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호 일본 구마마토국제대 부이사장

(이충호 일본 구마마토국제대 부이사장) 복잡한 사회구조 가운데서 살고 있는 요즈음 현대인의 생활은 몹시도 분주하다. 나 역시 그런 틈바구니 속에서 살면서 눈길을 잠시도 옆으로 돌릴 수 없을 정도로 매정하고 무미건조한 나날의 삶이다.

오래전부터 근교에서 대규모의 딸기농장을 경영하는 친구로부터 놀러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가보지 못해준 의무감이 딸기 가게를 지날 때 마다 불쑥 떠오르곤 했다.

오늘은 만사를 제쳐놓고 친구의 딸기 밭으로 발길을 돌렸다. 천여 평되는 비닐하우스 농장에는 탐스럽게 영근 굵직한 딸기들이 익어가고 있었다. 일군들이 열심히 잘 익은 딸기 따는 모습이 보였다. 친구의 안내를 받아 구경을 하면서 묻기도 하고 듣기도 하면서 넓은 딸기밭을 이리저리 다녀보았다. 친구는 자신의 작품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열심히 이것저것들을 이야기 해 주었다.

나의 흥미와는 전혀 무관한 전문적인 것들을 신나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농장을 둘러 본 나의 느낌은 그 옛날 전원적 서정이란 조금도 풍기지 않았다.

그야말로 딸기 만드는 공장과도 똑같은 느낌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친구와 오랜만에 만났으니 사업적인 이야기는 그만두고 딸기나 먹으면서 이야기하게” 그러고는 좀 맛있는 것으로 가져오라고 했더니 일군을 시켜 가져온 딸기를 보니 내가 바란 극상품 딸기가 아닌 콩알만 한 형편없는 모양의 딸기가 아닌가. 놀란 기색으로 “친구 대접이 이게 뭐냐”는 식으로 말하자, “친구! 극상품 딸기는 시장에 팔아야 하지 않겠나? 장사가 돈을 벌어야지!”하고 웃음 띤 어조로 말하였다.

“돈도 좋지만 손님 대접이 이래서 되겠나?” “친구는 내게 잔소리 그만하고 먹어 봐! 이 극상품 딸기는 자네가 먹어서 좋을 게 없네. 아까도 이야기 했듯이 농약으로 만들어진 것 구태여 달라면 실컷 먹고 가게”하면서 자신들이 먹을 무공해 식품이라면서 자질구레하고 못 생긴 딸기를 내 입에 넣어 주는데, 일찍이 시장에서 사먹어 보지 못한 달콤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달콤한 딸기를 먹으면서 친구와 대화의 꽃이 무르익어 갔다.

나는 농약으로 극상품 딸기를 만드는 친구를 부도덕하고 윤리도 모르는 악덕한 놈이라고 단죄하고 몹시 호통을 쳤다.

그랬더니 친구의 변명은 지금 너조차도 그 극상품 딸기를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니? 이처럼 모든 사람들이 시장에서 극상품 딸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니냐. 못나고 찌지구레한 딸기가 아무리 맛이 있고, 무공해 식품일지라도 상품 가치가 없어 소비자가 요구치 않는 사회 현실 속에서 낸들 어떻게 하느냐는 식으로 답변했다. 나는 친구에게 “아무리 그렇다해도 너는 나쁜 놈이야. 세상을 그렇게 사는 게 아니야, 도덕적인 양심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야해”하고 큰 소리로 호통을 치고, 그 곳을 나왔다.

집에 오는 길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겨 보았다. 전인교육을 시켜 정상적인 학생으로 잘 가르쳐야 할 교사인 나는 어떠한가? 극상품 딸기를 요구하는 소비자들처럼 극상품 인간을 요구하는 사회와 학부모님들의 요구에 의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점수 작전에 혈안이 되어 있는 우리 교사들의 모습. 나만은 학생들을 인간답게 잘 양육해야지 결심을 해 보지만 밀려 닥쳐오는 사회의 대세를 이길 수가 없지 않는가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면, 새벽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시간적 여유도 없게 학생들에게 공부하도록 만 강요하는 교사이다. 이런 교육체제 속에서 자아를 조금도 생각할 수도 없는 불쌍한 우리 학생들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이들까지 분주하고 바쁜 생활 속에서도 옆도 못 보도록 만들어 가고 있지 않는가? 이런 자신을 생각할 때 무공해 식품으로 달콤하고 맛있는 딸기를 만들라고 호통 친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기만 하다. 느낌을 느낄 수도 없고, 메마른 정서로 성숙되어 가는 이들에게 인간미의 단맛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게 되어 가고 있지 않는가. 극상품 딸기를 만들고 있는 친구나 다름없는 자신을 느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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