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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에세이-예수 할머니
동양 에세이-예수 할머니
  • 나기황
  • 승인 2017.12.26 21:5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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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기황 시인·청주성심신협 상임이사

‘예수 할머니’, 생전에 이웃에서 할머니를 부르던 별명이다.

할머니는 누구에게나 영원한 그리움의 대상이요, 고향 같은 존재며 밤고구마처럼 따뜻하고 폭신한 이름이다.

내게 있어서 할머니는 ‘여성’에게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성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다.

할머니를 회상할 때마다 갓 시집온 새색시부터, 사극에 나오는 기품 있는 상궁마마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연상되지만, 가장 많이 떠오르는 건 역시 ‘어찌 저리 항구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할 수 있을까’ 궁금증이 일정도로 인자하셨던 보통 할머니의 모습이다.

유복자와 다름없는 아버지를 청상(靑孀)의 몸으로 키우신 박복한 처지에서도, 평생을 타인에 대한 배려와 섬김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하신 분이다.

할머니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생각날 때면 혹시 할머니께서 살아계시지 않을까 하는 착각이 들 때도 있다.

할머니의 고향은 계롱산 자락, ‘정감록’으로 유명한 ‘신도안’이란 곳인데, 하루는 여럿이 산나물을 뜯으러 갔다가 집채 만 한 멧돼지를 만났는데, 할머니가 몇 마디하자 멧돼지가 그냥 길을 비켜주더라는 얘기.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어느 날, 할머니가 콩밭을 매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수백 마리의 떼 뱀이 피리소리를 내며 몰려와 할머니주위를 한 바퀴 돌고서는 콩밭을 가로질러 그대로 사라졌다는 얘기 등이 그것이다.

그러고 보면 어릴 적 기억이지만 할머니는 확실히 남다른 점이 있었다.

외양간에서 송아지 등을 쓸어줄 때도, 텃밭에서 참외 순을 치면서도 할머니는 끊임없이 혼자 말을 하셨다. 할머니의 손길, 눈길이 머무는 곳에선 늘 할머니의 나지막한 음성이 들렸다. 지금 생각하면 할머니는 모든 대상에게 이야기를 걸며 청상(靑孀)의 모진 삶을 풀어냈는지도 모르겠다.

‘예수 할머니’라는 별호에 대해서도 할머니의 일생을 봐온 사람이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가끔 동네에 거지들이 구걸을 하러 오면, 할머니는 언제나 깍듯이 안방으로 모신다.

할머니는 화롯불에다 찬밥을 데우고 동치미를 내오고 단출하지만 정갈한 상을 차려낸다.

거지가 허기를 때우고 일어설 때면, “돌아다니다 뜨신 물이라도 달래서 요기나 하시라”면서할머니는 고구마 등을 싸서 손에 들려주신다.

“저 집 ‘방죽말댁’은 여간해서 (미안해서)두 번 들르는 거지가 없다.”

할머니는 한사코 들어오라 하고, 거지는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는 아름다운 모습을 자주 목격했던 동네사람들이 할머니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한 번은 그런 인연으로 드나들던 나이 든 거지 한분이 어느 날 엿 모판을 들고 찾아왔다.

사연인즉슨, 할머니의 따뜻한 인정에 감복하여 거지생활을 접고, 엿장수로 나서게 됐노라고.

해서 이제 얻어먹지 않아도 될 만큼 자수성가 했으니 자기가 죽을 때까지 엿은 대겠노라고.

얼마 후 시골에서 청주로 이사를 왔을 때, 어렵게 수소문해 찾았다며 그 엿장수가 한동안 드나들던 기억이 있다. 물론 올 때마다 팔다 남은 엿을 한 보따리씩 놓고 갔다.

할머니에 대한 따뜻한 기억은 얼마든지 있다.

손자에게 주는 물 한 그릇도 꼭 쟁반에 받쳐서 갖다 주시던 할머니의 극진한 사랑은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는 추억의 보물창고다.

어린 시절, 밖에서 놀다 손끝이 아려올 만큼 꽁꽁 언 손을 들이대면 할머니는 말없이 겨드랑이에 품어 녹여주셨다.

밀가루음식을 싫어하던 입 짧은 손자를 위해 풍로에 냄비 밥을 해서 참기름에 싹싹 비벼주시던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추운날씨에도 쪽진 머리를 매초롬하니 빗어 넘기고 눈 쌓인 골목길을 멀리까지 쓸어내리던 할머니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글을 깨우치지 못했던 할머니가 어떻게 글을 읽게 됐는지 모르지만 할머니는 성경을 자주 읽으셨다. 가끔 돋보기를 벗고 먼 산 저녁놀을 바라보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생생하다.

돌아가시고 나서 얼마간의 세월이 흐른 후에 할머니 묘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됐는데, 이장하는 중에 할머니 무덤에서 묵주(默珠)가 발견됐다. 어찌된 영문인지 교적(敎籍)에서도 호적에서도 할머니의 이름을 찾을 수가 없었다.

궁리 끝에 묘소를 단장하고 나서 ‘난(蘭)과 같은(如)여인’이란 의미로 ‘난여’란 이름에 성녀‘데레사’를 세례명으로 지어 묘비에 새겨드렸다.

한 해가 저무는 이맘 때, 몸도 맘도 으스스한 날이면 할머니가 내게 오신다.

“사는 게 힘드나 보구나.”하고 따뜻한 위로를 건네신다.

그 한결같은 사랑으로, 잔잔한 미소로 오시는 ‘예수할머니’가 있어 12월이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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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영 2017-12-27 16:01:25
읽는 내 내 가슴이 따뜻해지는 글입니다
이야기 속 할머니의 후덕하고 향기로운 삶에 저절로 마음이 끌리네요
요즘 같이 각박한 세상에 정말 그리워지는 훌륭한 분 이야기 참 잘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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