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시 도로과 주무관 류정현

(동양일보) 우리는 옛 이야기를 통해 선조들의 삶의 지혜와 생활의 슬기를 얻게 된다.
또 이를 반추하고 온고지신으로 삼아 현재의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오성과 한음’ 이야기 중 감나무에 얽힌 일화가 있다.
오성 이항복의 집에 있는 감나무 가지가 담을 넘어 권율이 사는 집으로 뻗었다. 그 가지에 열린 감을 권율 하인들이 가져가자 오성은 권율이 있는 방문을 뚫고 주먹을 보여주며 누구의 주먹인지 물었다. 권율은 당연히 오성의 주먹이라고 대답했고, 이에 오성은 감 또한 자신의 것이라고 말해 권율이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시대를 초월해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이유는 그 문제가 발생하게 된 구조가 오늘날 사회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권율의 하인들은 담 너머 뻗어 온 가지의 열매가 왜 자신들의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그 이유는 연속된 것을 구분지어 생각했기 때문이다.
감나무 몸통부터 가지 끝까지 실체는 하나인데, 담장을 기준으로 몸통과 열매가 나누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과관계의 관점에서 봐도 마찬가지다. 원인과 결과가 한 구역 안에서 발생하면 갈등이 발생하지 않는다.
감나무 뿌리와 열매가 오성의 집 안에만 있었다면 권율의 하인들은 그 감을 가져갈 수 있다는 생각을 애당초 하지 않았을 것이다. 원인은 이쪽에서, 결과는 저쪽에서 일어난다면 그 인과관계를 포착하기가 쉽지 않다.
충주시청에 근무하며 이와 유사한 경우를 가끔 보게 된다. 도로변에 있던 가로수가 태풍으로 인해 도로 위로 쓰러졌다면 이것을 가로수 관리부서가 치워야 할까, 아니면 도로 관리부서가 치워야 할까?
지자체마다 처리방식이 다르겠지만 만약 갈등이 생긴다면 그 본질은 감나무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민원인 입장에서는 더욱 답답하다.
어떤 사건이 원인으로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 ‘사건’과 ‘민원’이 모두 한 부서 영역 안에 속한다면 다행이지만 사건관련 부서와 민원접수 부서가 따로 나뉘어져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쌓인다.
한쪽에서는 민원을 접수한 부서에서 답변하는 게 옳다고 할 게 분명하다. 다른 쪽에서는 민원 발단이 된 사건과 밀접히 관련된 부서에서 해결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수십 개 부서를 하나로 합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농구 선수가 금을 밟았는지의 여부와 투수가 던진 공이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의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처럼, 사람이 금을 그어 놓은 곳엔 언제나 애매한 경우가 생기기 마련이다.
충주시는 이 같은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2007년 ‘민원 1회 방문 처리제 운영규칙’을 제정, 10년 넘게 시행해 오고 있다.
민원 1회 방문 처리제는 여러 부서와 관련된 복합민원을 부서에 일일이 찾아갈 필요 없이 민원창구에서 단 한 번 접수로 처리될 수 있도록 해 민원인들의 시간·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게 만든 제도다.
또 충주시는 민원조정위원회를 상시 운영해 소관이 불분명한 민원을 신속하게 조정하고 해결해 왔다.
2013년부터는 퇴직 공무원과 세무사, 법무사 등으로 구성된 민원상담위원들이 종합민원실에 상주하며 복잡한 각종 신청서 작성과 민원 접수요령 등 다양한 민원을 상담하며 도움을 주고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는 시민 입장에서 생각하고 경계가 불분명한 민원을 명확히 해 혼란을 막는데 있다.
담장을 초월한 감을 감나무 주인에게 돌려주기 위해 쉬지 않고 노력하는 충주시 모습이 잘 익은 감의 표면에 비치는 햇살처럼 눈부시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