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의 탈식민지화’와 ‘영혼의 탈식민지화’
조명희·나츠메 소세키·루쉰의 비교 조명

동양일보가 주최하고 동양포럼운영위원회(위원장 유성종·전 꽃동네대 총장)가 주관한 ‘동양포럼-한·중·일 회의 Ⅴ’가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와 미래공창-조명희·나츠메 소세키·루쉰의 비교 조명’이라는 주제로 지난 8월 13일 개막해 사흘 간의 열띤 토론을 마치고 15일 폐막했다.

Ⅲ. 8월 14일 오전회의

‘혼의 탈식민지화’에 대한 토론

▷조성환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책임연구원 “오늘의 오전회의를 진행하겠습니다. 먼저 일본에서 오신 후카오 요코 교수에게 ‘혼의 탈식민지화’를 학술적 연구과제로 삼고, 거기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오신 동기를 듣고 싶습니다.”

 

▷후카오 요코 오사카대학 준교수 “저는 이번까지 한국은 3번째이고, 김태창 교수와의 첫 만남은 십 수 년 전 북경에서 있었던 일·중 민간사회교류포럼이었습니다. 제가 그때 하는 일은 중국내륙을 필드 워크 하는 일이였고요. 마침 그 자리에 일본 측의 참가자로 참석,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던 것이 상호이해를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 최근에는 ‘혼의 탈식민지화’라는 저의 문제의식과 ‘영혼의 탈식민지화’라는 김태창 선생님의 문제관심이 서로 아우러지게 되어 다시 만났습니다. 물론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김 선생님이 하시는 일에 공감하는 바가 크기 때문에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하기로 했습니다. 조성환 박사가 왜 영혼의 탈식민지화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됐는지에 대해 물으셨는데요. 중국 농촌에서 절실하게 느낀 것인데, 저 자신의 인식 프레임이 알게 모르게 남들 특히 서구 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거기에 필요 이상으로 구속받고 있어서, 거기서 벗어나 저 자신의 사고와 인식의 틀을 짜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학자가 되려고 한건 아니고 우연히 대학원에 진학하게 됐는데, 주변에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10년 동안 포기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절망하고 있다가 육아를 계속하면서 삶과 필드워크를 병행할 수밖에 없다는 각오를 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나온 문제의식이 ‘영혼의 탈식민지화’라는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일본의 남녀관계, 부부관계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안목을 갖게 되었고, 논문이나 책도 그런 각도에서 써왔습니다. 저는 학기마다 20여편 정도의 학생들 졸업논문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대화를 하는데, 거기서 많은 고민들을 듣게 됩니다. 그걸 그림으로 그리라고 했고, 그것들을 함께 보는 과정에서 저 자신도 배우는 바가 많았습니다. 지금 생각하여 보면, 특히 지난 7년 동안 저 자신의 혼을 그 속에 가두어 놓은 질그릇의 뚜껑을 열어 제치는 일을 계속해왔는데,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열심히 연구 활동을 실행하고 있는 동료학자들이 있음을 알게 되어, 그분들과 함께 ‘혼의 탈식민지화’에 관한 연구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한참 동안 암중모색하고 있던 때에 우연히도 김태창 교수님과 야마모토 편집장님과 만나서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그것이 미래공창신문과 동양일보에 게재되는 영광을 얻게 되어 기뻤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혼의 탈식민지화’를 연구할 뿐만 아니라, 저 자신의 삶을 통해서 실천해 나가려 합니다. 지금까지도 그래왔고요.“

 

▷아마모토 교시 미래공창신문 편집인 “이번에 한국에 오셔서 ‘혼의 탈식민지화’와 관련해서 새삼 느낀 바가 있습니까?”

