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영

나는 한국인입니다

“야, 저기 다니엘 지나간다!”
다니엘은 태권도장 아이들의 아주 큰, 공통된 관심사였다. 태권도장 너머 학교 아이들의 관심사이기도 했다. 다니엘이 동네에 이사 온 지 3일째라는 걸 감안해도 지나친 관심이었다. 아이들은 다니엘이 하는 모든 행동을 지켜보고, 그걸 그날의 대화거리로 삼았다. 다니엘은 아무래도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지만, 가끔은 귀찮다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태권도복을 입은 아이들이 태권도복을 입은 다니엘 뒤를 병아리처럼 따라다녔다. 다니엘이 움직일 때마다 허리춤에서 검은 띠가 흔들거렸다.
“뭐냐. 남아공, 너도 다니엘한테 관심 있냐?”
나도 모르게 다니엘을 오랫동안 쳐다보고 있었는지, 태권도장에 다니는 아이 하나가 불쑥 내 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눈빛에는 심술이 가득했다. 재현이었다.
“다니엘 안 보고 띠 봤어. 생긴 게 까매서 까만 거에 끌리나보지.”
내가 이렇게 대답하자 재현이는 웃음을 터트렸다. 자식, 뭘 좀 아네. 그 뒤로 재현이가 무어라 더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남아공. 아이들은 나를 이렇게 불렀다. 아버지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오신 분이라, 내 얼굴이 그쪽 사람들과 닮아있기 때문이었다. 한때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라고 주장했지만 아이들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재현이의 심술 맞은 표정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려버렸다. 태권도가 시작되기까지 5분이나 남아있었다. 그동안 아이들은 다니엘을 둘러싸고 질문을 퍼붓고 있었다. 매운 거 잘 못 먹어? 영어 잘해? 미국 가봤어? 야구 좋아해? 너희 엄마도 키 커? 번데기 발음 한 번 해봐…….
“얘들아. 시작하자!”
관장님께서 상담실에서 나오며 소리를 높였다. 아이들은 다니엘과 관장님을 번갈아보다가 우르르 태권도장 한가운데로 몰려갔다. 나도 구석에서 일어나 대열의 바깥쪽으로 걸어갔다. 다니엘은 내 옆으로 와서 섰다. 곁눈질로 본 다니엘의 얼굴을 하얬고, 또 머리카락은 연한 갈색이었다. 눈동자도 꼭 머리카락처럼… 다니엘의 모습을 살펴보고 있는데, 고개를 돌리는 다니엘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관장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옆얼굴이 따끔따끔했다. 나는 괜히 식은땀이 나는 것 같았다.
“얘들아. 대회가 얼마 남지 않았어. 다들 연습은 잘 되고 있니?”
“관장님! 저 짝 좀 바꿔주세요. 남아공이랑 못하겠어요! 까매서 잘 안 보여요!”
관장님의 말을 자르고 재현이가 손을 들었다. 아이들 사이에서 와르르 웃음이 쏟아져 나왔다. 관장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공간에서 유일하게 웃지 않는 것은 나 하나뿐이었다. 늘 똑같았다. 나는 인상을 쓰고 그 아이와 관장님을 흘겨보다가, 문득 다니엘도 웃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니엘은 관장님을 바라보며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래도 품수가 맞는 사람들끼리 해야지 공평하지. 여기서 검은 띠인 친구는 재현이 너랑 현수뿐인걸.”
“남아공, 아니, 현수 말고 다니엘도 검은 띠인데요, 관장님!”
다른 아이가 목청을 높였다. 곳곳에서 맞아, 하고 수군거리는 소리와 짝을 바꿔달라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나와 다니엘을 번갈아 쳐다봤다. 나는 인상을 풀고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들은 내 표정이 좋지 않을 때 더 기세등등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나는 다니엘을 돌아보았다. 다니엘은 여전히 잔뜩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다니엘도 검은 띠네. 하지만 다니엘 의견도 들어봐야 하니까, 너무 몰아가진 말자. 다니엘은 어떻게 하고 싶니? 재현이랑 짝해서 연습할래?”
“아뇨. 저 현수랑 짝하고 싶은데요.”
헉, 하고, 갑자기 아이들이 숨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재현이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니엘을 쳐다보았다. 그 와중에 나를 보는 애들은 없었다. 있어도 아주 잠깐, 그리고 관장님과 재현이를 번갈아봤다. 나 또한 놀란 표정으로 다니엘을 바라보았다. 관장님은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다니엘은 그런 관장님을 대신해 나에게 대신 의사를 물어보았다.
