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겨우 20만원 갖고?

그렇다. 20만원이 사람 잡게 생겼다. 나용찬 괴산군수가 커피 값이나 하라면서 건넨 20만원 때문에 어렵게 꿰찬 군수자리를 잃을 처지에 놓였다.

대전고법은 지난 8일 공직선거법위반혐의로 기소된 나 군수에게 항소를 기각하고 1심과 같은 벌금 15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증거 등에 비춰볼 때 유죄가 인정된다. 액수는 적지만 본인이 직접 건네 죄질이 좋지 않고 허위사실을 공표해 선거에 미친 영향이 크다”며 이같이 판결했다.

1심에서 직위 상실형을 선고받아 2심에서는 기사회생할 것으로 기대했던 나 군수와 주변사람들에게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나 군수는 대법원에 상고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만약 대법원에서도 변화가 없다면 그는 군수직을 잃고 향후 5년간 피선거권 제약을 받아 어떤 선거에도 나갈 수 없게 된다.

괴산은 임각수 전 군수의 중도낙마로 지난해 4월 보궐선거를 치러야 했다. 이는 군수 꿈을 갖고 있던 나용찬에게 절호의 기회가 됐고 무소속으로 도전한 그는 당선증을 거머쥐는 영광을 안게 된다.

그런데 기쁨은 잠시, 군수 취임 40일 만에 재판에 넘겨진 나 군수는 법정에 불려 다니며 군정 추진에 발목을 잡혔고 일거수 일투족에 족쇄로 작용했다.

사연은 이렇다. 나 군수는 보궐선거를 앞둔 2016년 12월14일 오전 7시 50분쯤 선진지 견학을 출발하려는 자율방범연합대를 찾았다. 출발버스 출입문 앞에서 나 군수는 이 방범대 간부 정모(여) 씨에게 “대원들과 커피 한잔 사 먹으라”며 봉투 하나를 건넸다. 봉투엔 5만원 짜리 4장, 20만원이 들어 있었다. 후일담이지만 돈을 건넬 당시 주위엔 여러 명이 있어서 문제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나 군수는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 봉투는 금품제공 의혹의 결정적 증거가 됐다. 이를 놓칠 리 없는 상대 후보의 폭로가 이어졌고 2심까지 당선 무효형을 받는 단초가 됐다. 설상가상 나 군수에게는 허위사실유포혐의도 추가됐다. 이의 해명을 위해 마련된 기자회견자리에서 문제의 돈은 ‘빌려준 것’이라고 해명한 것이 되레 당선 목적의 허위사실공표로 법원은 판단했다.

나 군수가 끝내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면 괴산은 민선 이후 선출된 군수 4명이 모두 사법처리되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그래서 괴산군민들은 지역 안정 차원에서라도 나 군수 항소심 결과가 좋게 나오기를 바랐다. 한 주민이 “인심 좋고 산자수려한 괴산이 언제부턴가 갈등과 분열의 아이콘으로 변했는지 한숨만 나온다”고 한데서 괴산의 속살이 고스란히 드러나 보인다.

특히 오는 6월 치러질 지방선거가 전국적으로 동시에 치러지는 정규선거지만 나 군수 결과에 따라 정규선거가 될지, 아니면 1년여 만에 또 치를 사실상의 보궐선거로 전락할지 군민들은 착잡한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솔직히 괴산주민들은 나 군수가 건넨 20만원이라는 액수에 주목했다. 돈을 불법으로 써서는 안 된다는 선거법을 위반한 것은 재판 결과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 20만원이 군수직을 날려 버릴 정도의 중한 범죄냐는 데에 쉽게 동의하지 못하는 것 같다.

바늘도둑이나 소도둑이나 도둑은 도둑이다. 당사자는 억울해 하겠지만 이번 재판에서 법은 그렇게 판단했다. 그렇지만 바늘도둑은 바늘도둑에 불과하다. 소도둑이 바늘도둑보다 엄한 처벌을 받는 것은 그 행위로 인한 피해와 사회적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처럼 법원이 바늘도둑을 소도둑 취급한 것은 깨끗하고 공명정대한 선거를 위해선 행위 자체가 중요하지 제공된 금품의 많고 적음은 양형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법원 나름의 부정선거 척결 의지를 천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번 판결은 각종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에게 따끔한 교훈이 될 것이다.

그래도 괴산주민 입장에서 아쉬움이 남고 바람이 있다면 바늘도둑한테는 너무 가혹한 판결로, 한번쯤은 반성의 기회가 주어졌으면 하는 거다. 20만원에 군수직을 박탈당했을 때의 후유증은 상상을 초월한다. 3만명이 조금 넘는 시골에서 1년 내내 상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감시나 하고 투서, 폭로나 일삼는다면 누가 누구를 믿을 수 있겠는가.

이런 상황을 만든 책임은 물론 후보들에게 있지만 후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처신도 조심해야 한다. 무조건 상대 후보를 헐뜯는 선거풍토 개선에 괴산군민 스스로가 나서지 않는다면 괴산의 미래는 없다. 더 이상 재·보궐선거가 없는 괴산을 기대해 본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