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신도 할머니가 일본 도쿄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5세. 송 할머니는 일본에 거주하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유일하게 일본 정부를 상대로 사죄와 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던 이였다.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이제 32명 밖에 남지 않았다.

어느 죽음이라도 그 앞에 숙연해지지 않을 것이 없겠지만, 한 평생 치유되기 힘든 상처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야만 했던 한 여성의 망가진 삶을 반추해 볼 때 우리의 가슴은 더욱 아리다. 그런데 일본 정부도 그런 생각일까. 아닐 개연성이 더 크다. 일본 정부의 극우 인사들은 되레 그의 죽음을 접하면서 가슴 한켠에 켜켜이 쌓여있던 묵은 짐을 하나 풀어놓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반성도 모르고, 사죄도 모르고, 잔학했던 자신들의 죄상을 덮고 은폐하기에만 급급했던 그들의 행태를 돌이켜 볼 때 일본 정부의 속내는 ‘조금만 더 버티면 현재진행형의 죄악들이 역사의 저편으로 흘러갈 수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인식의 발단을 제공한 것은 우리 정부였다. 2015년 12월 28일 당시 박근혜 정부가 급작스럽게 ‘한일합의문’을 발표한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체결한 이 합의문에는 일본군 위안부로 참담한 삶을 살아야 했던 당사자들이 빠져있었다.

국내 위안부 피해자나 관련단체들을 직접 찾아가 합의 내용을 정확하고 충분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오히려 피해자들에게 돈을 앞세워 회유하면서 상처난 가슴에 칼질을 해댔다.

지난 19일 취임 이후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오는 27일 발표될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의 보고서에 대해 일본측에 설명하며 합의의 문제점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전달했다고 한다. 일본측 반응은 역시나 ‘한국이 위안부 합의를 준수해야 한다’는 요구에서 물러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첫 단추를 잘못 꿴 까닭에 이렇듯 해결의 가닥이 꼬여버린 셈이다.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던 위안부 문제는 ‘인간의 존엄’에 닿아있는 사안이다. 그래서 ‘불가역적’이란 말은 애초에 성립할 수가 없다. 대못을 뺀다고 그 대못이 박혀있던 자리까지 지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독일은 히틀러와 나찌를 금기어로 삼았다. 해마다 피해 당사자들에게 사죄와 용서를 구한다. 그들이라 해서 앞선 세대들의 잘못을 달가워할 리는 없다. 그러나 아우슈비츠의 독가스로 희생 당한 수백만의 유태인들과, 히틀러의 침공으로 죽어간 수많은 이들에 대한 사죄와 용서는 인간 존엄을 잊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예의인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단 한 번도 자신들의 과오에 대해 진정한 사과와 용서를 구한 적이 없다. 덮고, 은폐하고, 왜곡하기에 급급했다. 아베 정권들어서는 한발 더 나아가 군국주의의 부활까지 꾀하고 있다. 진정성을 담보한 사과라야 용서와 화해가 성립된다.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위해서도 그것이 선행돼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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