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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소설 당선작 -거미
2017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소설 당선작 -거미
  • 문혜영
  • 승인 2017.12.20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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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혜영

거 미 / 문혜영

 

오후 햇살이 두 남녀의 몸을 부드럽게 훑어 내린다.
배가 약간 나온 남자의 등 뒤로 여자의 손길이 살짝 스친다. 뱀의 살갗처럼 반들반들한 땀이 남자의 굽은 등줄기를 타고 유선으로 흐른다. 여자는 침대 끝에 걸쳐둔 바이올렛 가운을 오른 팔에 살짝 감고 희미하게 쟈스민 향이 흘러나오는 욕실 문을 향해 걸어간다. 얼굴은 이미 40대 중반을 넘어선 여자는 몸만큼은 주름진 얼굴과 엇박자다. 둥글게 춤을 추는 가슴선 아래로 운동으로 다져진 것인지 군살 하나 없는 긴 허리선. 배꼽 아래 거미의 숲을 지나 쭉 뻗어 내리는 가지런한 다리까지 날렵한 몸태를 가진 그녀다. 사내는 곤란한 표정으로 여자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뭔가 말을 건넬 기세다.

시계가 없는 내 방은 시간을 알 수 없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울린 적 없는 전화벨이 울렸을 때 나는 알게 되었다. 적어도 내가 열 두 시간 이상을 자고 있었단 사실을 말이다. 전화벨은 무서우리만치 울리고 또 울렸다. 그러나 전화를 받을 수는 없었다. 분명 수신만 된다던 그 전화기는 한 번도 울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 뚜뚜 소리가 머릿속을 맴도는 통에 나는 잠시 휘청거렸다.
― 뭐해? 빨리 안 받고. 급해 죽겠는데. 해가 중천인데 잠이 오니? 시계 좀 봐라. 지금 정오가 지났는데 넌……어쨌든 너 심부름 좀 해라. 안방 화장대 위에 노란 서류봉투가 있을 거야. 그거 갖고 큰 길 모퉁이 베이커리 앞으로 와. 알았지? 지금 바로.
어머니의 심부름. 외출의 기회였다. 하지만 나는 쉽사리 나갈 수가 없었다. 도대체 발이 움찔거리지도 않았다. 따사로운 햇살이 비칠 주말 오후. 나는 그 빛을 감당하기가 부담스러워 어머니의 명령에 따를 수가 없었다. 아니 아직 좀 더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할 수 없이 온힘을 발끝에 모아 1층으로 내려갔다. 삐걱대는 심장소리가 귓바퀴를 쉴 새 없이 맴돌았다. 뼈마디들은 겨우 겨우 내 연한 살점들을 지탱해내며 나를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아닌 또 다른 내가 영혼은 그대로 남겨둔 채 아래층으로 쿵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힘겹게 도착한 1층 안방 화장대 위에는 어머니 말대로 노란 서류봉투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나는 그 봉투를 들고 오빠 방 입구를 서성거렸다. 아무 기척도 없었지만 나는 오빠가 있기를 바라며 용기를 내어 문을 열었다. 다행이었다. 그곳에는 공부하느라 바쁜 오빠가 있었다. 취직해서도 중국어 공부에 여념이 없는 부지런한 오빠였다. 갑작스런 나의 방문에 오빠는 멈칫하며 당황한 듯 했지만 이내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 왜? 무슨 일 있어?
― 저기…… 부탁이 있어서요.
― 뭔데?
― 이 봉투 엄마가 갖고 오랬는데 난 갈 수가 없어서. 오빠가 대신 가져가면 안 돼요?
나는 그 말을 하면서도 오빠는 보지도 못하고 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려 뺨을 가리고 이마는 오른 손을 들어 자꾸 긴 머리로 감추려 애를 썼다. 나도 모르게 봉투가 들린 왼손이 자꾸만 떨려 왔다. 오빠가 떨고 있는 내 손을 본 것 같았다. 오빠는 짐짓 걱정 말라는 눈빛을 띄우며 외투를 집어 들고 있었다.
― 그래? 음 그러지 뭐. 근데 어디로?
― 큰길 모퉁이 베이커리 앞이라던데…….
― 아, 거기? 알았어. 걱정 마. 오빠가 가줄게.
밖으로 나서는 오빠는 보지도 않은 채 나는 다시 2층 다락방으로 올라가려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그 짧은 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너무 숨이 막혀 견딜 수가 없었다. 사실 오빠가 없는 1층은 내가 내려설 곳이 못 되었다. 이 집으로 이사 온 그 순간부터 늘 그랬다. 1층에서는 내가 들어선 안 될 어떤 소리들이 떠다녔으니까. 자꾸만 나의 귀를 간질이는 낯설고 오묘한 소리들이.

