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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수필 당선작- 덤
2017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수필 당선작- 덤
  • 이재은
  • 승인 2017.12.19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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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재 은

덤 

 겨울은 기별도 없이 오고 있었다. 겹겹의 푸른빛으로 빛나던 하늘도, 햇솜처럼 닿아주느라 분주하던 햇볕도 어느새 창백하리만치 투명하다. 코끝을 타고 들어와 손끝까지 저리게 하는 이른 된바람이 떠나는 가을을 절감하게 한다.
아무리 손끝을 감싸 쥐고 주물러 보아도 임시방편일 뿐이다. 감각이 둔해진 것은 손끝뿐인데 온 몸에 냉기가 감도는 듯하였다. 이럴 땐 알싸하게 목구멍을 타고 들어와 알차고 뜨거운 부피로 온 몸을 일어나게 해 줄 것이 필요하다. 진한 생강 향을 떠올렸다. 비스듬히 비추던 햇볕이 금방이라도 누워버릴까 걱정이 되었다. 생강을 사기위해 시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마음만큼 조급해졌다.
소란함이 들끓어 편안함이 우러나는 곳이 시장이다. 골라 골라, 싸다 싸, 구경은 거저, 맛없으면 공짜 소리가 시장 입구부터 질펀하게 깔려 나왔다. 장사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녹아있는 우렁찬 목소리를 따라가지 않을 재간이 있을까. 말들의 잔치가 벌어지고 흥정하는 소리가 가락을 타는 시장에서 나는 생강을 사러 온 목적도 잊은 채 자유로운 이방인으로 느릿느릿 시장통을 활보하고 다녔다.
김장철은 김장철인가 보다. 여기저기 배추, 갓, 쪽파며 무가 여름의 푸성귀인 양 시퍼런 혀를 빼고 늘어졌다. 간판도 없는 채소 좌판 상인은 얼굴도 목소리도 젊은 청년이었다. 나이 지긋한 할머니 손님은 엄마로, 중년의 아주머니에게는 누님이라고 부른다. 배추를 사는 엄마에게는 갓을, 알타리를 고르는 누님에게는 쪽파를 곁들여 내놓는 넉살도 보통이 아니다. 누군가의 손주 같기도 아들 같기도 한 청년의 패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시절을 역행한 호칭에 들뜬 손님들이 흥정도 않고 값을 치르는 모습은 당연해 보였다.
철커덕 철커덕 소리가 맞은편에서부터 거리를 좁히며 다가왔다. 흥이 붙은 얼굴의 엿장수였다. 큰 가위를 휘두르며 목판에 담긴 엿을 대패 쇠 날로 툭툭 치면 엿가락은 먹기 좋게 잘려 나갔다. 둔탁한 소리만큼 다루기 쉽지 않을 것 같은 가위를 자유자재로 쓰며 노랫가락에 사람들의 시선까지 엮는 엿장수는 곡예사이자 입담꾼이었다. 호기심에 한 봉지 사고 싶어졌다. 한 봉지에 담기는 정량이 있기나 했을까. 돈만큼 적당히 엿을 떼어줄 마음은 애초부터 장삿속에 없었던 것 같다. 엿판을 들썩이게 하는 엿장수의 흥에 맞춰 손님은 고갯방아만 잘 찧어 주면 된다. 즐거워하는 만큼 봉지에 엿이 담기니 못할 것도 없지 않은가.
