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영(서원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정민영(서원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우리의 삶에서 가정을 꾸리는 일은 무엇보다 소중하다. 가족은 서로가 행복을 주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가족의 형성은 젊은이들의 결혼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최근 우리나라는 독신주의자들이 늘어가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앞으로 몇 십 년 후에는 일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36퍼센트 정도로 늘어날 전망이라고 한다. 그뿐 아니라 현재 인구 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비율에 밑돌 정도로 기혼 여성들의 무자녀 비율이 늘고 젊은 부부들의 기대자녀 수가 줄어들고 있다. 얼마 안 가 전통적 가정은 일인 가구의 절반에도 못 미치게 돼 부부 사이나 부모와 자녀 사이의 가족 관계가 무너지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태어나면서부터 가족 관계가 형성되고 성장과 더불어 사회 집단 속에서 서로 관계를 맺으며 생활하게 된다. 그러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자신이 속한 사회의 언어와 문화를 습득하여 타인과 소통하고 서로 협동하며 살아간다. 인간의 협동은 계기적(繼起的)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다양한 활동과 그 결과물이 지속적으로 축적되고 끊임없이 전승되면서 새로운 문화를 형성한다. 그래서 인류는 나날이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언뜻 인간은 개개인으로 존재하는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족을 비롯하여 사회와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성장하며 살아간다.

물론, 여럿이 모여서 집단 활동을 한다고 해서 모두가 사회라고 불리지는 않는다. 인간이 모여서 사회를 형성하듯이 특정한 환경에서 서로 유기적 관계를 맺으면서 무리를 이루어 살고 있는 동일 종(種)의 개체군(population)들도 있다. 이를 군집(群集)이라고 한다. 군집 생활은 인간의 창조적 활동과는 달리 먹이와 서식지의 확보 등 생존 본능적 활동으로서 사회생활과는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개미와 꿀벌은 떼를 지어 모여 살고는 있지만, 늘 같은 정도의 집을 지을 뿐 인간들이 짓는 초고층 건물처럼 놀라운 발전을 이룩하지는 못한다. 발전적인 사회를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커다란 강점인 셈이다. 그리고 그 인간 사회는 가족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는 개인주의가 대세라고 한다. ‘혼밥, 혼술, 혼영, 혼행, 혼공’이나 ‘솔캠’처럼 낯선 신조어들까지 등장했다. 신조어는 까닭 없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거기에는 시대상과 사회상이 깃들고 그것을 즐기는 세대들의 세태가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인주의를 부추기는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가 생겨나고 있다. 이와 같은 풍조 속에서 혼자만의 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을 흔히 ‘나홀로족’이라고 한다. 누군가와 더불어 무엇을 먹고 즐기는 것은 그 활동을 매개로 하여 상대방과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일이다. 행복한 삶의 개념은 개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홀로’ 문화는 자칫 인간관계를 깨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인간으로서 이웃과 사회 구성원을, 나와 더불어 사는 ‘우리’로 인식하여 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예로부터 우리 사회는 네 가지 궁한 처지인 환과고독(鰥寡孤獨)을 사궁(四窮)이라 해서 경계해 왔다. 늙어서 아내 없는 사람, 젊어서 남편 없는 사람, 어려서 어버이 없는 사람, 늙어서 자식 없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모두 온전한 가정을 이루지 못하여 외롭고 의지할 데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다. 우리 는 이런 처지의 사람들을 늘 불쌍하게 여겨 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젊은이들 사이에서 장래에 자신을 이처럼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할지도 모르는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있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그 주된 이유 중의 하나가 생활고 때문이라니 이런 환경을 만들어 놓은 기성세대로서 책임감을 느낀다. 그러고 보니 청년 취업을 비롯하여 출산과 경력 단절 문제 등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우리 사회에 개인주의 풍조가 확산되어 가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먼 미래에 그들이 돌아가야 할 포근한 곳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 풍진 세상 살다 보면 누구나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아픔이 있고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 마련이다. 이때 조건 없이 달려와서 이해와 사랑으로 포근히 감싸 안으며 절망을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희망을 주는 사람이 바로 내 가족이다. 가족은 한평생 내 인생의 동반자다. 인생의 긴 여정에서 고단한 삶에 지친 나를 언제나 낯익은 눈물로 위로해 주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내 곁을 지키며 담담하게 영결의 정한을 나눌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일상에서 그 소중함을 잊고 산다. 여우도 죽을 때는 고향이 그리워서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머리를 둔다는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는 말이 있다. 이런 마음이 인지상정인데, 늘그막에 돌아갈 곳이 없다면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뒤늦게나마 우리의 젊은이들이 ‘나’ 아닌 ‘우리’와 가족의 소중함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스스로 사궁의 처지가 되는 일이 없기를 소망한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