웃음소리가 방문 틈 사이로 밀려왔다 밀려갔다. 그들의 대화 안에서 나는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소식을 듣곤 했다. 얼마 전 프랑스 유학을 갔단다. 어느 유명한 대학 장학생이란다. 초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께서 그림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났다고 했다. 어머니는 그 때를 떠올려 괜찮은 핑계로 나를 잘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3년이 지났지만 변변한 직장 하나 못 구하는 내 존재가 부끄러웠는지 어머니는 어느 날인가부터 날 유학 간 자식으로 만들었다. 그림 잘 그리라고 프랑스 대학에 보냈다는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의심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새 집으로 이사 온 지 4년이 다 되어가도록 내 모습을 본 이웃은 없기 때문이었다.
― 점점 닮아가. 하는 짓도, 저 저질스런 몸태도. 넌 생기지 말았어야 해.
어머니는 당신이 낳은 아이를 늘 후회하셨다. 볼 때마다 미운 사람이 보인다며 화를 냈다. 한번은 정말 화나다 못해 흥분한 어머니가 아버지의 실직에 또 한 번 큰 소리를 지르더니 부엌에서 과도를 들고 오는 게 아닌가. 너 죽고 나 죽자며 칼을 휘두르는 어머니를 피하기만 하던 아버지의 손목에서 붉은 것이 뚝뚝 머리를 털어내고 있었다. 어머니의 한바탕 칼춤에 놀란 아버지는 도망치듯 집 문을 나섰다. 깊은 밤공기가 코끝을 간질이는 마당에서 나는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하염없이 기다렸었다.
소란스런 친구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어머니는 배려의 이름으로 내 방에 요강과 하얀 플라스틱 쟁반을 들이밀고 밖에서 자물쇠를 채웠다. 쟁반에는 초코파이 하나와 우유 한 잔이 있었다. 어머니의 수다는 잠긴 방 문 밖에서 하루 종일 이어지고 여지없이 잠이 드는 나는 다음날까지 그것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이 집에 이사 온 후로 반복되는 일상 중 또 하나는 요강단지와 방에서 지내는 일이었다. 때로는 아무 것도 먹지 못해 단지에 지린내조차 남기지 못하기도 하지만 때론 분비물 냄새를 품은 채 꼬박 이틀을 보내기도 했다.
내 방에는 나무로 된 훅이 동그랗게 달린 옷걸이 하나, 조선 분청사기를 닮은 요강 하나, 그리고 누렇게 덧칠된 나무 문 옆에 수신만 할 수 있다는 20년도 더 되어 보이는 아이보리 빛 전화기 한 대가 있다. 두 평 남짓한 공간에서 오래되어 줄기를 뻗어가는 검은 곰팡이. 그것의 쾌쾌한 냄새를 마시다 보면 어지럼증이 밀려오곤 했다. 너무 어지러워 누워있기조차 힘이 들 때도 있었다. 밖으로 통하는 문은 단 둘. 낡은 손잡이가 덜렁거리는 오래된 방문과 조그만 창이 하나. 그 둘로 간신히 버티기에는 어지럼증이 흡사 청룡열차를 타는 것 같았다. 어린 날의 멀미처럼 그것은 스멀스멀 달팽이관을 돌아 오른쪽 옆머리를 차갑게 콩콩 찧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럴 때면 버릇처럼 아스피린을 먹어대던 아버지가 천장 위에서 흐릿하게 퍼지다 검게 그림자 지며 떨어지곤 했다.
그 방에서 내가 처음 만난 녀석이 긴 다리를 넓게 벌리고 위풍도 당당하게 파리의 목을 조이는 거미 한 마리였다. 온 집안에 유령처럼 숨어 있다가 날벌레들을 처단해주는 녀석. 그러나 웬일인지 거미의 먹이 사냥에 걸려든 작은 벌레들을 보면 나는 그날 하루가 너무 힘겨웠다. 거미의 몸에서 치즈가락처럼 흘러나오는 하얀 액이 그들을 마비시키고 동여매면 나의 목은 그리고 심장은 조금씩 조여지는 것을 느꼈다. 그럴 때마다 등줄기는 진한 땀으로 얼룩졌다. 심장을 드나들던 붉은 피의 줄기들이 본래 내 것이 아닌 것처럼 푸르게 변색되더니 이내 모래알처럼 잘게 조각조각 부서져 흔적조차 찾아낼 수 없을 지경이었다.
아라크네포비아. 그것은 단순한 콤플렉스가 아닌 지병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그 손끝에서 길게 뻗어 나오는 끈끈하고 투명한 그물에 길들여져 살아온 어느 날인가 부터 나는 이미 알고 있어도 모른 척 그렇게 살아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내 몸 구석구석에서 찾아낸 침묵의 영혼들을 가둔 방이 하나씩 늘어가고 있다는 것을. 그럴 때마다 내가 조금씩 죽어가고 있었다는 그 사실을.
마침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숨을 쉴 수 있었다. 물을 떠나 죽어가는 물고기처럼 죽어가다가도 웃음소리만 멈추고 나면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어 행복했다.