실한 대추가 흔한 계절이다. 가을 햇살의 애정이 담긴 붉은 껍질 위로 갈바람이 드나든 주름이 쪼글쪼글하다. 톡 쏘면서 쏴하는 맛의 생강과 부드럽고 달큼한 맛의 대추는 궁합이 그만이다. 이집 저집 대추의 모양새가 어차피 비슷비슷하니 좌판 상인의 인상을 살피는 것이 좋다. 후덕한 얼굴에 풍채가 좋은 상인 앞으로 갔다. 두 손으로 됫박을 바쳐가며 수북이 담아 올렸다. 봉지에 넣을 때도 떨어질 세라 신중하게 담는 모습이었다. 그러고도 한 줌도 모자라 한 줌을 더 넣어 주는 것이 아닌가. 됫박의 중량을 계산하던 나의 머릿속 깜빡임이 꺼지는 순간이었다.
시장통을 빠져나오자 인도의 가장자리에는 노점상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빨강 노랑 하양이 연속으로 돌아가는 파라솔 아래가 그들 각자의 영역인 듯싶었다. 줄지어 늘어선 노점의 끝에는 하늘에 펴 받칠 것도 없이 장사를 하는 노인도 있었다. 볕조차 비껴가는 구석자리에 바람이 어찌나 왔다갔는지 노인이 기댄 나무는 벌써 졸가리만 앙상하였다. 축 늘어진 전봇대 전선 같은 그림자는 노인의 머리 위로 드리워져 있었다. 맨바닥에 찬기를 깔고 앉은 탓인지 세운 두 무릎 사이에 묻은 얼굴은 눈만 살짝 보일 뿐이었다. 휘주근한 노인의 모습과는 달리 머리채를 단단히 묶어 똬리를 틀어 놓은 마늘은 들어찬 알맹이로 미어질 듯 보였고, 방파제의 둑처럼 아귀를 맞춰 쌓아 올린 생강에서는 코를 움찔거리게 만드는 향이 휘발되고 있었다.
생강을 살피는 척 쪼그리고 앉았다. 얼마냐는 물음에 노인은 뭐 하려는지 되레 묻는 것이다. 끓여 마실 요량이라고 하니 연륜의 레시피를 요긴하게 일러주었다. 생강 담을 봉지를 펼쳐 든 노인의 손이 그을린 솥단지처럼 검고 오래된 부뚜막처럼 갈라져 있었다. 씨알 굵은 생강을 골라 담아 주는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되었다. 가늘고 질긴 손은 무척 컸다. 손님의 눈대중으로도 중량은 초과였다. 건네받은 봉지를 염치 있게 바라보고 있으니 ‘가져가, 나는 더 주려고 파는 거야’라며 봉지를 밀어내는 시늉을 하는 것이었다.
다 식은 무릎 사이로 파고드는 노인의 얼굴에서 겸연쩍어 하는 미소를 보았다. 속 깊은 덤의 고갱이인 양 하얀 미소였다. 끓기 시작한 주전자는 도르륵 도르륵 밝은 소음을 낸다. 열기가 띄워 올리는 생강이 서로 부딪치며 맛과 향을 내는 소리일 것이다. 주둥이로 빠져나온 희뿌연 김이 생각의 도화지로 펼쳐진다. 줄기와 가지만으로 우뚝 서 있는 나무 곁에 시간의 흠결처럼 거칠고, 떨어지는 세월처럼 앙상한 노인의 모습이 정물처럼 그려진다. 정적이고 많은 여백을 담은 그림은 한층 깊고 너그러운 느낌이다. 자신의 그릇에서 기꺼이 더 내어주고 마음까지 얹어주면서 흥정을 하지도 생색을 내지도 않는 도타운 덤의 색깔로 채색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에서 향이 배어 나온다. 마음 구석구석까지 온기를 전하는 진한 덤의 향이다.


