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준 청주시 용암1동주민센터 주무관

(동양일보) 올여름 나는 여태껏 맞이하던 뜨거움보단 시원한 빗줄기로 가득 차길 바랐다. 하지만 이런 바람과는 달리 하늘은 시원한 빗줄기 대신 무섭고 끔찍한 빗줄기를 내 삶의 터전인 청주에 퍼부었다.
2017년 7월 16일 새벽에 청주 전역을 강타한 집중호우는 나로 하여금 기상현상, 특히 비의 무서움을 깨닫게 해줬다. 그것은 더 이상 어린 시절 간접적으로만 접하던 ‘남의 일’이자 ‘다른 고장의 일’이 아니었다. 
이 날 새벽부터 내린 비는 시간이 지나도 도무지 그칠 줄 몰랐다. 마치 하늘에 작아질 줄 모르고 커져만 가는 구멍이 뚫린 듯했다. 청주는 문자 그대로 물 폭탄을 맞았고 물바다가 됐다.
이른 아침부터 출근해 상황 보고를 받고 수해 피해 파악을 위해 청주 곳곳을 다녔다. 수마가 쓸고 간 자리들은 끔찍했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도로와 다리는 집중포화를 맞은 것처럼 무너져 있고, 농경지의 농작물들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다. 건축물 지하에는 흙탕물이 넘쳐났으며 가게들 또한 흙탕물이 자아내는 탁한 노을빛으로 물들어 아수라장이 돼 버렸다. 무엇보다 무겁게 다가온 것은 갑작스럽게 삶의 터전에 엄청난 타격을 입은 시민들의 절망감과 슬픔이었다.
수해 현장으로 가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시민을 구하는 경찰관의 모습을 봤다. 다행히 그 시민은 경찰관의 필사적인 노력 덕분에 무사히 구조될 수 있었다. 안도감이 들었다. 동시에 시민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자연 대재해가 언제 다시 청주를 덮칠지 두려워졌다.
하지만 시민을 위해 공직에 임하고 있는 공무원으로서 언제까지나 현장에서 수수방관하며 감정에 사로잡힐 순 없었다. 의연히 팔을 걷어붙여야 했다. 해야 할 일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이들을 꿋꿋이 해 나가기로 결심했다. 
우선 우리 용암1동 곳곳에 자리한 포도밭으로 가 수해 복구에 힘을 보탰다. 주민 센터 직원들과 군인, 경찰, 자원봉사자들과 흙탕물로 오염될 대로 오염된 농경지 복구를 도왔다.
그리고 인력 지원과 수해 신고서 접수 및 지원금 지원을 담당했다. 접수 결과 파악한 용암1동 피해 규모는 주택 43건, 주택 기타 10건, 농경지 157건, 농작물 232건, 소상공인 피해 30건, 중소기업 2건 등이었다. 
수해 복구와 피해 신고서 접수에 임하면서 수마로 인해 농업, 공업, 상업 주택 등 삶의 터전을 하루아침에 잃은 주민들의 아픔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그날 뻥 뚫린 하늘에 그들, 주민들의 마음은 푹 꺼져 버린 땅처럼 절망의 늪에 가둬 버렸다. 자연재해 앞에 인간은 너 나 할 것 없이 한없이 나약해 보였다.
하지만 옛적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도 하다. 다른 동물과는 다른, 서로 의지하는 마음으로 눈물을 닦아주고 도와주며 역경을 헤쳐 나갈 줄 아는 ‘위대한’ 사회적 동물 말이다.
특히 우리 용암1동 주민들은 평소에 지닌 성숙한 시민 의식을 바탕으로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 안고 위로하며 난관을 헤쳐 나가는 지혜를 몸소 잘 보여주었고 실천했다. 이에 나는 피로한 가운데서도 공무원으로서 용암1동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됨에 뿌듯함을 느끼고 주민들과 함께 수해를 극복해나갈 수 있었다.
자연재해는 어떻게 보면 불가항력적일 수 있다.
하지만 평소에 ‘성숙한 시민 의식’을 밑거름으로 해 ‘철저한 재해 대비’라는 나무를 심고 키워간다면 슬픔과 절망감으로 시민들의 마음이 푹 꺼지는 것을 상당 부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진부한 말이지만 유비무환은 어느 시대, 어떤 장소에서도 강조돼야 할 삶의 ‘태도’인듯 하다.
앞으로 계속 청주에 몸담으며 시민에게 봉사할 공직자로서 이를 늘 머리와 마음에 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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