 

▷후카오 교수 “각자가 자기 뚜껑을 벗겨 내는 것이 어디서나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중요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일본이 남의 나라를 식민지화했다는 것은 일본이 자기 자신을 자기의 울안에 가두어 놓는 일에 불과하고, 그것을 늦게야 깨닫게 되어 제대로 사고할 줄 아는 일본인들은 정신적으로 마음이 편치 않은 것입니다. 이번에 한국에 와서 느낀 것은 이런 나라를 식민지하려 했던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일본과 중국은 자주 왕래를 했는데 바로 옆에 있는 나라에 대해 이렇게 몰랐다는 게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까지 무지했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마지막으로 한중일이 서로를 억압하는 뚜껑을 벗겨서 뒤엉킨 한중일 관계를 풀어가는 게 긴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모토 편집인 “후카오 선생님도 지적하셨듯이 한중일 관계가 꼬이면 위험성이 높아지고 전쟁가능성도 있을 수 있는데, 연구자들은 이런 인식을 가져야 할 것 같고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후카오 교수 “저도 생각은 같습니다만, 실제로 어떻게 해야 될지는 더 고민해 보겠습니다. 예를 들어 아베 총리의 경우에는 할아버지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뚜껑을 그대로 두고 그 안에 갇혀 있어서 정치적 해결의 길은 당분간 열기가 어렵지 않겠습니까? 누군가가 그 뚜껑을 열어 제쳐야 되는데 말입니다.”

 

▷김태정 한국외대 명예교수 “나츠메 소세키 전문가이시며 동경외국어대학 교수이신 시바타 쇼지 선생을 소개합니다. 시바타 선생님의 ‘소세키 속에 있는 제국’을 읽고 저도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시바타 쇼지 동경외국어대학 교수 “나츠메 소세키 선생이 런던 유학할 때 일시적으로 기숙사에 칩거한 적이 있었는데, 주위에서는 미친 것이 아닌가하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 되는 유학비를 아껴가면서 책을 샀고, 심리학, 사회학, 철학 공부도 하면서 영문학의 독자적인 입장과 관점과 방법을 새로 세우기 위해서 혼신의 노력을 하느라 밖을 나다닐 여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나츠메 소세키 선생은 무엇보다도 ‘자기본위’라는 자세를 중시했습니다. 비록 정부의 관비생으로 당시 세계 최선진국의 수도 런던에 영문학을 연마한다는 목적으로 유학하고 있었지만, 영국 학자들의 견해나 해석을 수용하고 그것을 번역해서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이해와 해설을 통해서 소세키 나름의 영문학을 구성해 보려 했던 것입니다. 나츠메 소세키 선생은 중국 고전이나 서화에도 시에도 식견이 높았지만, 어디에도 얽매임이 없이 거침없는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일본의 고전이나 전통에도 필요 이상으로 구속되지 않았습니다. 나츠메 소세키 선생은 참된 개인주의를 중시했고 자유로운 혼을 간직하려 애를 썼습니다. 자기만이 아니라 당시의 일본인들이 서양의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도록 있는 힘을 다 쏟았던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소세키가 생각한 것이 각자 한 사람, 국가마다 존중받아야 된다는 게 소세키의 생각이었는데요. 그런 점에 있어서 불가능하게 했던 것이 일본의 제국주의였었고, 그런 것들에 방해를 받았던 것이 한국과 중국의 사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김용환 충북대 교수 “시바타 교수가 쓰신 책을 읽어보면, 나츠메 소세키는 일본의 대한반도 정책에 매우 비판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대중국 정책도 마찬가지구요. 그렇다고 나츠메 소세키는 한국인이나 중국인을 좋아한 것도 아닙니다. 어떤 때는 노골적으로 천시하고 차별의식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나츠메 소세키에게는 한국이나 중국에 대해서 양가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 점에 대해서 시바타 교수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츠메 소세끼는 여러 가지로 돈쓸 일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글을 쓸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글장사를 한 것이 아닌가라는 느낌도 드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시바타 교수 “김용환 교수의 첫 번째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한국인이나 중국인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것과는 상관없이 한국이나 중국을 일방적으로 무력을 써서 침략하고 합병하는 행위가 옳지 않기 때문에 비판한 거지요. 그것은 애매한 양가적 태도라기보다는 분명한 정사(正邪)관의 표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나츠메 소세키가 가족이나 친척과의 관련에서 경제적인 속박에서 말끔히 벗어날 수 는 없었지만, 글쓰기를 통해서 영혼의 해방과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는 치유적인 효과는 인정할 수 있다는 말씀으로 응답하겠습니다.”