아버지의 시체가 발견된 날, 오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책상 위에 흩어진 책을 정리하고 영어 참고서를 꺼내 바스락 몇 장을 걷어내더니 붉은 메모리 펜으로 군데군데 흔적을 남길 뿐이었다. 가지런하게 진열되는 흔적들은 비뚤어진 줄 하나 없이 고스란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소리 내어 우는 것은 사내가 할 짓이 아니라던 아버지 뜻에 따른 건지는 몰라도 오빠의 눈물 자국 같은 것은 책의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다만 메모리 펜이 가끔 멈칫하는 일이 있을 뿐이었다.
아버지를 찾기까지 속절없는 시간이 흐르는 사이 두어 차례 빗줄기가 들판을 적시고 갔다. 이젠 냄새가 사라졌겠다며 경찰들은 투덜대기 시작했고 수사는 포기 단계로 들어섰다. 단순 가출이 아니냐는 엉뚱한 추측까지 내놓은 가운데 아버지는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집 뒤 야산에서 발견되었다. 나는 아버지의 하얀 셔츠만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뚱뚱한 옆집 아줌마의 가슴에 가려 아빠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울지 않았다. 사랑 없는 결혼이라고 했었다. 어머니는 그냥 적당한 조건에 맞춰 한 결혼이라고……그런데 이 모양이라고. 사랑 없이도 같은 밤을 보내고 나면 사랑이 생기지 않더냐고 아버지는 물었지만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사랑은 없다고. 사랑타령 할 시간이 어디 있더냐고.
하지만 아버지는 달랐다. 어머니가 자기 삶을 치유해주는 손바닥 꽃이라고 했다. 아즈텍의 신화에 나오는 손바닥 꽃 이야기는 아버지가 가장 아끼는 이야기 테마였다. 도통 책에는 관심 없던 나를 위해 아버지는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했었다.
― 그 손바닥 꽃은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주는 붉은 꽃이었지. 본래는 꽃이 아닌 패배한 왕국에서 전리품으로 데려온 소치틀이라는 공주였단다. 어린 소녀는 여인이 되면 테노츠티틀란의 왕의 여자가 될 운명이었지. 그러나 소녀는 사제를 몰래 사랑했어. 그 이유로 사형을 당하게 된 거야. 소녀의 두 팔을 앞으로 뻗어 고목의 둥치를 잡게 만들고는 심장에 화살을 꽂는 형벌이었지. 끔찍하지?
― 으~생각만 해도 끔찍해. 그래서 소녀는 죽었어요?
― 으응, 죽었지. 근데 2년 뒤 그곳에서 상인들이 이상한 꽃 두 송이를 가져왔어. 왕이 보니 그것은 소치틀의 손이더래. 꽃과 사랑의 여신을 향한 소치틀의 기도가 이루어져 나무에 박힌 손이 꽃으로 피어난 것이었지. 그 꽃은 마음에 상처를 가진 자를 치료하는 데 영험이 있어서 그 후로 사람들은 ‘손바닥 꽃’이라 불렀다는 이야기지. 어떠냐? 재미있지?
― 응. 재미는 있는데 마음이 아파.
― 그래? 역시 우리 공주님은 착해서. 어서 자라. 엄마한테 또 혼날라.
하루하루 어머니의 목소리는 커져갔고 아버지의 정강이를 걷어차는 일도 점점 잦아졌다. 깡마른 몸매에 165센티도 안 되는 작은 키, 순해 보이기만 하는 작은 눈의 희멀건 얼굴피부. 아버지는 누가 봐도 약해 보이는 착한 인상의 남자였다. 아버지는 술을 자주 마셨다. 술을 마시다 그렇게 조용히 내 곁을 떠나버리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어느 때부터인가 나에겐 가장 큰 두려움이 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수많은 말들을 퍼부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무 대꾸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인가는 불같이 화가 난 어머니가 소주병을 냅다 벽을 향해 내리치는 게 보였다. 그 뾰족하고 울퉁불퉁해진 유리병으로 아버지의 등을 찍어버리던 어머니의 손. 아버지의 등에서 빨간 꽃잎이 흩어져 내리고 숨어서 지켜보던 나는 순간 쓰러져버리고 말았다. 그날 이후 나는 아버지의 등 뒤로 숨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날 이미 나는 곧 혼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오빠가 집 안에 들어서면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은 것이 되어버리곤 한다는 것이었다. 몸이 약해서, 신경을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사그라지는 촛불이라도 되는 양, 오빠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늘 긴장하는 삶을 살아내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사랑은 오로지 오빠 한 사람을 향한 외눈박이 사랑이었다. 우리 부녀를 향한 눈은 이미 감아버린 지 오래된 것처럼 어머니의 시야에 우리 두 사람은 없었다.
아버지가 떠나서 더 그랬을까. 그 후 하루에도 수십 번 어머니는 사랑의 매를 들었다. 회초리 따위는 필요치 않았다. 그냥 스쳐가듯 머리도 정강이도 통통한 볼도 그냥 스치듯 어떤 도구로든 여러 차례 내리치면 그만이었다. 특히 어머니의 친구들이 다녀간 날이면 어머니는 내가 숨을 쉬는 것조차 용서 못할 일인 것처럼 내 머리를 벽에 던지고 또 던졌다. 그 때마다 나는 언제나처럼 두 손을 모아 비비고 또 비벼댔다. 거미로부터 도망치려는 그 놈의 파리 한 마리처럼. 그렇게 간절하게 나는 빌었다. 오빠가 빨리 돌아오길 마음속으로 새기고 되뇌면서.
―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엄마.
사랑의 매는 중독성이 강해서 어느 순간부터는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린다. 아마 아빠도 그랬나보다. 사랑해서 그 사랑에 중독되어서 그냥 그렇게 살았나 보다. 사랑의 형태만 다를 뿐 어머니의 목소리도 손길도 아버지에겐 폭력이 아니라 사랑이었나 보다. 그런 중독이 행복해서 그냥 그렇게 참았나 보다. 그렇게 혼자 갈 거면서 가버릴 거면서 아무 대꾸도 못하고 그냥 그렇게 착하게 바보처럼 살았나 보다.
아버지의 죽음은 쉽게 잊혀갔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집 어느 곳 어느 시간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쉬운 일이었다. 잊는다는 건. 그것은 지갑 속에 동전이 쌓여도 그 동전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자꾸만 지폐를 내고 잔돈을 받아내는 일상처럼 꾸깃꾸깃하게 삶을 살아내는. 어렵지 않게 그냥 행해지는 그런 것이었다. 상처는 남아 있지만 언제 생겼는지는 도통 알 수 없는 그런 무심한 아픔이었다. 그 잊는다는 건.
한동안 나는 피 묻은 하얀 셔츠 꿈을 꾸곤 했다.