수필 당선 소감 / 이재은
“두려움을 발판으로 마음에 흔적 남기는 글 쓸 것”

이재은

덜컥 겁이 났습니다. 신인문학상에 당선이 되었다는 소식에 왜 겁이 났을까요.
저는 스스로를 삐딱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쁜 것을 예쁘게만 보지 않고, 다정한 온기에도 몸을 움츠리며 기분 좋은 소리에조차 귀를 기울이는 것이 쉽지 않았으니까요.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모두 부정적인 마음의 심지에서 발화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고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뇌리에 물결치는 일상의 소리들, 가슴에 습작해 놓았던 풍경들, 손끝으로 전해진 온도와 무늬가 각기 다른 느낌들을 글로 나타내고 문장으로 밑그림을 그려 보았습니다. 나쁘지 않았습니다. 조금 거칠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방법이 글쓰기였습니다.
아직도 마음은 푸접스럽기 이를 데 없습니다. 따뜻하고 다감한 글을 쓰기에 많이 부족한 사람으로서 이런 큰 상을 받아도 되는 것일까 하는 두려움이 앞선 모양입니다.
두려움이라는 부담을 발판으로 홀연히 스미지만 마음 어딘가에 흔적을 남길 수 있는 글을 쓰도록 도약하겠습니다.
예민한 아내를 무던하게 바라봐 준 남편과 걱정 많은 엄마의 손을 언제나 의젓하게 잡아 준 아들 현우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무엇보다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주신 동양일보와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 1976년 충북 청원 출생
● 홍익대학교 졸업
● 바람직한 여성상 공모전 우수상 수상
● 도민백일장 장원 수상
● 대덕백일장 동상 수상
● 책 읽는 청주 공모전 우수상 수상

 

수필 부문 심사평 / 심사위원 : 조성호 수필가
“일상의 주변에서 문학을 찾다”

조성호 수필가

수필의 소재는 먼데서 찾을 필요가 없다. 자연과 일상사의 사소한 것에서 얼마든지 얻을 수 있고 연상하여 깊은 사고력도 취할 기회를 갖게 된다. 평시 주의를 기울인다면 모두 문학 작품이 된다.

이재은의 ‘덤’은 생강 향을 내려고 시장에 들른 감상을 뛰어난 묘사력을 살려 화려한 문체로 표현하였다.
우리말을 잘 살려 쓴 담백한 수필이다. 그저 시끌벅적하기만 하려니하는 예상과는 달리 인정이 살아 있는 전통시장의 넉넉한, 푸근한 정감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덤이 예전 감성을 불러 일으킨다. ‘휘주근한 노인의 모습과는 달리머리채를 단단히 묶어 똬리를 틀어 놓은 마늘은 들어찬 알맹이로 미어질 듯 보였고, 방파제의 둑처럼 아귀를맞춰 쌓아 올린 생강에서는 코를 움찔거리게 만드는 향이 휘발되고 있었다.’ ‘노인의 손이 그을린 솥단지처럼검고 오래된 부뚜막처럼 갈라져 있었다.’ 단지 아쉬운 점은 글 쓰기의 기본인 맞춤법, 띄어쓰기에 더 유의했으면 싶다. ‘~인 양’, ‘질 세라’, ‘듯싶었다.’로써야 한다. 그럼에도 깔끔한 문장이 호감이 가 당선작으로 민다.

우리 토속어를 잘 쓴 송종태의 ‘장다리꽃’은 가난한 소녀를 장다리꽃에 비유하여 기구한 운명을 표현하고 있는점이 스토리텔링으로서 인상 깊다.
거쿨지게, 무지렁이, 도래솔, 자드락, 암암하다, 쓰레할, 햇귀, 자닝스럽다, 속바람, 너울진, 애옥한… 일상 잘 쓰지 않는 말을 살려 쓴 점은 큰 장점이다. 장애 동생과홀시어머니 뒷바라지에 생애를 바친 모습에 천착한 작가의 뜻도 갸륵하다.

강별모의 ‘곤줄박이의사랑’은 냉방 실외기 받침대에 날아와 둥지를 튼 곤줄박이에 사랑을 기울이며 관찰한 내용에다가 자신의지난날과 지적 자식을 둔 친구의 경우를 잘 접목하고 있다. 새의 자식 사랑을 보며 교훈을 받는다.

작품 응모하는 분들은 한 작품을 여기저기 내는 경우도 있는데이건 상식에도 어긋나고 도리가 아니다. 동시에 두 군데에 입상이 되어 둘 다 당선 취소된 적도 있다. 낙선된 작품은 부족한 점을 다시 보완하여 전체적으로 개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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