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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에세이- 썩은 동태 눈깔…
동양 에세이- 썩은 동태 눈깔…
  • 이건영
  • 승인 2018.01.0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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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영 충북도교육청 교육복지과장

어느 한가한 날, 아련한 추억에 엷은 미소가 번진다.

30년이 훨씬 지난 어느 3월, 나는 충북 병력으로 옥천 기차역에 대기 중인 논산훈련소 행 입영열차를 탔다. 나는 빡빡 밀은 머리를 하고 열차에 앉아 있었고, 밖에서는 장병들과 가족들이 뒤엉켜 이별의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열차가 철길을 서서히 미끄러져 플랫 홈을 벗어나자, 갑자기 인솔 군인들이 분주해 지면서 각 종 얼차려(기합)가 시작됐다. 일순간 아수라장으로 변한 열차는 상상 밖의 풍경을 싣고 논산훈련소로 향했다.

신병훈련이 끝나고, 경남 김해에 있는 ‘육군공병학교’에 배속을 받게 되면서 조교로서 군 생활을 하게 되었다. 군 생활이 익숙해 질 무렵(일병)인 어느 날, 내무반장이 중대원들을 다 불러 모아 놓고 “이번에 여단에서 실시하는 6.25 전쟁 웅변대회에 참가하여야 하는데 학창시절에 웅변을 해본 사람 있나?”라고 물었다. 중대원들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나 또한 경험도 없었지만 할 의향은 더더구나 없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모든 중대원들은 내무반장과 눈동자를 마주치지 않으려고 머리를 아래로 푹 숙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이건영 일병이 하면 잘할 거 같다고, 중대원들 중 목소리가 제일 좋다고 추천을 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망치에 얻어맞은 것처럼 아무 생각도 안 났다. 나는 어려서부터 목소리가 좋다는 말을 많이 듣고 살았지만 하필 이때 이런 일이 발생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순식간에 웅변대회 참가자로 결정된 현실에 너무 황당하였지만, 누구를 원망하는 것도 사치였다. 웅변대회 기간이 열흘이 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고를 쓰고, 산에 올라가 작은 폭포 아래서 소리 질러 연습을 했다. 흡사 창(唱)을 부르는 소리꾼들처럼 득음을 하듯 외쳐 댔다.

열흘의 기간이 찰라(札剌)처럼 지나고, 오후 3시경 CP 연병장에서 웅변대회가 열렸다. 13명의 연사들이 대기하고 있었으며, 연단 위에는 군 간부들과 심사위원들이 10여명 있었다. 연병장에는 3백여 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장병들이 앉아 있었다.

웅변이 시작되었고, 앞서 시작한 5명의 연사는 정제된 원고와 세련된 제스처, 풍부한 경험으로 정말 멋지게 웅변을 하였다. 다음으로, 내가 연단 위로 올라가고, 원고를 펼쳐 놓으며 아래 연병장을 내려다보니 장병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극도로 긴장을 한 탓에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이지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심호흡으로 마음을 다잡고 일성(一聲)을 내 뱉었다. “여러분, 이 썩은 동태 눈깔을 보십시오. 이 썩은 동태 눈깔로…”

연단 위 군 간부들과 연병장의 장병들은 ‘뭐가 이런 세련되지 못한 연사가 다 있나’하고 일제히 크게 웃기 시작했고, 엄숙한 분위기는 삽시간에 웃음바다가 되어 버렸다. 사실, 이 원고의 내용은 위정자들의 썩은 동태 눈깔로 인하여 6.25가 발생하고 나라에 변고가 생겼으니 이제부터라도 눈을 똑바로 뜨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바르게 살아가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입상자 명단에 내 이름은 없었다.

연병장에 홀로 남은 나는 ‘이제 어찌 해야 하나?’ 앞이 막막했다. 나로 인해서 엄숙한 웅변대회가 웃음바다로 변해 버렸으니, 이후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는 뻔한 일이었다. 지금도 생각나지만, 15분여를 걸어 내무반으로 내려가는 중 나무숲 벤치에 앉아 담배 3개피를 계속 피운 기억이 선명하다. 굳게 닫힌 내무반 문틈으로, 중대원들이 침상에 정렬하고 있는 것을 보고, ‘아! 이제는 죽었구나’ 라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어차피 벌어진 일, 몸으로 때우면(감당하면) 되니까…. 문을 조심스레 열었고,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표정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반전이었다, 중대원 전부가 박수를 치는 것이 아닌가?

‘뭔 일이 일어났나?’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oh! my God…. 내무반장과 중대원들은 내가 빨리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중대원들은 나에게 ‘정말 잘했어. 원고도 너무 재미있었고, 웅변도 잘했어, 무엇보다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용기가 훌륭했어’ 라고 격려를 해주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이마에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히지만, 그래도 그날 밤은 유달리 별이 많았고 총총 예뻤으며, 내겐 결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날이 되었다. 이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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