아버지의 장례를 지내고 얼마 후 우리 가족은 더 넓은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어머니에겐 멋진 자가용도 생겼다. 그 멋진 자가용 안에는 늘 낯선 남자들이 타고 있었고 나는 때로는 그들의 조카가 되어 삼촌의 담배 심부름을 하곤 했다. 심부름 끝에 가끔 용돈이 쥐어지는데 나는 그게 제일 싫었다. 용돈에 대한 대가는 내 손이나 어깨 때론 가슴을 만지는 것에 대한 용납이었던 탓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입술에 닿는 삼촌들의 니코틴 냄새 밴 침과 따가운 수염이었다. 그러나 무슨 일인지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깔깔 웃으며 삼촌의 등을 살짝 때리는 시늉을 할 뿐이었다. 사실 더 이상한 것은 우리가 그들을 피해 이사를 반복한다는 것이었다. 항상 어머니는 한밤중에 미리 준비해둔 짐을 챙기고 내가 알지 못하는 낯선 곳으로 이사했다.
그런 류의 이사는 그 후로도 세 번 더 이루어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사 간 곳은 시내에서 보기 드문 꽤 고풍스런 이층집이었다. 영국 귀족이 살았음직한 인테리어로 꾸며진 그 집에서 유일하게 화려하지 않은 이층 다락방. 그 때부터 그 곳은 나의 차지가 되었다. 나는 어머니가 주신 선물이자 감옥인 그 방으로 아무런 거부도 하지 못하고 들어가야만 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어머니는 언제나 밤이 되어서야 나를 찾으셨다.
― 공부도 안 하고 그 구석에 쳐 박혀서는. 밥이나 먹어.
마치 스스로 선택한 일인 양 나는 스스로 다락방 선호자가 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오빠만 들어오면 행동이 달라졌다. 어머니의 모습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빠에 대한 원망을 나에게 화풀이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때문이었다.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받아들여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가족이니까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어머니의 미움은 아빠의 모습을 무척 닮은 내 외모 탓일 테니까.
언제나 오빠는 아무 말 없이 밥을 먹었다. 늘 그렇듯 오빠가 들어오면 우리 집은 평범한 공간이 된다. 어머니는 저녁 준비를 하고 오빠는 목욕탕에서 물을 튀기며 하루를 씻고 엄마는 또 어김없이 집 안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늘 그렇게. 평범한 가족처럼…….
그러나 오빠가 없으면 어머니는 달라졌다. 오빠의 외출은 나에겐 어머니에 대한 두려운 시간을 의미했다. 어머니는 화장을 하고 향수를 뿌리고 잠시 나갔다 오면 꼭 남자친구를 데려왔다. 그들과 무슨 말을 하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들과 눈을 마주치는 일조차 내게는 금지된 일이었다. 아무 것도 알려고도 알고 싶지도 않아 다락방의 문을 꼭 잠가버렸다. 하지만 들리는 소리들을 막을 길은 없었다. 그 웃음소리는 가끔 나를 미치게 했다.
어머니는 사람들이 떠난 후 다짜고짜 내 따귀를 때렸다. 종종 있는 일이었다. 어머니가 새로 구입한 다이아 반지의 꽃봉오리 장식이 손가락 주위를 헛돌더니 나의 뺨 위를 스쳐 지나갔다. 쏜살같이 몇 차례 더 행해진 사랑의 매는 어느새 뺨을 붉게 물들였다. 여러 갈래로 빗살처럼 흉이 생겼다. 그 흉을 따라 피가 거미집처럼 얽어져 흘러 내렸지만 아프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어머니 앞에 서있는 내가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내가 해야 할 유일한 말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 잘못했어요. 다신 안 그럴게요. 잘못했어요.
고개 숙인 얼굴에서 핏물이 방울지며 떨어졌다. 다락방으로 돌아온 나는 매트리스 위로 몸을 던지곤 머리맡에 놓여있는 유리구슬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아버지가 내게 남긴 유일한 유품이었다. 하얀 눈이 내린다. 유리구슬 안에서 눈은 녹지도 못하고 둥그런 하늘과 땅 사이를 순회한다. 예쁜 빨간 지붕 집 안에서는 아마 한 소녀가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크리스마스 케이크의 촛불을 끄고 있겠지. 그리고 소녀는 행복하게 웃으며 엄마의 손을 가슴에 얹고 있겠지. 나는 삶에서 가장 불가능한 상상을 하릴없이 해보았다.
상처가 시려왔다. 얼굴 가장자리 볼을 따라 생각보다 깊게 패인 상처를 손가락을 구부리며 하나하나 되짚어 보았다. 손가락에는 피가 묻어났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날만큼은 정말 사람이 밉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치유되기도 전에 다시 생기는 상처는 여기저기 복잡하게 얽혀버려 풀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투명해서 잘 보이진 않지만 사방치기로 얽힌 거미의 그것처럼. 사람을 미워한다는 것이 설령 죄가 될지라도 나는 사랑보다 미움이 커져가는 내 자신을 그날만큼은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눈물을 훔쳤지만 소용이 없다는 걸 알았을 때 머리를 내려 코를 박고 들리지 않게 소리를 내어 울고 또 울려했다. 그러나 역시 소용없는 일이었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나는 울었지만 내 눈은 내 마음을 거부하고 있었다.
작은 손톱자국처럼 유리창은 방울방울 긁혀 있었다. 여지없이 또 비가 내리는 탓이었다. 언제나 비에 젖은 긴 시간의 끝자락에는 아버지의 마지막이 숨어있었다. 어머니는 바람결에 아버지의 기억 마디마디를 미련 없이 날려 보내고 있었지만 바람에 흩어지는 아버지의 모습이 어찌나 애처롭던지 나는 어머니의 악다구니에도 좀처럼 그날의 하늘 아래, 그 모래밭 위에서 쉬이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모래 알갱이 사이로 혹시 발을 잡아당겨줄 그 어떤 것이 있기를 나는 간절히 바랐다. 어머니는 장하리만치 눈물을 보이지 않았지만 쉼 없이 흐르는 슬픔을 주체할 길이 없던 나는 머리채를 끌리고서야 그 황량한 죽음의 해변에서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돌릴 수 있었다. 잔인한 1월이었다. 그리고 더 잔인한 것은 내 나이 열세 살이 되던 첫 달이라는 사실이었다.