“나랑 짝할래? 쟤랑 하지 말고.”
다니엘은 눈짓으로 재현이를 가리켰다. 재현이의 얼굴은 거절당했다는 부끄러움 때문인지 시뻘게져있었다. 나는 관장님과 재현이, 그리고 다니엘의 얼굴을 차례대로 살펴보았다. 관장님은 여전히 곤란해 하고 있었고, 재현이는 이제 화인지 부끄러움인지 모를 표정으로 식식거리고 있었다. 나를 쳐다보는 다니엘의 표정이 아까보다는 부드러웠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지 뭐.”
그렇게 나는 다니엘과 대회를 준비하는 짝이 됐다. 주변에서 우리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지만, 그 정도는 다니엘이나 나나 아무렇지 않게 무시할 수준이었다. 나와 다니엘은 서로의 발차기 자세와 정권 자세를 봐주었다. 다른 아이들이 쉴 때도 우리는 계속 연습했다. 다니엘도 나도 그리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탓이었다. 그때 벽에 기대앉아 우리를 보던 애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야. 근데 남아공은 대회 나가면 남아공 대표로 나가냐?”
“다니엘은 미국 대표고?”
“대박. 그러면 우리 태권도장에서는 삼국이 출전하는 거네. 쩐다, 진심.”
나는 그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 다니엘이 든 더블미트에 이전보다 더 세게 발차기를 한 것 같기도 했다. 북이 찢어지는 것처럼 요란한 소리가 났다. 다니엘이 조금 흔들린 것도 같았다. 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다니엘에게 손을 뻗었다.
“야, 괜찮아?”
“됐어. 뭐 이런 거로.”
“그래도. 미안해.”
“미안하면 쟤네 무시나 해.”
다니엘은 우리를 보며 숙덕거리는 애들을 고갯짓했다. 그 사이에는 재현이도 있었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다시 다니엘을 돌아보았다. 다니엘의 표정은 차분했다. 야, 우리 잠깐 화장실 가자. 다니엘은 더블미트를 바닥에 내던지고 내 어깨를 툭 건드렸다. 걸어가는 것도 나보다 빨랐다. 나는 잠시 재현이와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다니엘을 따라 화장실로 걸어갔다.
“쟤네 말하는 거에 하나하나 반응하지 마.”
“하지만 열 받잖아. 넌 안 그래?”
다니엘은 화장실에 가자마자 문을 잠가버렸다. 아이들이 따라왔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크게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다니엘은 나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다니엘은 문에 귀를 댄 채 화장실 밖에 아이들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것에 열중했다. 화장실은 고요했다. 다니엘은 그러고 나서 한참 뒤에 나를 돌아보았다.
“열 받지, 당연히. 근데 그러면 걔네가 더 좋아하잖아.”
“내가 가만히 있어도 지들끼리 좋아하던데? 걔넨 그냥 날 남아공이라고 놀리는 게 재밌는 거야. 아빠가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람이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 사람이라고 말해도 안 듣는다니까? 걔네한테 중요한 건 사실이 아니라 그냥 놀릴 수 있다는 거, 그래서 그냥 지들끼리 재밌는 거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점점 목소리가 커졌다. 다니엘 또한 그걸 느꼈는지, 나에게 소리를 낮추라는 듯 손을 휘적거렸다. 나는 다니엘과 화장실 문을 번갈아보았다. 당장은 아이들이 없어도, 어차피 조금만 지나면 아이들이 몰려올 거였다. 하다못해 한두 명이라도 꼭 그럴 거였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톡 쏘듯 다니엘에게 속삭였다.
“네가 뭘 알아? 너희 엄마는 미국인이라며. 애들이 어제 나한테 뭐랬는줄 알아? 어제 다큐멘터리에서 내 친구들이 나왔다고, 우리나라에서 불법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 이야기하더라. 그러면서 다니엘 너 같은 백인들은 예능에 나오는데 우리 같은 애들은 다큐멘터리에 나온다고, 더러운 깜둥이들이랬어.”
이야기를 하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일부러 더 눈을 부릅떴다. 눈앞이 흐려졌다가 다시 뚜렷해졌다. 그러는 와중에도 바깥에서 아이들이 이야기를 들었을까 싶어 걱정이 됐다. 하지만 작게 말했으니까 아무도 못 들었을 거야. 속으로 그런 생각을 되뇌면서 다니엘을 노려보듯 바라보았다. 아까보다 다니엘의 표정이 어두워진 게 느껴졌다. 나는 콧물을 한 번 훌쩍였다.
