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호 중부대 교수

(최태호 중부대 교수) 예전에 어른들이 자주 사용하던 말이 있다. 그 중 하나가 ‘골백번’이라는 말이다. 골백번은 도대체 몇 번을 말하는 것일까? 우리 할머니는 손주들이 속을 썩이면 “이놈의 새끼들 베람빡에 콱 쳐발라 버릴껴.”라고 하신곤 했다. ‘벽’이면 벽이지 ‘베람빡’은 또 뭘까? 대충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의 뜻은 알겠는데 정확하게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아는 것은 어려웠다. 아마도 독자들도 많이 듣던 말이기는 한데 정확한 의미가 뭘까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정답은 맨 뒤에서 하기고 하고 우리가 잘못 사용하고 있는 말들을 몇 가지 가려보고, 외국인들이 힘들어하는 띄어쓰기와 의미에 관해 알아보려고 한다. 한국이도 한국어 띄어쓰기는 어렵다고 한다.

우선 의미 전달의 오류를 먼저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가 모두 속고 있는 말 중에 가장 대표적으로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이 ‘분리수거’다. ‘분리(分離)’한다는 말은 ‘서로 나뉘어 떨어짐, 혹은 그렇게 되게 함’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하는 일은 종이와 유리병, 플라스틱 병 등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즉 종류를 나누는 것이지 병과 뚜껑을 분리하듯이 나누는 것이 아니다.

다음으로 ‘수거(收去)’라는 말은 ‘거두어 감’을 뜻한다. 우리가 밖으로 내 놓는 일을 수거라고 하지는 않는다. 수거하는 것은 시청 청소과에서 담당하고 있다. 주체가 잘못 되어 언어전달의 오류를 낳고 있다. 우리는 수거(收去)하는 것이 아니고 배출(排出 : 안에서 밖으로 내보냄)할 뿐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고 있는 ‘분리수거’는 ‘분류배출’로 바꿔야 정확한 표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냥 사용하고 있고, 분류배출의 의미로 알고 있다.

다음으로 우리 과(한국어학과)에 와 있는 외국인 유학생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띄어쓰기가 왜 필요한 것인지 알아보기로 한다. 중국인 학생 중의 하나가 발표한 내용 중에 ‘할머니뼈해장국’이야기가 있다. 한국사람들은 ‘할머니 뼈로 만든 해장국’을 먹는 줄 알고 놀랐다고 한다. ‘할머니 뼈해장국’과 ‘할머니뼈 해장국’의 차이다. 한국인이라면 굳이 띄어쓰기를 하지 않아도 알아들을 수 있지만 외국인은 다르다. 정확한 의미전달이 되지 않아서 놀라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그 중 몇 가지만 들어 보면 ‘아줌마내장탕’, ‘엄마손칼국수’ 등이 있다. 외국인들과 대화할 때 즐겨 사용하는 소재들이다. 간판에 나와 있는 것은 모두 음식의 이름이지만 내용으로 본다면 섬뜩하다. ‘아줌마 내장을 끓인 국’과 ‘엄마 손을 뽑아서 만든 칼국수’로 오인할 수도 있다. 과거에는 대포집(대폿집)이 많았다. 필자의 어린 시절에는 한 집 건너 하나 씩 대포가 있었다. 필자는 정말로 대포가 있는 줄 알았다.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세상이다 보니 대포(大砲)를 가정에 상비하는 줄 알았다. 사실은 바가지 ‘포(匏)’ 자로 ‘큰 바가지로 술을 퍼주는 곳’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어린 마음에 대포는 그저 한 가지 종류밖에 없는 줄 알았다. 정확한 의미 전달을 위해서는 한자어와 띄어쓰기 등이 항상 필요하다. 몇 가지 예를 더 들어 보자. ‘서울시체육회(서울 시체 육회, 서울시 체육회)’, ‘서울장애인회관(서울시장 애인 회관, 서울시 장애인 회관)’, ‘무지개같은빛깔(무지 개 같은 빛깔, 무지개 같은 빛깔)’ 등과 같이 뜻이 전혀 달라지는 것도 많다. 우리가 어려서 많이 읽었던 글 중에 “아버지가방에 들어가신다(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가 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그냥 웃고 넘어갔지만 외국인과 같이 공부하다 보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외국인들은 “문 닫고 들어와”하면 “문 닫고 어떻게 들어가요?”하고 바로 반문한다. “꼼짝말고 손 들어”라고 하면 “꼼짝 않고 어떻게 손 들어요?”하고 어려워 한다.

우리가 흔히 쓸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고 있지만 깊이 생각하면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참으로 많다. 의미도 모르면서 쓰는 말도 있고, 비논리적인데도 불구하고 쓰는 것도 많다. 한자어를 병기하지 않으면 뜻이 통하지 않는 것도 있고, 띄어쓰기를 하지 않으면 의미가 전혀 달라지는 것도 있다. 이런 것들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의미전달의 오류에 빠질 수 있다. 가르치는 사람이 바르게 알아야 제대로 가르칠 수 있다. 대부분의 다문화가정 남편들이 한국어에 자신이 없기 때문에 결혼이주여성들의 한국어 능력이 어느 정도에 이르면 더 이상 수준이 올라가지 않는다. ‘옷이’와 ‘옷안’의 발음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오시’와 ‘오단’ 이라고 발음은 잘 하지만 왜 하나는 ‘ㅅ’으로 발음하고 하나는 ‘ㄷ’으로 발음하는지 알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가 한국어를 모두 잘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산다. ‘분리수거’와 ‘분류배출’도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지 않는가?

이제 독자들을 위해 답을 밝혀 보기로 한다. 골백번은 백만 번을 뜻한다. ‘골’이 순 우리말로 만(萬)이다. 베람빡은 ‘바람 벽(壁)’을 말하는 것으로 ‘바람’이 순 우리말로 벽이다. 우리말을 사랑하면 한자공부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그 속에 순 우리말이 다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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