또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지만 나는 더 이상 이해하는 것을 포기하고 단숨에 수화기를 들었다.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허스키한 목소리의 여인이 나지막하게 나를 부른다.
― 여보세요?
― 여보……세……
― 여기 병원인데요. 마지막 통화한 분이라서 전화 드렸어요. 유선해 씨와 현유원 씨가 교통사고로 오셨는데……
― 네에?
― 혹시 가족이신가요?
― 네에……저……저는……
― 아, 네. 그럼 얼른 한라병원 응급실로 오세요.
나는 이제 1층이 아닌 밖으로 나서야 했다. 또 다시 외출의 기회를 날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진 않아야 했다. 나를 보호한다던 명목으로 제공해준 이곳에서 고풍스런 장식물로 박제된 나 자신을 더 이상 용납할 수는 없을 터였다. 박제된 날갯죽지가 오래 묵은 먼지의 무게에 조금씩 바스러지다가 결국 추락하게 되는 운명을 맞이하기 전에 나는 이 집 아니 저 문을 열고 나가야만 했다. 나는 먹어버릴 듯 엄지손가락을 깨물면서 유령거미의 정교한 집을 바라보았다. 유령거미는 오래되어 너덜너덜한 집을 버려두고 창가 쪽에 새로운 집을 짓는 중이었다.
그 조그맣던 다락방의 문이 자꾸 커다랗게 다가왔다. 세상과 단절된 지 올해로 얼마나 되는지 계산조차 되지 않는 당황스런 순간이었다. 저 커다란 문을 정말 내 손으로 열 수는 있을까? 열린다면 1층으로 가는 계단을 온전히 밟을 수는 있을까? 낯선 세상과 만나면 혹시 또 다른 거미 한 마리가 발목부터 내 몸을 타올라 조여 나가다가 껍질만 남기고 또 다시 나를 가둬버리진 않을까? 바늘 땀 같은 촘촘한 생각들이 어지러이 천장 가장자리를 빙빙 돌아 다녔다.
유령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마 숨어 있다가 순식간에 생명이 있는 파리나 날벌레 따위를 수혈을 하듯 그 엑기스만 쪽 들이킬 모양이었다. 언제나 제 몸에 엑기스를 채운 뒤 버려둔 껍질은 푸석푸석한 시체 먼지가 되어 방 한구석에 쌓여있기 일쑤였다. 순간 내가 그 푸석푸석 날리는 먼지가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문틈으로 비집고 든 바람을 따라 아예 영혼마저 흩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 저 문을 나선다면 아니 1층 현관의 문턱을 넘는다면 말이다. 선택이란 거 해 본 적 없는 유년의 습관은 두 발에 쇳덩이를 올린 것만큼이나 무거웠다.
떨리는 손바닥의 전율을 온몸으로 느끼는 듯 손잡이가 드르륵 소리를 내며 문을 열었다. 그러나 계단이 갑자기 눈앞에서 흐물흐물해졌다. 어디에 발끝을 대야할지 난감할 지경이었다. 분명 한 계단만 밟으면 이 집을 나설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쉽게 발을 내밀 수가 없었다. 발바닥 아래로 계단이 자꾸 이리저리로 떠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마와 머리에서는 땀비가 흘러내렸다. 이번에는 허공을 가로질러 계단들이 난간과 분리된 채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나는 죽을힘을 다해 오른쪽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얼마나 흐른 걸까?
깨어났을 때, 나는 1층에 널브러진 자신을 발견했다. 반사적으로 일어서서 밖으로 나섰다. 신기하게 그냥 두 발이 인도를 달려가고 있었다. 차가운 겨울비가 슬리퍼 사이로 스미면서 질척한 소리가 되어 돌아왔다. 얼마나 가야 하는지는 몰랐지만 그 병원이 어떤 곳인지는 알고 있었다. 열세 살 소녀의 아픔이 머물렀던 바로 그 곳이니까. 온 몸이 비로 적셔질 때까지 나는 달리고 또 달렸다. 넘어지지도 않고 그 길을 신나게 달리는 두 발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내딛는 발자국마다 겨울비는 흔적을 남겼다 지웠다 를 반복했다. 비는 내리고 또 내렸다. 두터운 하얀 털스웨터가 점점 무거워지는 빗물의 중량에 축 늘어지고 있었다. 얼마나 지난 걸까. 가까이에 하얀 건물에 초록색 십자모양의 네온이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가 잠을 자는 모습을 나는 요즘 자주 본다. 늘 어머니 곁으로 다가서 보지 못한 나는 어머니와 잠을 자는 일도 없었다. 그래서 잠을 자는 어머니 모습은 내겐 너무 낯선 일이다. 갑자기 눈을 번쩍 뜨고 머리채를 휘어잡고 오빠가 오기 전까지 때리고 또 때릴 것만 같다. 어머니가 남겨준 작은 거미줄 모양의 얼굴 흉터가 갑자기 쓰려오는 듯 나는 얼굴을 두 손바닥 가득 감싸 안는다. 상처는 나았지만 마음 속 깊은 생채기를 치료해줄 약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어머니는 알고 있을까?
