화를 말한다. 인간은 성숙기를 지나면 생리기능이 저하되고 청각 후각 유연성 신경전달 속도가 느려지며 세포조직 골격근 장기의 중량이 줄고 폐활량이 감소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일들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노력과 의지로 재생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 규칙적인 운동, 절제된 식생활, 마음열기, 적절한 병원진료로 건강을 관리하면 노화를 막을 수는 없지만, 늦출 수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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