 

▷카다오카 류 토호쿠대학 준교수 “어제와 오늘에 걸쳐서 여러 선생님들의 말씀을 듣고, 특히 후카오 선생의 ‘혼의 탈식민지화’에 관한 말씀을 들으면서, 여러 모로 닫힌 혼의 괴로움에 시달렸고 거기서 벗어나는 계기를 어디서 찾게 되느냐는 문제에 대해서 저 나름으로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저도 그 비슷한 세대로서 어렸을 때부터 그런 것들이 있었습니다. 중학생 때는 음악을 해본다든지 나름대로 방법을 모색하기도 했는데, 결정적으로 괴로움에서 해방될 수 있었던 것은 한국과의 만남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연구목적으로 한국을 방문한 것은 아니고 우연히 오게 됐는데, 저의 혼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리고 특히 김태창 교수님과 만남이 혼이 속박하는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갈구하고 있었던 것을 찾았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가 김 교수님을 통해서 한국과 일본의 많은 선생님을 만나지 못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일본에서는 마음이 맞는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한국에 와서는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김영미 선생처럼 나이도 동갑이고 마음이 맞는 그런 친구를 만나게 된 것이 너무나 기쁩니다. 또 조명희 작가처럼 평생 동안 마음의 친구가 될 수 있는 선인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 자신이 실감한 것은 혼의 탈식민지화를 위해서는 좋은 사람들과의 좋은 만남이 필수 불가결이라는 사실입니다.”

 

▷김태정 명예교수 “이번에는 중국에서 오신 궈쟈웨이 교수님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궈자웨이(國家瑋) 산동대학 교수 “루쉰은 개개인의 주체성 확립을 먼저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중국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체성을 찾아 세우고 나서 나라의 주체성을 세울 수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루쉰이 가장 심각하게 염려했던 것은 중국인 하나하나의 마음속 깊이?그러니까 영혼까지?철저하게 노예근성에 젖어 버렸다는 것, 그래서 철저하게 무기력하고 어리석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도저히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기력과 기백을 완전히 잃어버렸다는 것이었지요.”

 

Ⅳ. 8월 14일 오후회의

젊은 세대의 자유토론

 

▷선지수 토호쿠대학 대학원생 “오후 회의의 사회를 맡게 된 선지수입니다. 특히 젊은 세대의 자유토론 시간을 따로 마련하여 주신 동양포럼에 감사하면서, 젊은 참가자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먼저 김세진씨가 발언하겠습니다.”

 

