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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글품쟁이<이동희>
풍향계-글품쟁이<이동희>
  • 이동희
  • 승인 2017.12.17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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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희 논설위원 / 강동대 교수

(이동희 논설위원 / 강동대 교수)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대화는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잘 통하는 사람도 말이 없이 의사소통이 가능할까? 매우 잘 통하는 사람들은 그저 눈빛 만 보고도 서로 통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 100% 통하는지는 의문이 든다. 눈빛 만 보아도 알 수 있다는 사람끼리의 대화가 진정 100% 맞는 말일까?

인류최초로 인간이 서로간의 대화를 위하여 사용한 언어는 무엇일까?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라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두뇌 혹은 새로운 아이디어의 창조와 융합 혹은 서로 소통하기 위한 언어의 사용 등등이 이유 일 수 있다.

인류는 초인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능력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수식어를 갖게 한 것 같다. 20세기 이전만 해도 인간만이 언어를 사용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동물도 식물도 서로 대화한다고 한다. 인간사이의 대화를 위한 말로 언어 그리고 글을 표현하면서 인류는 만물의 영장이 되었고 급성장 하였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매우 훌륭하다. 이러한 언어에는 매우 아름다운 말이 있다. 이러한 다양한 말 중에 글품쟁이라는 말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글품쟁이란 무엇인가? 글품쟁이란 글 쓰는 데에 드는 품이나 노력을 파는 사람을 말한다.

주변에서 몰상식하게 글쟁이하고 하는 말이 이를 낮추어 이르는 말이다. 즉 글쟁이는 글품쟁이를 낮잡아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비아냥하는 소리이다.

좋은 말이 있는데 구지 그런 말을 써야할지 의아스럽다. 이런 의식은 한편으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듯이 유식하고 똑똑한 척하는 사람이 보기 싫어서 생긴 비속어 인 듯하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고 벽에도 귀가 있고 천장에도 눈이 있다고 하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이는 말을 조심하라는 의미이다.

말의 힘이나 말의 중요함을 일컬어서 신중하게 조심해서 쓰라는 말이다. 말은 사람에 의하여 전달되면서 왜곡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요즘 언론도 국민의 관심과 질타를 받고 있으며 일반인 사이의 대화는 서로간의 언쟁의 씨앗이다. 그래서 말은 처음 내 뱉은 사람보다도 전달하는 사람이 더 나쁘다고 한다.

앞서 얘기 했듯이 글쟁이는 글품쟁이를 낮잡아 표현하는데 요즘 같은 시대에 작가라는 말이 부담스러워 취미로 편안하게 글을 쓰는 사람을 인터넷상에서 1인칭으로 지칭할 때 애용되기도 한다.

글을 쓰는 사람과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글쟁이와 그림쟁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진정한 장인(匠人)을 친하게 표현하는 애칭(愛稱)으로 봐주면 더욱 좋을 듯하다.

그렇다면 글을 쓰는 글품쟁이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 흔히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사람이 작가인데 단순히 글을 쓴다는 것 자체를 특별한 일이라 여기면 매우 부담스럽고 두렵다.

글 쓰는 일 자체를 특별하거나 고난이도의 능력을 필요로 한다면 어려울 것이지만 그저 본인의 느낌과 감성을 언어를 이용하여 표현한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글을 쓴다. 어린 시절 일기, 편지 반성문, 감상문 등등 많은 기회를 통하여 글을 써왔다.

글쓰기를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없다. 보고서, 학술지, 논문지 등을 제외하고 나머지 대부분을 창작이라고 하면 그냥 단순히 본인의 생각이나 감정 등을 편안히 글로 써내려 가면 된다.

글은 마음속의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이고 어떤 특별한 재주를 요하는 것이 아니니 그저 글이 좋아 글로 표현하면 된다.

요즘 같은 시대에 글품쟁이는 저술가 저작가 문필가 작가 저자 집필자 필자 라이터 글쓴이 글쟁이 등이라 부를 수 있다.

더불어 시대가 변하다 보니 광고사본 제작 기계의 설명서 웹 사이트 문서를 만드는 사람 사진작가 일러스트레이터 등도 포함할 수 있다.

글품쟁이에게 서재는 상처이고 향기일 수 있는데 상처가 흉터로 남으면 인생을 잘못 산 것이고 향기로 남으면 남에게도 기쁨이 되고 내 자신에게도 커다란 덕목이 된다고 김 홍신 작가는 말했다.

글과 관련된 아름다운 말에 눈물이 눈가에 넘칠 듯이 그득한 꼴은 “글썽” 남의 물음이나 요구 등에 분명하지 아니한 태도를 나타낼 때는 “글쎄” 글로써 사귀는 벗은 “글벗” 글을 읽고 쓰고 하면서 생각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일은 “글자살이”라고 한다. 우리가 살면서 그저 돌잡이에서 연필을 잡았다고 훌륭한 학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글을 쓰면서 열심히 살다보면 행복한 글품쟁이의 글자살이 삶은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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