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대성중 교장 임개철

제자가 건네주고 간 화분에 이제 막 피기 시작한 꽃봉오리가 마치 내가 처음으로 교직 발령을 받고 교단에 섰던 때처럼 풋풋하다. 정년퇴직을 앞두고 돌아보니 지난 36년간의 시간이 화살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학생을 지도하는 것이 예전과는 참 많이 달라졌다. 그만큼 세월이 흐르기도 했지만 지금은 사랑의 매라도 학교에서 체벌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학생들을 믿고 기다리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리고 소위 문제아라고 부르는 학생은 관심있게 지켜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C고로 첫 발령을 받은 나는 아내를 참 무던히도 괴롭혔다. 담임선생님 집이라고 예고도 없이 찾아온 제자들을 그냥 보낼 수가 없어서 없는 반찬이라도 꼭 밥을 먹여 보내게 했다. 더러는 찬이 없어 라면을 끓여줘도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먹어치우는 제자들이 그저 고맙기만 했다.

언젠가는 한 밤중에 ㅇㅇ파출소라고 전화가 왔다. 내가 담임을 맡고 있는 학급 학생이 싸움을 해서 파출소에서 임시 보호를 하고 있다는 전화였다. 잠을 털고 허겁지겁 옷을 주워 입고 나가는 내게 아내는 “천직인가 봐” 하며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그렇게 말썽피던 제자가 취직했다고 찾아오고 군에 입대한다고 찾아왔다. 또 결혼한다며 주례를 부탁하러 오기도 하고, 명절이면 제자가 아이들 손잡고 가족이 함께 와서 인사를 하기도 한다. 그러면 아내는 나보다 더 신이 나서 이것저것 먹을 것을 내놓고 음식을 싸주기도 한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제자가 있다. 수업료 마감날이 지나도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이미 부모님께 수업료를 타다가 엉뚱한 곳에 모두 써버린 것이다. 수업료는 한 푼도 남아있지 않았다. 넉넉지 못한 환경에서 어렵게 공부를 한 나는 그날 아내 앞에서 나의 남루했던 어린 시절을 오랫동안 이야기 했다. 그리고 아내의 눈치를 보며 설거지는 물론 엎드려 방까지 닦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나중에야 사실을 안 그 학생의 어머니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고춧가루와 참깨, 참기름을 놓고 가며 철없는 놈 취직하면 꼭 갚겠노라는 말을 남긴 채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 듯 갔단다.

그 제자는 30년을 한결같이 스승의 날이 돌아오면 전화를 하거나 찾아오곤 한다. 그러면서 자기는 선생님 때문에 개과천선(改過遷善)했다고 한다.

‘선생님은 형이 없는 제게 형 그 이상이었다’며 호탕하게 웃는다. 내 아들처럼 듬직하기만 하다.

불과 십여 년 전만해도‘사랑의 매’라고 해서 선생님들의 꾸지람과 가벼운 체벌이 효과를 발휘하곤 했다. 그러나 요즘은 교실까지 찾아와 자식의 일방적인 이야기만 듣고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채, 교사의 교권을 침해하는 학부모도 종종 있다. 겸손하게 자식을 가르치는 교사를 이해하며 받아들이는 학부모의 순수함이 더러는 아쉽기만 하다.

나는 항시 ‘선생님은 학생을 혼 내킬 의무가 있고, 학생은 선생님께 혼날 권리가 있다’는 교육관을 가지고 있다. 수업시간에 조는 것도 아니고 아예 엎드려 자는 학생을 마땅히 꾸중하는 것이 교사의 할 일이리라. 그런데 꾸중하는 선생님께 욕하고, 욕하는 학생을 가볍게 체벌했다고 경찰서에 신고하는 것이 요즘 현실이다. 또 체벌하는 선생님을 핸드폰으로 찍어 언론사에 보내는가 하면, SNS에 올려 선생님들이 수난을 당하기도 한다. 생각만으로도 훈훈한 온기가도는 사제지간의 정이 오가야 할 곳이 학교인데 순찰차가 왠말인가? 따뜻함이 묻어나는 옛 교실이 점점 더 그리워진다. 제자들의 존경은 받지 못할지언정 교사가 세상의 질타를 받고 있는 요즘을 생각하면 그저 입맛이 쓰다. 어제 같지 않은 오늘이다.

꽃봉오리를 가만히 쓰다듬어 본다. 꽃송이의 가슬가슬함이 첫 발령지에서 쓰다듬던 까까머리 제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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