“걔네가 멍청해서 그래. 그리고 우리 엄마는 러시아인이야. 피부가 하야면 다 미국인인 줄 아는 애들한테 뭘 바라겠냐? 피부 하야면 다 영어 써? 매운 거 못 먹어? 야구 좋아하고 미국 가봤어야 해? 웃기지도 않아.”
다니엘은 수도꼭지를 돌려 물을 틀었다. 세차게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다니엘은 나를 바라보며 세수하는 시늉을 했다. 얼굴을 닦으라는 뜻인 거 같았다. 나는 엉거주춤 세면대로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다니엘은 문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난 애들이 나한테 영어 잘하겠다고, 멋있다고 자기들끼리 기대했다가 실망해서 욕하는 게 싫었어. 어쨌든 난 한국에서 태어났고, 다른 나라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데. 그래서 일부러 김치도 더 많이 먹고 태권도도 열심히 했어. 그러면 한국인이라고 생각해줄 것 같아서. 근데 그냥 매운 거 잘 먹고 태권도 잘 하는 미국인이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생각했지. 아, 쟤네는 죽어도 나를 한국인으로 안 보겠구나.”
“그래도, 걔네는 너한테,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안 하잖아.”
“근데 난 돌아갈 돈이 있었으면 진작 돌아갔을 거 같아서. 이런 애들 사이에서 지내는 거 너무 힘들지 않냐? 이것도 짜증나는 게, 백인 가정이면 다 돈이 많은 줄 안다니까.”
“백인 아니면 다 불법체류자나 외국인 노동자인 줄 알고…….”
“그래. 너도 알 거 아냐. 여기서 태어나서, 여기서 지냈을 거니까.”
나는 고개를 숙여 세수를 했다. 맺혔던 눈물이 찬물에 씻겨나갔다. 다니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찬물로 얼굴을 씻어내자 머릿속이 개운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수도꼭지를 잠그고 다니엘의 어깨를 쳤다. 나가자. 다니엘의 말을 기다리지도 않고 나는 태권도장으로 뛰어 들어갔다.
“다들 연습은 다 했니? 이제 대련 연습 좀 할까?”
관장님이 애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구석에 앉아 농땡이를 피우던 아이들도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다. 나와 다니엘은 이번에도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던 중에, 재현이와 눈이 마주친 것도 같았다.
“관장님. 저 현수랑 대련 연습할래요.”
재현이는 자리에 앉지도 않은 채 손을 들었다. 재현이의 말에 아이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관장님과 재현이를 쳐다봤는데, 관장님은 오히려 자원자가 생겨 기쁘다는 듯 웃고 계셨다. 그래, 그럼 재현이랑 현수가 첫 대련 해볼까? 나는 떠밀리듯 자리에서 일어나 도복을 입었다. 재현이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는 것 같았지만, 나를 도와주는 친구들은 없어서 혼자 한참 애를 먹어야 했다. 그때 다니엘이 내게 다가와 도복의 끈을 조여 주었다.
“신경 쓰지 말고, 확 날려버려.”
마지막으로 머리보호구를 쓰자 다니엘이 속삭였다. 그 말에 나는 괜히 웃음이 났다. 자세를 고쳐 잡고, 관장님과 아이들이 만든 공간에 들어서자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재현이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재현이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남아공을 눌러버리라느니, 깜둥이에게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느니 고함을 지르듯 소리쳤다.
나는 주먹을 쥐고 대련 자세를 잡았다. 하나, 둘, … 그 순간, 관장님이 호루라기를 불기도 전에 재현이가 내게 덤벼들었다. 나는 잠시 당황스러웠지만, 다니엘과 연습했던 것처럼 곧장 군더더기 없는 뒤돌려 차기를 선보였다.
“아!”
재현은 달려오던 속도 그대로 내가 뻗은 발에 부딪쳐 뒤로 한참을 날아갔다. 아웃이었다. 아이들은 그대로 벙찐 표정을 지었고, 관장님은 나와 재현이 중 누구를 살펴봐야할지 모르겠다는 듯 안절부절 못하셨다. 어쨌든 규칙을 어긴 것은 재현이었고, 맞은 것도 재현이었으니까. 현수, 승! 관장님이 호루라기를 불며 승패를 공표하자마자 재현이는 그대로 울음을 터트렸다. 관장님은 서둘러 재현이에게 달려갔고, 그 근처에 있던 아이들 역시 재현이를 살폈지만, 대부분은 각자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웃고 있는 다니엘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다니엘을 바라보다가, 씩 입꼬리를 올렸다.
“나 좀 한국인 같았냐?”