▷김세진 군사학 연구가 “저는 이번 포럼에 참가하고, 이 시점에 이르기까지 여러 선생님들의 귀중한 말씀을 들으면서 영혼의 탈식민지화라는 것은 결국 ‘나는 정말 나인가?’를 묻고 또 묻는 과정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나임’을 제대로 이루지도 세우지도 못하고 무엇인가에 얽매어 있으면, 나는 행동도 할 수 없으니까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묻고 또 물으면서 ‘내가 나’가 되고 온몸으로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다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 나라와 내 겨레는 정말 내 나라와 내 겨레인가라는 물음도 동시에 함께 진행되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김예린 청년농사꾼 “각국, 개인의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각자 다른 내용으로 억압이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관성에 젖어 살기 때문에 억압되어 있다는 것을 자각하기 힘듭니다. 영혼을 억압하는 것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처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파악한 후에는 그것을 해결하려고 노력해야만 합니다. 사실 저는 국가적 차원보다는 개인적인 입장에서 영혼의 탈식민지화를 생각해왔습니다만 영혼이 식민 상태에서 벗어나는 일은 사회적, 국가적 차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역사적으로 한국은 여러 차례 열강들의 침략을 받아왔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패배를 인식하는 방법입니다. 이제껏 우리나라는 평화를 추구하는 우월한 민족, 침략자들은 우매한 오랑캐라고 일컫는 이른바 ‘정신승리법’으로 자위하며 패배를 다뤄왔습니다. 문제를 맞서지 못하고 무력한 자신을 합리화하며 회피하는 것은 영혼을 종속적인 상태로 만듭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약자나 피해자로 여겨 자부심을 갖지 못하는 동시에 패배한 상황을 합리화했기 때문에 종속적인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현재까지도 달라지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우리나라를 일명 ‘헬조선’이라고 일컬으며 스스로 비하하는 것이 그 맥락과 일치합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피해자 혹은 가해자였고 그 속에서 행해졌던 억압과 분노로 아직까지 후유증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미래를 위해서는 이러한 과거의 것들을 털어내고 영혼이 자유로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삐원슈(畢文秀) 부산대학교 중문과 강사 “조명희, 루쉰, 나츠메 소세키 세 명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합치면 무언가 제대로 말할 거리가 나올 것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세 작가는 모두 제국주의 시대를 거쳤습니다. 루쉰은 젊은 시절 일본에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루쉰은 근대화된 일본의 모습을 접하고 큰 충격과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가 중국에 돌아와 자국의 상황을 돌아보니, 자기 민족은 옛 중화의 환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것에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무턱대고 서양이나 여타 열강을 좇자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문학을 통해 동포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고 혁명을 일으키자고 말합니다. 루쉰은 타자를 통한 탈식민지화가 또 다른 식민 상태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문제를 알고 그것을 벗어나기 위한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자국 시민들을 깨우치고자 노력했습니다. 나츠메 소세키는 영국에 방문했을 때 선진 문물에 압도당합니다. 그는 일본이 동아시아에서는 열강이지만 더 넓은 세계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에 충격을 받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영국에 있을 때 느꼈던 약자의 입장을 작품에 녹여낸 것이 아닌가 합니다. 조명희 작가는 러시아로 이주, 지배당하고 있는 조국의 자유해방을 위해 온힘을 다합니다. 이 세 작가는 모두 19세기 식민주의를 경험하며 상실한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되찾고 식민 상태에서 벗어나야한다고 강하게 말합니다.”

 

▷유일환 서강대 철학과 학생 “저는 포럼을 들으면서 영혼의 탈식민지화를 위한 실천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가장 궁금했습니다. 선생님들께서 생명, 연대에 대해 많이 말씀해주셨는데 시간이 흘러서 그것을 실천해야하는 것은 젊은 세대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론을 듣고 앎으로만 남겨서는 안 되기 때문에 실천 방안에 대해 이야기 듣고 싶습니다.”

 

▷박소예 서강대 국문과 학생 “저는 식민지화라는 단어의 의미를 모르겠어서 검색을 해 봤더니 어떤 지역이 공간적으로 떨어진 본국의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인 지배하에 놓인 것이라고 합니다. 영혼의 식민지화도 이와 비슷하게 어떤 주체가 다른 것으로부터 지배돼 종속되는 것이라고 이해했습니다. 한·중·일 삼국의 탈식민을 위해서는 각국이 주체적으로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그것에 맞서는지가 가장 주안점이 아닌가 합니다. 제가 읽어보았을 때 루쉰은 자국의 문제점을 가장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근대화되고 있는 세계의 흐름을 발맞춰나가지 못한다는 점을 깨닫고 자신들의 손으로 혁명을 일구자고 외칩니다. 소세키는 어쩌면 다른 동아시아 국가와는 다르게 지배의 입장에서 우월감을 느끼는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서양 강국과의 관계에서는 열등감을 느껴야 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이 괴리감이 자신의 작품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합니다. 본인의 것을 발전의 토대로 삼아 새로운 시대를 만들자는 이 둘과는 다르게 조명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입장으로 종래에는 본인도 탈영토화를 하는 인물입니다.”