오늘 하나뿐인 오빠마저 결국 당신이 없는 세상을 선사하고 떠났다. 오롯이 혼자 남을 이 세상을 말이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 그렇게 쏟아낸 눈물 탓인지 몰라도 울어야 하는데 아무 것도 흐르지 않는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다. 도대체가 말도 눈물도 씨가 다 말라버렸다. 이제 무얼 준비해야 하지. 뭐가 있지. 뭐가 필요하지? 온통 뭐가 로 가득한 어색함에 갑자기 버거워진 나를 느낀다. 그 순간 내 머리는 아버지를 담아내고 있었다. 아버지가 떠나던 그날. 어머니는 그냥 아무런 동요도 없이 장의사를 만나고, 다음 날 아버지를 훨훨 날려 보냈다. 비가 많이 내리는 겨울이었다. 사람들은 눈을 기다렸지만 그 해에는 눈보다 비가 더 많이 내렸다. 어디에도 겨울의 냄새가 나질 않았다.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에 오빠의 슬픈 몸이 내려앉는다.
교통사고가 있었고 그때 바로 뇌사상태에 빠졌지만 오빠의 심장은 한 달을 버텼다. 내가 그렇게 그 집을 나와 빗속을 질주했지만 젖은 털스웨터가 다 마르고 새 옷을 갈아입고 다시 왔지만 오빠는 끝내 다시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오빠에게 그렇게 말해주었지만 오빠는 결코 괜찮아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 사실도 모른 채 산소호흡기로 삶을 지탱하고 있다. 트럭사고였다고 했다. 목격자들의 말로는 덤프트럭 하나가 오빠를 향해 돌진했는데 그때 어머니가 갑자기 뛰어들었다는 것이었다. 아마 아들을 구하려고 그랬나보다고 병원 간호사들이 수군거렸다. 하지만 그들은 모르고 나는 알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그 어미가 먹어버린 최고의 잔인한 식사가 바로 그녀의 아들이었단 사실을.
어머니가 남긴 작은 거미의 집을 떼어내려 나는 얼마 전 성형외과를 다녀왔다. 그리고 어머니 명의의 재산들을 내 통장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비밀번호는 온통 오빠의 생일이었다. 단 하나의 통장에도 나를 상징하는 번호는 없었다. 그리고 내 이름으로 든 1억짜리 보험증서도 찾아서 조금 손해는 봤지만 그동안 불입한 적정 지급액을 받기로 하고 곧바로 해지했다.
어머니 이마에 진한 입맞춤을 하고 왼쪽 젖가슴에 귀를 대어 본다. 약하긴 하지만 분명히 심장이 뛰고 있다. 의사는 어머니도 위험하다고 했다. 지금은 호흡기에 의지해 숨을 쉬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니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나을 거라고. 벌써 한 달째 같은 말이다.
― 당신이 그랬죠. 사랑은 없는 거라고. 당신 말이 맞았어요. 내게도 그건 안 생기더라고요. 당신은 내가 당신을 안 닮았다고 했지만 나 사실 당신을 더 많이 닮았나봐.
어머니의 입안에는 이 세상에 없는 이상한 꽃이 피어오른다. 아버지가 말하던 손바닥 꽃을 닮았다. 두 손을 벌려 붉은 울음으로 사랑을 갈구하는 그 꽃. 힘겨운 사람들의 삶에 사랑이라는 치유의 힘을 빌려주던 고귀한 저승 꽃. 갑자기 붉은 경련을 일으키다 조금씩 흩어지는 꽃잎 두어 장. 어미가 먹고 버려서 쌓인 욕망의 껍질들처럼 푸석하게 부서져 곧 먼지로 흩어 날릴 것 같다. 순간 어머니의 손이 바닥으로 녹아내리더니 다이아몬드를 감싼 날카로운 꽃봉오리가 반짝 뒤집힌다. 나는 잠시 떼어 놓았던 호흡기를 어머니의 검붉은 입가로 다시 옮겨 놓는다. 진혼곡 같던 비명이 멈추고 입 속의 붉은 꽃은 벌써 시들어버렸다. 나는 침대 손잡이에 느슨하게 내려앉은 그녀의 손을 잡고 서있다. 어머니의 손은 유리처럼 차갑다. 여러 개의 발자국들이 복도를 급하게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방금 전까지 빗방울 지던 유리창엔 하얀 알이 부딪고는 녹고 있다.
― 첫눈……
무언가 뺨을 타고 미끄러진다. 눈물이 틀림없다. 오랫동안 멈춰있던 시간을 지나온 나의 눈물이.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 맛이 없다. 짜지도 쓰지도 달지도 않다. 아무런 맛도 느낄 수가 없다.
점점 가까이 다가서는 발소리들이 어느새 어머니와 내가 기다리는 병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나는 간호사가 우악스레 그 손을 떼어낼 때까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가 어머니의 맨가슴에 커다란 마우스처럼 둔탁하게 생긴 기계를 대고 전기 충격을 가한다. 어머니의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향기와 함께 풀썩 가라앉는다.
아직도 쟈스민 향이 나……

