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윤 종

꿈 /  허윤종


꿈 하나를 접어야만 할 때
우리는 또 하나의 꿈을 꾸어야 한다
볕 좋은 날을 시기하는 소나기처럼
때때로 고난이 다가와 곁에 앉아도
그대 꿈에 이별을 고하지 마라
바람이 날개가 꺾인 채 날지 못하는 건
꿈을 잃었기 때문이다
누웠던 풀잎이
바람의 뒷덜미를 부여잡고 끝내 일어서고
난간 위를 걷던 달팽이가
햇살의 발길질을 이겨내는 것이 바로 꿈이다
달동네 빛바랜 전단지에도 여전히 꿈은 살아있다
도저히 이대로는 눈감을 수 없다는 듯
다 지워져가는 글자를 딛고 서서
그 끈을 놓아버린 누군가를 나무라고 있다
찢긴 날개로도 창공에 소리치는
잠자리의 함성이 들리지 않는가
삶이란 경우의 수가 아니라
반드시 보내야만 되돌아오는 메아리 같은 것
상처 없는 꿈은 꿈이 아니다
내게 온 꿈들이 상처투성이가 되어가는 건
온전해지기 위한 몸부림이다
수많은 꿈을 접었다 하더라도
꿈 하나를 더 꾸고 있다면 그게 바로 삶의 이유다
 

허윤종

시 당선 소감 / 허윤종
“별을 향해 일어서는 넝쿨의 몸부림 배울 것”

사람이 꿈을 꾼다는 것은 이 세상에 자신을 있게 해준 모든 인연들에 대한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때론 그 꿈을 잊기도 하고 때론 이루지 못한 꿈을 밀쳐둔 채 살아왔습니다. 어디를 향하려는 건지도 모를 어두운 터널을 걸으며 현실에 일상을 저당 잡히기 일쑤였습니다.

한참 늦은 나이에 시(詩)를 만났습니다. 시와의 첫 대면에서 제게 물어오던 커다란 질문에 한마디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시의 질문은 다양했고 저의 대답은 초라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 답을 찾기 위해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보고 앞날의 방향을 가늠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는 제가 밀쳐두었던 꿈을 되살려 질책하며 다가왔고 그에 응답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삶의 이유를 정하지 못한 채 피어있는 꽃이 있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한참 후에야, 저마다의 빛깔과 모양새로 저마다의 꿈을 꾸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삼켜버린 세월만큼 어느새 후회의 크기도 커져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한걸음 내딛고 싶었습니다.

벼랑 위의 바람도 숱한 헛디딤 끝에 그 자리에 올랐으리란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풀뿌리를 움켜쥐며 별을 향해 일어서는 야윈 넝쿨의 몸부림을 배우려 합니다. 모든 이들이 꿈을 통해 삶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생각하며, 저 역시 그 출발선에 다시 섰다고 생각합니다.

 동양일보사가 제 어깨 위에 얹어준 묵직한 무게감의 기분 좋은 짐을 도닥여 봅니다.
그 짐이 힘겹기도 하겠지만 새로운 도전이라 믿습니다.

세상의 응달에서 힘들어 하는 모든 이들에게 꿈을 나눠주는 그런 시를 위해 부단히 정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1966년 전북 장수 출생
● 전주교육대학교졸업
● 전북 장수장계초 교장


시 부문 심사평 / 심사위원 : 정연덕 시인
“꿈의 형상화와 성찰 기법 갖춰”

정연덕 시인

이번 신인문학상 공모에 응모한 작품(934편)은 작년(651편)에 비하여 많았다. 그만큼 응모작이 늘어난 것을 갖고 생각할 때 퍽 다행한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작품의 질은 평년작 수준이다. 야심찬 패기와 실험성 있는 작품은 발견하기 힘들었다.  
  선자의 손에 남아 마지막까지 우열을 겨룬 작품은 원기자의 ‘폐선廢船’, 강형옥의 ‘끝없는 유랑’, 곽광덕의 ‘고해성사’, 그리고 허윤종의 ‘꿈’이란 작품이다.
  원기자의 ‘폐선’은 바닷가 갈대숲에 만선의 고기를 놓고, 비릿한 그 냄새가 부끄러워 먼 길을 돌아 집으로 가고, 등대를 버리고 떠난 선주는 소식이 끊기지 오래, 삶이란 그림자도 없이 밀려왔다 사라지는 너울 같은 거, 생각해보며, 바닷가 당신의 발자국 저문 노을이 쓸려간 삶을 진단하고 상기시킨다.
  강형옥은 ‘끝없는 유랑’에서 시베리아의 횡단철차가 달리고 달려도 종착지가 보이지 않고 배고픔과 눈보라 아스라한 끝으로 향하고, 고려인 강제이주의 참상을 그리며, 그래도 고향에 숲 이룰 그날을 손꼽으며 꿈꾸던 꿈을, 강제이주80주년에 꿈의 실체를 찾고 있다.
  곽광덕은 ‘고해성사’에서 송정리역 평화 구두방에 십자가는 없다며, 그간 걸어온 길속에서, 오행의 해독법을 넘었다고 너스레를, 타향살이 끝에 고향 찾은 이야기, 광나게 닦는 것은 흐려진 운명선 같은 것이라고, 별의 묵도소리, 역전에서 무궁화호 숨소리를 오버랩 시켜 증거를 제시한다.
  허윤종은 ‘꿈’에서 달동네 빛바랜 전단지에도 꿈은 살아있다며, “꿈 하나를 접어야만 할 때 / 또 하나의 꿈을 꾸어야 한다”  “난간 위를 걷던 달팽이가 / 햇살의 발길질을 이겨내는 것이 바로 꿈이다” “내게 온 꿈들이 상처투성이가 되어가는 건 / 온전해지기 위한 몸부림이다”라 했다, “수많은 꿈을 접었다 하더라도 / 꿈 하나를 더 꾸고 있다면 그게 바로 삶의 이유다”라고 주창하고 있다.
  우리의 삶은 꿈꾸고 그 꿈을 일궈내는 인고의 과정이다. 자기 정체성을 세우고 실현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자존의 존재추구를 일깨워내는 능력이야말로 참된 삶의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상처 없는 꿈은 꿈이 아니다” 이런 판타지를 구축해 내는 그의 시적 묘사와 기법에 박수를 보내며 당선작으로 민다. 더욱 정진하여 대성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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