▷안지선 서강대 사회과학부 학생 “저는 루쉰의 아Q정전과 조명희의 낙동강을 읽고 국가가 어떻게 개인을 영속하는지에 대해 신문에 기고했습니다. 식민지배의 역사를 겪은 국가들에 식민지 정신이 잔존하게 되고, 이는 백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흉터로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타성에 젖은 자신을 털어내고 개개인들이 주체적 삶을 사는 방향의 탈식민지화를 이뤄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의 교육을 고치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교육방식은 흔히 말하는 주입식교육으로 우리는 끊임없이 세뇌되어왔던 지식이나 양식에 의해 행동하게 됩니다. ‘1 더하기 1은 2’와 같은 공식처럼 모든 것에 정답이 있고 그 정답에 따라야만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 정답에서 벗어나는 것을 우리는 두려워합니다. 대학에 입학하면 토론식수업이 있긴 하지만, 10년 넘게 지식을 강요당하고 있다가 갑작스러운 자유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린 나이부터 자신의 생각이 어떠한지 명확히 밝힐 수 있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는 배경을 만들어야 영혼의 탈식민지화가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리란(李然) 교토대 대학원생 “식민지화의 탈출에는 자력탈출과 타력탈출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 타력탈출은 다시 식민지화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위험합니다. 그래서 탈출을 향한 의지, 의욕이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탈출하려는 의욕이 없으면 형태상으로는 탈출이 되었다 해도 제자리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탈출하고자 하는 의욕도 자력과 타력 의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자신 안에서 탈출하자는 의지가 생겨나는 것과 외부의 자극을 받아 탈출하고자 욕망하는 것의 두 가지입니다. 루쉰은 이 두 가지 중 자력탈출에 무게를 뒀습니다. 루쉰은 중국인들이 자력으로 탈출하기를 바랐습니다. 루쉰은 무리하게 중국인들을 탈식민지화 하려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타력이 아닌 자력으로 탈출하기 위해 자국민들을 자극했습니다. 이를 통해 오늘날 우리의 상황에서 우리의 역할은 무엇인가, 어느 정도의 자극을 주어야하는가 등 탈식민지화의 방법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또 ‘타자의 모습을 보고 탈출하는 타력탈출에는 탈식민지화의 과정에서 생기는 또 다른 식민지화의 문제가 걸려있지 않은가’하는 문제를 제기하며 탈식민지화의 올바른 방법을 찾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텐 베니아민(TEN Veniamin) 교토대 대학원생 “조명희 선생의 러시아 망명 등 러시아와 조명희의 관계는 깊습니다. 조명희 문학관를 방문했을 때 러시아어로 적힌 안내문을 보고 한 가지 에피소드가 떠올랐습니다. ‘나는 돌아간다’라는 제목의 러시아 기사였습니다. 조명희 선생이 KGB에 체포되기 직전 딸과 나눈 대화입니다. 조 선생은 ‘나는 소련에 나쁜 짓을 하지 않았으므로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그의 성실하고 정의로운 성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 포럼을 준비하면서 미숙한 한국어실력임에도 하루 3~4시간씩 사전을 찾아가며 조명희 선생의 작품을 읽었습니다. 그러면서 제 나름대로의 관점과 해석을 갖게 됐습니다. 문학관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한 가지 위화감이 드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문학관에서는 조명희 선생이 프롤레타리아트 문학가로 소개했는데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합니다. 조명희 선생의 ‘아들의 마음’이라는 작품을 살펴보면 집도 없고 손도 없는 병자가 강한 자가 되고 싶다는 의지를 가진 인물이 나옵니다. 그는 혁명에 도움이 된다면 모든 것을 주어도 좋다고 말합니다. 이런 부분에서 프롤레타리아트 문학과 접점이 있을 수 있지만,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나 미안한 감정에 대한 표현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를 보았을 때는 프롤레타리아적이라기보다는 강해지고 싶은 인간의 욕망, 근원적 우주적 생명력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 강하게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젊은 세대의 자유로운 대화’ 자리의 의미는 보편적인 진리를 찾자는 데 있다기보다는 ‘타자’를 만나 자신의 입장을 재확인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타자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을 다시 한 번 정립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세진씨가 나와 우주와의 관계를 설명하며 나에서 우주적인 나로 가는 과정이 탈식민지화로 가는 과정이라고 말하였고 이에 대해 선지수씨가 타자와의 관계가 좀 더 논의되어야 한다고 지적한 부분에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교육의 문제를 말하자면 교육이 학생들로 하여금 자부심을 갖지 못하게 한다는 데 크게 동의합니다. 지역에서 교육의 새로운 모델을 찾아가는 것도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임지혜 충북대 대학원생 “저는 식민지화란 규정대로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고, 탈식민지화란 그것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라고 이해했습니다. 탈식민지화의 개념에는 동의하지만 이를 현실에서 주체적으로 실천하기엔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돈, 문화, 법 등으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압박하고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주변인들로부터 독특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저는 세상의 규칙이나 문화에 구애받지 않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고 존중· 배려· 사랑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데 한 시각과 세상의 시각이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차가운 세상 논리에 실망하기도 하고 내 주변이라도 따뜻하게 데우겠다는 의지를 다지기도 하지만, 이내 이 세상을 지배하는 논리 앞에서 우리 개개인은 너무도 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힘이 강력하다고 해도 그에 굴복하고 자포자기하는 삶을 산다면 그것이 더 슬픈 삶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미약하나마 세상을 더 따뜻하게 만드는 데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고민하다가 세계시민의식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국가나 성별, 생물종 구분 없이 모든 생명체를 배려하고 존중하며 상생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그 근간이었습니다. 