오후 햇살이 벌거벗은 두 남녀의 몸을 부드럽게 훑어 내린다.
사랑을 노래하는 두 남녀의 모습은 흡사 호랑거미의 정사와 같다. 몸집이 작은 수컷 호랑거미는 짝짓기 상대를 유혹한 뒤 재빨리 교미하지만 몸집이 큰 암컷들은 짝짓기가 끝난 뒤 상대가 빨리 사라지지 않으면 죽여 버리는 습관이 있다. 남자의 엉덩이가 들썩일 때마다 여자는 기어들어갈 듯 떨리는 목소리로 신음을 구겨 넣는다. 남자를 자신의 안으로 빨아들이면 여자는 곧 그를 먹어치울 것이다. 상대가 자신감에 차서 여자를 지배하려 하면 여자는 자세를 역전시키고 서서히 남자의 목을 조일 것이다.
여자는 아름다운 신음을 연신 뿜어대며 남자의 귀를 간질이고 달짝지근한 혀로 남자의 몸뚱이를 국수 가락을 빨아대듯 훌훌 그 입가로 빨아들이는 중이다. 쟈스민 향이 나는 그녀의 겨드랑이를 움켜잡고 남자는 연신 부르르 떨며 매달리지만, 한 번 먹이로 지목되면 여자는 남자의 양기를 쭉 들이켜 대기 일쑤다.
여자가 익숙한 모양으로 남자의 사타구니 위에서 겅중댄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가 부끄럽게도 그 작은 거미 문신 위에 고약한 액체를 뿜어대자 여자는 실망한 표정으로 그의 몸 위에서 미끄러져 내린다. 여자는 부드러운 소프트 티슈로 정성스레 문신 위 얼룩을 닦는다. 잘 닦아내지 않으면 흔적이 남을까봐 남자의 양기로 가득한 액체를 여자는 부드럽게 그리고 순간 재빠르게 훑어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린다. 그러나 빨간 쓰레기통 옆에 착지해버린 흔적들. 티슈뭉치를 짜증나게 바라보던 여자는 벌떡 일어나 속옷을 남자의 머리께로 집어던진다.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이제 그만 가’ 남자의 얼굴은 외면한 채 한마디 내어 뱉는 여자. 망설이던 남자가 욕실로 들어서려는 그녀의 뒤에서 소리치듯 묻는다.
― 누님! 그런데 그 애는 왜 안 내보내요?
― 너 내 일에 신경 꺼라. 쓸데없이.
― 아니 막말로 누님 애도 아니라면서? 보낼만한 곳 내가 좀 알아봐?
― 그 입 좀! 일단 내가 낳았다고 믿고 사는데 그리 쉽게 처리 되냐? 나도 짜증나. 아니 이게 점점 지 애미를 쏙 빼닮아가는 거 있지. 모진 년!
― 그니깐 내보내야지. 누님도 참 오지랖도 넓어.
― 입 그만 놀려. 다 생각이 있어 그래.
― 또 뭔 생각? 오호라 걔 아빠 때처럼 보험이나 하나 들어 뒀나?
― 뭐?
― 아 아냐 . 어쨌든 이번엔 끌어들이지 마쇼.
― 입방정은. 야! 그 입 좀 제발 잘 잠가둬. 부탁이다, 어?
제왕절개 흉터 위로 흡인력 있는 날씬한 허리선을 잘록이며 그 여자의 상큼한 나신이 미끄러지듯 욕실로 사라진다. 쟈스민 향이 욕실 안에서 밖으로 슬며시 흘러나오고 남자는 체념한 듯 그 향내에 연신 코만 벌름거리고 있다.
그들의 정사가 끝나도 다락방 안으로 선뜻 올라갈 수가 없던 나는 오빠 방으로 잠시 몸을 숨겼다. 그들의 대화를 듣는 내내 가슴을 뚫고나오는 울음소리를 두 손바닥 가득 가로막고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그 자리에서 망부석이 되어버린 채였다. 어느새 샤워를 마치고 나온 여자의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늘 그랬듯이 그 목소리는 주위를 섬뜩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마치 거미의 혀를, 그 혀의 낯선 감촉을 받아들여야 할 날벌레처럼 그 여자의 말 한 마디는 나를 다시 두려움에 떨게 한다. 그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온 일이다.
― 유리야. 야! 유리!
내 이름을 부르는 여자. 그녀는…… 내 어미다.

