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 시인

(나기황 시인) “올 한 해 뜻하신 일 모두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새해에 주고받는 인사다.

작심삼일이 될지언정 누구나 새해소망으로 ‘뜻하신 일’을 챙기게 된다. 필자의 경우 올해는 어떻게 하면 ‘좋은 칼럼’을 쓸 수 있을까 하는 바람을 소망리스트에 올렸다.

글을 쓰는 사람이 좋은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욕구다. 글의 ‘맛과 멋’에 대해 본능적으로 가지는 갈증 같은 것이다.

흔히 요리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세 가지를 꼽는데 눈으로 보기에 좋고, 코로는 향을 음미하고, 혀로 맛보았을 때 ‘엄지 척’ 할 수 있어야 명품의 반열에 올린다고 한다.

칼럼의 경우도 그렇다. 명칼럼이 넘쳐나는 요즘, 기대치가 한껏 높아져 있어 독자들의 입맛에 맞는 글을 내놓기가 쉽지 않다.

격주마다 쓰는 칼럼에서 매번 ‘맛과 멋’을 갖춘 향기 있는 글을 차려내는 것이 가능할까.

필자로서는 언감생심이다.

사람들 입맛이 제각기 다르듯 칼럼의 종류도 다양하고 맛도 멋도 다르다. 매체에 따라 방송칼럼, 신문칼럼, 잡지칼럼으로 나누기도 하고 분야에 따라 의학칼럼, 스포츠 칼럼, 여행칼럼, 문화칼럼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시사칼럼이니 감성칼럼이니 성향으로 분류하기도하고 아예 이름 석 자를 내건 기명칼럼도 있다.

칼럼이 일반적으로 사설이나 시평보다 자유롭다고는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신문칼럼’의 경우, 적당히 시사성도 있어야 하고, 읽는 맛도 있어야 하고, 논지가 너무 가벼워도 무거워도 안 되고, 마감도 지켜야 하는 이른 바 세트 요리로 보면 된다.

글 쓰는 사람의 숙명이랄까. 글의 ‘맛과 멋’에 대한 스트레스는 어쩔 수 없다.

“창의력은 얼마든지 발휘할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브로사-맛’이지요. 아무리 기발한 음식이라 해도 맛이 없으면 의미가 없어요.”

페루에서 퓨전요리의 대가로 알려져 있는 미츠하루 쓰무라 셰프의 말이다. 그는 또 말한다. “요리하는 사람이 행복해야 먹는 사람도 행복합니다.”

맞다. 음식의 간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요리사의 표정은 얼마나 그럴싸해 보이고 미더운가. 글을 쓰는 당사자입장에서 보면 ‘스스로 만족(행복)’할만한 글을 쓴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리저리 궁리를 짜 봐도 가닥이 잡히지 않을 때가 있고, 어찌어찌 쓰기는 썼는데 밑간 안 한 고기처럼 풍미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가끔은 부족한 글에도 공감을 표해주는 배려 깊은 독자가 있어 힘을 얻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맛’ 없는 글은 자신이 잘 안다. 숙성기간 없이 활자화된 글이 눈 밑의 가시처럼 거치적거리고 심한 경우 트라우마로 남기도 한다. ‘잘 썼으면’하는 소망과 ‘어떻게’라는 현실적 고민은 글 쓰는 사람들이 안고 가야할 숙제다.

다만, 몇 가지만이라도 곁가지를 쳐내면 품이 덜 들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궁리를 해본다.

첫째: 당리당략에만 몰두해서, 막말과 ‘내로남불’식 흑백논리로 치닫는 정치권 얘기와는 이제 안녕을 고하고 싶다. 영양가 없는 얘기를 재탕, 삼 탕해봤자 그게 그거다.

둘째: ‘고준희 양 사건’이나 ‘제천화재참사’처럼 쓰는 내내 가슴 아프고, 속이 미식거리는 사건사고 역시 다시 끄집어내고 싶지 않다. 읽는 사람이나 쓰는 사람이나 고통스럽기만 할 뿐, 별 위로가 되지 않아서다.

셋째: 설익은 훈장 코스프레로 ‘공자 왈 맹자 왈’ 하는 것도 조심할 일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얼치기 박사놀이를 하느라 잔뜩 늘어놓는 글은 식상하고 맛이 없다.

올해는 그저 가까운 이웃들과 나누는 한 끼 식사 같은 글을 쓰고 싶다. ‘맛과 멋’을 담보하진 못해도, 짭짜름한 간 고등어백반처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그런 칼럼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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