세계시민의식의 기반에서 특정가치를 강요하는 것도 식민지화의 일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 어떤 식민지화라도 막아내기 위해서는 우리는 그 어떤 것도 옳다고 주장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생각도 가능한 것으로 생각해야합니다. 우리는 서로 존중하되 다만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개인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중·일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 우리는 사람들이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식민지화되는 것을 방어하기 위해서 사고하는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노력해야합니다. 약육강식의 논리로 소위 갑질하는 사람들,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부모, 자신의 가치관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들 등 이미 식민지화된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매우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고하는 역량을 강화한다면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사고하는 때가 이 세상이 오랫동안 이어온 다툼이 사라지고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어갈 기반이 조성될 때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렸던 평화로운 모습이 조명희의 시 ‘경희’에 나타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시의 화자처럼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제가 꿈꾸는 평화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나다 켄이치 모리미야 의료학원 소속 “제가 말씀드릴 내용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오사카 재일교포와 교류하고 느낀 점, 둘째는 전쟁을 겪은 할아버지의 이야기, 셋째는 한국의 신조어 ‘헬조선’과 관련, 일본 현실에 대한 문제입니다. 첫 번째로 오사카 재일교포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저는 아버지 일 때문에 싱가폴에서 8년간 살다가 일본에 돌아왔습니다. 일본사회에서는 자신과 다른 것을 경계하고 배척합니다. 저는 싱가폴에서 일본에 되돌아왔을 때 학교에서 배척당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재일교포들이 그런 차별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사카에서는 도덕수업이 있어서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차별하지 말라는 교육을 합니다. 제가 느끼기에 이 교육은 꽤 성공적입니다. 하지만 아직 일본사회에는 드러나지 않게 결혼 반대 등 재일교포에 대한 차별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차별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은 노력은 물론 교육 등 국가적 차원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 말씀드릴 것은 시베리아에 억류되었던 할아버지 이야기입니다. 조명희도 시베리아에 억류되었듯 아시아가 전쟁에 휘말려 비슷한 경험을 많이 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제 야마모토 선생께서 출판의 공공적인 의미에 대해 말씀해주셨는데,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희 할아버지는 만주에 군인으로 갔다가 소련에 붙잡혀 몇 년간 강제노역을 하다 돌아오신 분입니다. 이런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인터뷰를 통해 책으로 출간된 적이 있습니다. 시베리아에서 돌아와서 일본에서 어떤 차별적인 대접을 받았는지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또 아버지가 오사카에 계실 때의 소설을 쓴 적이 있었는데 사회주의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할아버지가 학교에 불려가 질책을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들은 책을 통해 알게 됐고 그 덕에 구제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것들이 식민화된 사회에 의해 일어난 현상이 아닌가 합니다. 마지막 주제를 말하자면 근대화과정에서 산업혁명의 힘을 느낀 일본은 국가적인 경제를 만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공포심에 사로잡혀 환경과 자연을 파괴하며 상대로부터 빼앗는 것을 정당화하는 정당화기제가 발달됐습니다. 예를 들면 일본인은 뛰어나고 조선인은 뛰어나지 못해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공격적인 메시지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조선인· 한국인은 물러가라’와 같은 헤이트 스피치에 남아 있습니다. 결국 이런 남의 것을 빼앗는 경제는 오늘날에는 한계에 달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츠메 소세키가 지적했듯이 남의 것을 빼앗는 식민지 경제시스템은 그 생명을 다했고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김병훈 충북대 대학원생 “제가 군 복무를 할 때였습니다. 공역통제라고 해서 비행기가 뜨는 것을 통제하는 것을 봤습니다. 한·중·일 세 나라의 비행기가 협력하고 양보하며 하늘 길을 이용하는 것을 보며 ‘사실은 동아시아의 세 나라가 서로 협력하고 있고나’ 하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번 행사처럼 민간차원에서도 대화하고 소통하는 행사도 바람직합니다. 비록 며칠간의 짧은 시간이지만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얻은 영감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을 대면하고 그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되겠지요. 탈식민지화와 탈영토화가 힘들고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다음 두 짧은 글로 제 이야기를 끝맺겠습니다. 괴테가 ‘나는 불가능을 갈망하는 자를 사랑한다.’고 말했듯 계속해서 도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또 헤겔이 ‘참답게 노력하기를 오래 쌓아 가면 저절로 신과 위가 녹아들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윤회에 관통하게 되고 나의 행동과 하는 일이 익숙해져서 점차 쉽고 편안하게 된다.’고 했듯 꾸준히 노력해야합니다.”