……그래, 쟈스민 향이 나.
― 유리야! 야, 유리!
유리. 내 이름이다. 아버지가 나를 위해 지어주셨다고 했다. 유리처럼 맑은 아이로 자라라고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몰랐을 것이다. 맑기도 하지만 깨어지기도 쉬운 게 유리라는 사실을. 가끔 나는 생각했다. 차라리 깨어지고 말 걸. 자유롭게 온몸을 부서 버리고 말걸.
그런데 내 이름을 부르는 이 목소리! 깜짝 놀라 젖은 눈을 떴다. 바닥에 왜 누워있는 지 알 수가 없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아 견딜 수가 없다. 얼굴도 화끈거린다. 무언가 비릿하게 흘러내리는데 나는 내내 뜨겁지 못했던 그것을 어루만진다. 피다. 빗금 진 거미줄에 얽혀 흘러내리는 붉은 눈물이다.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아 바닥에 짚어가며 허리를 있는 힘껏 끌어올린다.
정면으로 문이 보인다. 오빠가 웃으며 걱정 말라고 손짓하며 나갔을 바로 그 곳. 내가 외면하고 다락방으로 숨어버리는 등 뒤로 둔탁한 음을 내며 스스로 닫혀버리던 그 문이.

 

소설 당선 소감 / 문혜영
“글은 삶의 나침반… 가야할 길 가리켜”

문혜영 당선자

휴대폰 벨이 울렸을 때 하늘에선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눈이 내리고 있었지만 춥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당선소식에 오히려 뭘 먼저 해야 하나 하며 마음이 두근거렸고 점점 몸이 따뜻해짐을 느꼈습니다. 소녀에서 성인으로, 성인에서 부모로 자라는 동안 글이란 존재는 언제나 변치 않는 우정으로 친구의 자리를 채워주고 있었습니다. 때로는 힘든 시련을 주어 글을 쓸 자격이 나에게 없는 건 아닐까 고민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의 곁에는 위로가 되어주는 좋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언제나 제 글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는 비평가이자 때로는 스승으로, 늘 변함없는 애정을 보여주는 내 평생 동거인, 사랑하는 남편이 있습니다. 아메리카노 한잔 건네며 제게 창작의 시간을 선물해주고 엄마를 최고 작가라고 말해주는 소중한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함께 보내며 제 글을 애정으로 지켜봐준 초승동인들과 소설의 길을 같이 걸어가자는 애인 같은 벗들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들의 진실한 조언이 글을 놓을 수 없는 이유가 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에게 눈과 함께 찾아온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어서 오늘은 참 행복했습니다.
언제나 글은 제 삶의 나침반이 되어 앞으로 가야할 길의 방향을 묵묵히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 길의 끝은 알 수 없지만 살아가는 내내 자신의 글을 지키라고 자신의 문장과 생각의 힘을 더 키워나가라고 오늘도 나침반은 그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제 그 방향을 향해 앞으로 나아갈 일만 남았습니다. 한발자국씩 꾹꾹 땅을 다지며 소설가로서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겠습니다. 오늘 제게 소설가라는 이름을 부여해주시고 행복을 안겨주신 심사위원님 감사합니다. 제게 자신감을 가지고 글을 쓸 수 있게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님께 앞으로 좋은 소설로 보답해 나가겠습니다. 

약력
● 1969년 제주 제주시 출생
● 제주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 초승문학동인

 

소설 부문 심사평
“탄탄한 문장력과 구성력 갖춘 당선작”

심사위원 : 안수길 소설가

안수길 소설가

심사자에게 넘겨진 응모작 40여 편 중에서 단편소설로서의 기본이 갖춰졌다고 생각되는 11편을 선정하고, 정독 후에 6편으로 압축, 결함이 드러나는 2편을 덜어냈다. 마지막 남은 4편을 놓고 신진작가로서의 성장 가능성을 위주로 심사숙고 끝에 당선작을 결정했다.
오래된 우물(김일호: 경주)은 알츠하이머 증세로 기억력이 쇠퇴된 초로의 남자. 그가 겪는 일상의 혼란은 외롭고 서글프다. 단지 그가 발설조차 못했던 소년시절의 순진한 사랑의 기억은 또렷하나, 그 기억을 더듬어 찾은 고향의 옛 모습, 옛 연인은 찾을 수 없고 풍문만 전해들을 뿐이다. 폐쇄 된, 오래 된 우물 앞에서, 거기 얽힌 전설처럼 아스라한 추억만 안고 돌아서는 남자, 그 심사가 애처롭게 읽히는 작품이다. 애잔한 주제에 비해 문장이 다소 건조하다.
감성적인 소재인 만큼, 문장도 그에 어울리는 것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인사청문회(오세완:창원)는 위엄과 권위를 과시하는 권력지향인사들의 이면행동을 희화화戱畵化함으로써 영혼 없이 권력만을 좇는 인간들에 대한 경고가 내포된 작품이다. 시니컬한 문장과 설정된 사건마다 짙은 냉소가 담겨있다. 재미있게 읽힐 소재요 단편으로서의 틀을 갖추고 완성도에도 큰 결함은 없으나, 신진작가에의 기대, 독창성이나 참신성 등, 문학적 측면에서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 신인발굴의 의도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큐티클 만들기(우경희: 청주)는, 비리와 배타, 타성이 만연한 직장에서 ‘영혼’이 맑은 인물의 번민을 그렸다.
관리자나 근로자의 윤리의식에 대한 고발성을 띤 세태소설로, 호흡이 짧은 문장은 가독성可讀性과 함께 상황전달효과도 높다. 두 번째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연인과 여행을 결심한 화자話者가 다짐한 ‘큐티클 만들기’, 그가 마련할 방어막은 과연 무엇일까? 인생을 깊고 넓게 살기위해 영혼의 오염을 막겠다는 결심으로 읽히지만, 결말이 다소 막연하고 안이하다. 주제를 살리자면 화자가 좀 더 강인한 면모를 보여 줬어야 하지 않을까?
거미(제주:문혜영)는, 외형상 평범한 가정, 오빠를 편애하는 엄마는 아버지와 화자話者인 나에게는 잔인하리만큼 가학적이다. 이런 엄마의 가학행위는, 화자가 의식意識 밑바닥에 잠겨있는 사건들을 토로해내는 과정을 통해 그 전모와 함께 가족구성의 내력이 밝혀지지만, 작자는 그 판단을 독자에게 일임한다. 섬세한 구성과 침착하고 냉정한 문장, 독거미의 잔혹성에 엄마의 잔혹행위를 오버랩 시킨 비유, 은밀한 암시로 반전의 묘미를 살린 절제력은 일품이다. 주제나 소재가 다소 흔한 것이어서 신인다운 신선감은 떨어지지만, 탄탄한 문장력이나 구성력에, 작가로서의 성장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믿어지므로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선외로 밀린 작품들 가운데도 관점에 따라서는 당선작에 못지않는 작품이 없지 않을 것이고, 당선작에는 관심 있는 독자들의 냉철한 후평이 따를 것이므로, 당선작가의 자만은 금물이다. 선외작 응모자들은 발표되는 당선작과 자신의 작품을 비교해 보는 것도 연마의 한 방편이요, 신인작가 발굴의 의의 파악에도 일조가 될 것이다.
모든 응모자들에게 감사와 격려를 드리고, 당선자에게는 축하와 함께 분발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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