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송 에른스트국제학교 교장

(한희송 에른스트국제학교 교장)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나 교육과 관련된 일들이 이야기꺼리의 순위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합니다. 이들 중 특히 합리적인 입시제도와 효율적인 학업이행과정에 대한 일들은 논쟁의 장에 빠지지 않고 올라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이 지나도록 이들에 대한 설왕설래가 계속되는 것은 아직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오늘은 이 점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 교육구조의 문제를 논할 때 반드시 다루어져야 할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바로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교육의 안팎에 관한 인식입니다.

공부라는 것은 형식적으로는 과목별로 나뉘어져 있지만 학문을 본질적인 시각에서 보면 반대로 여러 개의 과목이 하나의 학문으로 수렴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로 수렴되지 못하는 과목은 점수라는 형식으로만 파악될 뿐 학문의 본질적 측면과는 관계를 가지지 못하는 그래서 실질적으로는 공부가 아닌 그 무엇에 불과합니다.

예를 들어서 요한 스트라우스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라데츠키 행진곡을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라데츠키라는 이름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정도의 호기심만 있더라도 그는 프랑스 대혁명에서 시작하여 1848년으로 일단락 주어지는 자유주의 물결에 대해 알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이탈리아 독립전쟁이 시작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며 이 당시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에 점령된 상태였다는 것도 알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가 싸운 전투지 중에서 쿠스토자 라는 곳이 있는데 이 싸움에서 오스트리아제국의 라데츠 백작이 이끄는 군대가 이탈리아 군을 이겼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황실은 당시 최고의 음악가인 요한 스트라우스에게 작곡을 의뢰했다는것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런 사실들에 매력을 느껴서 자료를 찾는데 그 자료들이 영어로 되어 있다면 그는 또한 자연히 영어공부를 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쌓여진 세계사실력이나 영어실력은 세계사나 영어라는 학과시간을 통해 배운 그 어떤 지식보다 더 정교하고 확실하며 무한한 확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진정한 공부방법을 놓아 두고 우리나라 교육이 효율성이 떨어지는 시스템을 고수하는 이유는 바로 학문적 실력이라는 것이 개인의 호기심과 열정에 연동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점수를 위한 고통의 감내와 직접적인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회적 인식 때문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공부를 이해를 통한 깨달음이 아니라 점수를 위한 문제풀이로 간주하게 합니다. 이것은 아이러니칼하게도 학습자들을 자신이 가진 장점이 아닌 단점에 집중하여서 점수가 잘 나오는 과목을 더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점수가 안 나오는 과목을 더 보충하게 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열정을 태울 수 있고 집중할 수 있는 영역에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영역을 더 열심히 함으로서 다른 분야까지도 그 실력을 확산할 수 있을 때 교육은 자리를 잡습니다.

학과목간의 유동성을 인식하지 못하면 주요과목을 위해 미술 체육 등의 과목을 없애야 한다는 이야기가 당연한 것으로 들립니다. 이러한 인식하에서 열심히 한 학교공부들은 사회에서는 쓰이지 못하고 학창시절의 추억으로서만의 가치를 갖습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병행되지 않는 한 앞으로도 우리나라의 교육은 개혁에 있어서 근본적 한계를 넘지 못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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