 

▷진종현 교토부립대학 연구원 “간결하게 말하다보니 비약이 좀 있습니다. 정체성을 갖춰지기 전 존재로서의 인간과 정체성을 갖춘 인간으로 나누고 그것의 중간을 나사의 형태로 봤을 때 식민지화와 탈식민지화로 나눌 수 있고 그런 과정· 결과와 방향성이 있다는 것에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독립한 주체로서의 개인 또는 자립할 수 있는 존재로서의 개인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 대한 평가를 할 때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탈식민지화라는 개념은 식민지화라는 개념이 있기 때문에 존재합니다. 따라서 그 둘은 한 세트처럼 연결돼 있습니다. 저는 식민지화와 탈식민지화를 하나의 권력관계로 보고 있는데, 이런 권력관계가 없는지 혹은 없을 수가 있는지에 대해 다음 기회가 있다면 여러분들과 더 대화하고 싶습니다.”

 

▷최다울 토호쿠대 대학원생 “탈식민지화를 어떻게 하느냐 보다는 내가 무엇에 식민지화가 되어있는지, 내가 무엇을 식민지화하고 있는지 밝히는 작업이 더욱 중요합니다. 자기 본연의 혼이 있으면 억압 등에 의해 뚜껑이 닫힌 모습의 혼이 생기고 뚜껑 바깥에 상자를 둬서 사상, 관계 등의 것들을 두고 바깥의 자신을 만들게 됩니다. 바깥의 자신과 본연의 자신의 괴리가 클수록 문제가 생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외부에서 온 것들, 예를 들어 애국심이나 자부심이 필요하긴 하지만 이러한 행동에 대한 강요도 식민화의 한 종류가 될 수 있습니다.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교육방법도 식민지화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 실마리를 찾는 것이 탈식민지화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식민지화된 모두를 삭제하고 버려야한다고 하지만, 본연의 나와 일치한다면 버려야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으로 수용할 수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탈식민지화의 방법을 찾는 일보다는 무엇에 식민지화가 되어있는지 찾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정리/김재옥·신홍경·박장미·임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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