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어깨’가 없는 사람은 없다. 짐승이나 새에게도 있다. 짐승에게는 앞다리에 붙은 윗부분이, 새에게는 날개가 붙은 윗부분이 어깨다. 그런데 ‘어깨’ 하면 사람의 어깨를 연상한다. 그리고 어깨의 좁고 넓음을 따진다. 좁은 어깬 여자고 넓은 어깬 남자라는 게 상식처럼 되어 있다. 그리고 또 어깨의 좁고 넓음은 힘과 비례한다고 본다.

그래서 남자가 여자보다, 남자 중에서도 어깨가 더 넓은 남자가 힘이 더 세다는 게 사람들의 통념이다. ‘어깨깡패’ 라는 말이 있다. 넓고 떡 벌어진 어깨를 가진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물론 사람 하면 여자와 남자를 가리키겠지만 여기선 아마 남자를 일컬을 것이다. 어깨가 떡 벌어졌다는 표현도 그러려니와 ‘깡패’ 라는 말이 여자에게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깡패’ 라는 뜻이 무엇인가. 힘이나 폭력 따위를 일삼는 불량배 아닌가. ‘어깨깡패’라는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실은 ‘어깨’라는 말과 ‘깡패’라는 말은 같은 말로도 통한다. ‘어깨’의 뜻 중엔 속된 말로 ‘깡패’라는 뜻도 있기 때문이다. 힘이나 폭력 따위를 일삼는 불량배 즉 깡패들의 거개가 넓고 떡 벌어진 어깨들일 것이니 이에서 나온 말일게다.

명재는 키가 작달막하다. 위로 두 형들은 키다리는 아니지만 평균치보단 큰 편인데 유독 명재만 그 이하다. 그래서 동네에선 그를 이름 대신 작다리라고 불렀다. 처음엔 동네사람들이 이렇게 부르기를 눈치껏 했다. 대놓고 작다리라 말하는 걸 삼갔다는 말이다. 어느 누가 작다리라고 해서 남이 작다리라고 부르는 걸 좋아할까 해서다. 하지만 명재는 그렇지 않았다. “괜찮어유. 지를 키다리라고 하면 화가 나겄지만 작달막해서 작다리라 하는데 워띠유 괜찮어유!” 키는 작달막해도 이렇게 명재는 속이 넓다. 속만 넓은 게 아니고 명재는 하체에 비해서 어깨도 넓다. 그런데 이렇게 떡 벌어진 어깨 탓인지 양 팔이 어깨에서 직각으로 늘어지는 게 아니고 활처럼 양 쪽으로 휘어져 일부러 으스대는 꼴이 되는데 이는 마치 불량배들이 한껏 재며 걷는 모습이 된다. “작다리 말여 부리부리한 눈매하며, 잘록한 목하며. 떡 벌어진 어깨하며, 양 팔을 떡 벌리고 걷는 폼하며 이거 이럴 땐 마치 깡패두목 뺨치잖여!” “맞어, 한다는 어깨우두머리 같어.” “근데, 깡패라는 것보단 어깨라는 게 더 점잖은 것 같은디.” 이런 말도 명재 귀에 아니 들어갈 리 없다. “괜찮어유, 근데 깡패보단 어깨라는 게 더 날성부르네유. 실지가 지 어깨때문이니께유.” 하여 이때부터 동네선 ‘작달어깨’라고 부르게 됐다.

한데 명재의 실제 모습하며 별명이 특이해서인지 인근지역에선 명물이 되었다. 인근지역의 장날은 물론 면·군의 각종행사 날엔 빠지지 않고 그 특유의 폼을 나타낸다. 집에서 작목한 채소며 나물 등을 리어카에 싣고 와 파는 것이다. “저 부라퀴 같이 생긴 작달어깨라는 사람 말여 한때는 서울, 인천, 수원바닥에선 날린 어깨였다며?” “그렇다나벼. 근데 지금은 맘 잡고 내려와서 농사짓는가벼.” 동네사람들이 이 소문의 출처를 알아보니, 장터 술자리에서 작달어깨에 대해 궁금해 하길래 “저 사람 폼 보믄 모르겠는가? 저렇게 작달막해두 한때는 도회지에서 한 가락 한 사람여.” 하고 농담한 것이 그리 된 모양이라며 이장이 실실 웃는 거였다.

이 소리에도 명재는 “냅둬유, 괜찮어유. 지는 웨래 어깨가 으쓱해지는데유 뭐!” 할 뿐이다. 이뿐 아니다. “사람이 통 말수가 없고 고분고분 가져온 물건만 팔잖여.” “어떻게 보믄 퍽 신통해서 우리 집사람한테두 이왕이믄 저 사람한테 사라구 했어.” 라는 타인들의 대화도 있어 그런 탓인지 명재의 물건은 팔러 오는 대로 들어번쩍 하는 거였다. 그래도 명재는 더 많이 자기 것을 팔려고 더 이상의 농사는 짓지 않는다. 두 형네의 작물들을 대신 팔아주기는 했다. 이렇게 사는 데 있어 큰 욕심을 내지 않고 형제간 우애를 막내답지 않게 솔선한다.

이 명재가 장가를 들었다. 색시는 뒤듬바리 여전해서 좀 어리석어는 보이지만 키는 명재보다 훨씬 크다. 그래서 동네선 대놓고는 못하고 쉬쉬하며 ‘작키내외’라 칭했다. ‘작다리와 키다리 내외’라는 말이다. 이것도 명재 귀에 들어갔다. 그래도 “괜찮어유 실제가 그런디요 뭐.”하는 것이다. 한번은 동네 짓궂은 노인네가 대놓고 농을 던졌다. “여게, 둘의 키가 층하가 지는데 잠자리일은 괜찮은가?” 했는데, “괜찮어유 뭐, 둘이 알어서 잘 맞추니께유.” 하는 거였다.

이 작달어깨 양반이 87세로 수를 다하고 세상을 떴다. 아들 둘 딸이 셋이다. 이들도 이제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다. 그래도 작달어깨의 일화는 전설처럼이나 지금까지도 전해오고 있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