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호 일본 구마모토국제대 부이사장

(이충호 일본 구마모토국제대 부이사장) 나는 어릴 때 가난해 재대로 입을 옷이 없었다. 땔감도 없어 춥게 살았다. 나는 추위가 싫었다. 그래서 추위와 싸우고자 마음먹고 행동했다. 동장군이 몰아붙일 때면 정말로 추웠다. 방에 둔 방 걸레가 꽁꽁 얼어 청소할 수도 없었다.

군불도 때지 않은 아주 차가운 냉방에서 머리를 싸매고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머리 싸매고 공부하던 그 열기가 매서운 추위 가운데서 나를 따뜻하게 만들었다.

요즈음 아이들은 추위를 모르고 살아간다. 추위와 싸울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사는 것이 애석해 보인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겨울이 되면 땔감이 걱정된다. 부자들이야 무슨 걱정이 있으랴만 가난할수록 이 일에 대해서는 더욱 심각하다.

부자들은 가을에 겨울 내내 사용할 나무를 넉넉하게 사서 쌓아둔다. 겨울 준비를 위해서 연료는 김장과 함께 필수적 요소였다.

그런데 지금은 겨울 준비를 하는 가정이 거의 없다. 이와 같은 준비도 시대의 변천에 따라 땔감이 연탄에서, 기름, 가스, 전기보일러로 변천 발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인간 삶의 필수요소는 의·식·주이다. 이를 위해 돈이라는 재화를 모아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가야 편리하게 살 수 있게 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 인간들은 이를 위해 서로 견제하면서 자신의 삶을 영위해 간다.

이를 위해 서로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생존경쟁의 장에서 우리는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가진 자는 겨울에 따뜻하게 살고, 못가진 자는 춥게 사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 이론을 제기해보고자 한다.

가진 자나 못가진 자 모두 추운 곳, 어두운 그늘진 곳을 찾는 자는 춥고, 밝은 곳, 따뜻한 곳을 찾는 자는 따뜻하다.

나는 그 옛날 추운 환경 가운데서도 따뜻하게 살았던 것 같다. 어둔 곳, 그늘진 곳을 찾지 않고 밝은 곳만 찾아다녔다. 그 매섭던 추위에서도 추운 줄 모르고 살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기억이 난다. 따스한 우리 할머니의 정이 나를 언제나 따스하게 녹여 주었고, 많은 형제들 틈바구니에서 따뜻하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은 그 옛날에 비하면 정말로 추울 것이 없는 환경이 우리의 모습이다. 그 때처럼 추위도 오지 않고, 입을 것도 많이 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이 찾아 가는 곳이 어둡고 그늘진 곳이 너무 많이 있다. 가족, 친구 등의 따스한 손길보다는 온갖 음란 사이트 등 음지의 것들이 우리 아이들을 더 많이 유혹하고 있다.

집에 가도 나를 따뜻하게 반갑게 맞이해 줄 식구들이 별로 없다. 춥고 그늘진 곳만 찾아 다니다보니 추울 수밖에 도리가 없다. 자리를 박차고 따뜻하게 비춰주는 햇빛을 찾아 나아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어릴 때 내가 아는 사람은 추워서 잠시 동안만 따뜻한 논 두락에 있다가 잠이 들었는데, 햇빛이 지고 나서도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다가 얼어 죽었다. 움직이지 않고 잠시 동안의 안이함을 주는 곳에 빠져들게 되면 바로 추위가 찾아와서 얼어 죽게 된다.

우리 학생들이 이와 같이 잠시 동안의 따뜻하고 달콤한 유혹에 빠져들지 않도록 우리 선생님들이 잘 지도해야 한다.

지금도 매서운 추위에서 떨고 있는 아이들이 우리 주위에 많이 있다. 날씨가 추워서 추운 것이 아니고, 가정환경이 어려워서 추위에 떨고 있는 아이들에게 따스한 햇볕으로 나아올 수 있도록 안내하는 안내자가 필요하다.

아무리 추워도 열심히 움직여 자신의 일을 찾아서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노력하는 자는 추위가 와도 춥지가 않다. 옷을 많이 입어야 춥지 않은 것이 아니다. 어두움의 그늘에 머물지 않고 밝은 햇빛을 찾는 자만이 따스한 겨울을 날 수가 있다. 추운 곳만 찾아다니는 우리 학생들이 따뜻한 곳을 찾도록 안내자의 역할을 학교에서 담임선생님과 전문상담 선생님들이 잘 해야 하겠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