 

동화 당선 소감 / 황선영
“두려움 발판 마음에 흔적 남기는 글 쓸 것”

황선영

인터넷에서 동양계 미국인이 작성한 글을 본 적 있습니다. 오롯이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어릴 적 디즈니의 작품을 보며 자신도 공주가 되길 소망했다는 내용의 글이었습니다. 그러다 본인은 디즈니의 공주들처럼 백인이 아니어서 공주가 될 수 없겠구나, 체념했다는 이야기도 쓰여 있었습니다. 그 글을 읽고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어릴 때 접하는 이야기는 어때야 할지, 지금껏 내가 썼던 글들은 어땠는지, 또 앞으로는 어떤 작품을 써야할지 등 전부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말입니다.
그렇게 골몰하다가 이 동화를 쓰게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소외받는 사람들이 줄어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누군가에게는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사실 이 순간까지도 제 작품이 당선되었다는 게 얼떨떨합니다.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고, 약간은 어색하기도 합니다. 또 제 고민이 무의미하지는 않았다는 것처럼 느껴져서, 안심이 되기도 합니다. 좋게 봐주신 심사위원분들, 그리고 제 동화를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모두에게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감사합니다.
끝으로 좋은 문학상을 알려주신 김병호 교수님과 제게 아동문학을 가르쳐주신 이승희 교수님, 항상 믿어주시고 힘이 되어주셨던 박영호 교수님, 글 쓰는 일이 얼마나 치열해야 하는지 평소에 직접 보여주셨던 구광본 교수님께도 감사합니다. 믿고 응원해줬던 가족들과 친구들에게도 몹시 고맙습니다. 지켜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에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 더 열심히 쓰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 1996년 서울 출생
● 안산 경안고 졸업
● 협성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재학

 

동화 부문 심사평 / 심사위원 : 유영선 동화작가
“주제 분명… 재미·교훈 두루 갖춘 수작”

유영선 동화작가

아이들이 책과 멀어지는 세태에서 아이들을 위한 동화 작품을 쓰고자 신인문학상에 응모한 사람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수차례에 걸쳐 결심에 오른 작품을 한 편 한 편 숙독했다.
그래서인지 올 동화 결심은 유독 시간이 오래 걸렸다. 마지막 손에 남은 작품들이 저마다 특성이 다르면서도 동화가 지닌 감동을 잘 나타냈기 때문이었다. 동화는 운문과 달리 스토리 문학이므로 감동과 따뜻함을 유지하면서도 이야기꾼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았다. 마지막까지 손에 남은 작품은 ‘장미와 담쟁이’(서울:고영미), ‘나는 한국인입니다’(경기:황선영), ‘할머니의 생일파티’(부산:이윤정), ‘발표하지 않을 자유를 주세요’(경기:조승현), ‘선영이의 편지’(인천:이승수) 등 5 작품이었다. 이 작품들은 그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만큼 동심이 살아있고 작품의 소재 또한 개성이 있어 선자로서 고민을 해야 했다. ‘장미와 담쟁이’는 생활동화 일색의 최근 트렌드를 벗어나 의인화로 상상의 세계를 아름답게 묘사한 동화의 정통성을 잘 살린 작품이었다.
‘나는 한국인입니다’는 다문화 가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위선과 차별문화를 꼬집으면서도 인간적인 감동을 살린 동화였다. ‘할머니의 생일파티’는 치매에 걸린 외할머니를 바라보는 가족의 마음이 가슴 뭉클하게 만드는 동화였다. ‘발표하지 않을 자유를 주세요’는 남 앞에서 발표를 두려워하는 아이의 심리를 그림 그리듯 세밀하게 묘사한 감성 넘치는 동화였다. ‘선영이의 편지’는 동물원에 데려가지 못하는 부모님을 원망하다가 공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본 후 동물원대신 요양원으로 봉사활동을 떠난다는 착한 동화였다. 5편 모두 나름대로 특색이 있지만 한 편의 작품을 선택해야 하므로 흠결을 찾아 내려놓았다. 먼저 ‘선영이의 편지’와 ‘할머니의 생일파티’는 너무 흔한 소재와 스토리라는 흠으로 내려놓고 남은 3편 중에 고심을 했다. ‘장미와 담쟁이’는 정통 동화다운 구성과 아름다움으로, ‘나는 한국인입니다’는 차별 속에서도 우정을 꽃피우는 감동으로, ‘발표하지 않을 자유를 주세요’는 미소를 짓게 하는 섬세한 심리묘사로 모두 당선작으로 손색이 없었다. 고심 끝에 세 작품 가운데 주제가 분명하고 재미와 교훈 등 동화의 기본틀을 갖췄다는 점에서 ‘나는 한국인입니다’를 당선작으로 민다. 아쉽게 선외가 된 분들에게도 격려의 마음을 보내며  정진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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