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포럼 밖의 영성론과 영성인문학 전망
국가 의존성 탈피 ‘동아시아 시민성’으로

김용환 충북대 윤리교육과 교수

지난 한 해 동양포럼에서는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을 뿐만 아니라, 한·중·일 국제학술대회를 통해 동아시아 시민성 함양의 기반을 다졌다. 동양포럼에서 다룬 주제들은 미래공창을 위한 발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영성’은 신령스러운 성능(性能)을 말하지만, 그 이외의 다양한 의미를 포함한다. 특히 동양포럼의 대화에서 동양의 정신문명을 아우를 필요성이 나타났다. ‘중용(中庸)’의 밝힘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영성반조를 통해 ‘근원적 생명력’으로 회귀되기에 동양의 정신문화를 탐색하며 동서회통이 요청된다고 할 것이다.

동양고전, ‘중용(中庸)’에서는 우주생명력을 바탕으로 진실무망(眞實無妄)하게 만물을 낳고 키우는 ‘성자 천지도(誠者 天地道)’와 함께 ‘성(誠)’을 성실하게 받들고 따르는 ‘성지자인지도(誠之者人之道)’를 언급했다. 이에 따라 ‘만물을 낳고 키우는 에너지의 근원인 하늘과 그 하늘도리를 성실하게 믿고 따르고 행하는 사람도리’를 살릴 때, 만물이 다 함께 자라는 ‘만물병육(萬物竝育)’이 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실제로 우주생명과 개체생명이 상관 연동되어 영성의 ‘자기(自己)’와 혼의 ‘자아(自我)’가 육체와 결합하여 ‘영혼의 육신’을 이룬다. 그런데 욕망대상을 쫓다보면, 욕망대상을 ‘참나’로 착각하는 ‘영혼의 식민지화’가 발생하고, 욕망대상을 쫓아 사물화로 이루는 가운데, 전도몽상(轉倒夢想)의 ‘영혼의 영토화’가 일어나 다양한 사회병리 현상을 초래하므로 새로운 영성인문학 정립에 따른 진단과 해법이 요청된다고 할 것이다.

영(靈)을 망각하고, 혼(魂)이 이기적 편협성으로 치닫는 ‘식민지화’와 끊임없는 사물화로 확장되는 ‘영토화’는 근원적 해결책을 요청한다. ‘영성자기’로서의 ‘참나’ 또는 ‘한얼’에 상응하는 ‘영(靈)’은 근원적 생명력과 연계되어 혼을 깨어나게 하거나, 영적 무지를 자각하게 한다. 동양포럼의 영성인문학은 지방 간·세대 간·남녀 간 사이를 아우르며 영혼을 느끼는 전문가 대화로 발전하여 과거 고립된 인문지식 패러다임을 극복하고, 동아사이 시민성 함양을 위한 미래공창으로 자리매김 했다.

서양의 레이몽 파니카(R. Panikkar: 1918-2010)는 가톨릭 수도사이자 미국 캘리포니아의 산타바바라대학 교수로서, ‘종교대화(The Intra-religious Dialogue)’, ‘신비표상의 신체험(The Experience of God: Icons of the Mystery)’, ‘존재리듬(The Rhythm of Being)’등에서 영성을 언급했다. 서로 다른 종교들 사이의 대화를 인정하고 상호존중의 대화 가능성에 대한 근거를 ‘우주신인론 영성’에서 찾았다. 파니카에 의하여 정초된 ‘우주신인론 영성’은 ‘신적인 것(Theos)’과 ‘하느님의 영(Spiritus Dei)’, ‘인간적인 것(Anthropos)’과 ‘사람의 생명(Vita Hominis)’, 그리고 ‘우주적인 것(Kosmos)’과 ‘땅의 생기(Anima Mundi)’를 함께 연동하여 유기체적 실재로서 다루었다. 이러한 실재는 형이상학적 측면의 초월적 측면과 지적 요소의 의식과 사유, 그리고 경험적이며 물질적인 요소를 공유한다.

우주신인론 영성은 실재의 세 차원들이 실재 궁극성을 이루는 필연적 삼원관계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땅은 살아 있으며, 어머니이다. 우주는 그 생명력이 전 우주로 확장되는 신적 생명의 창조자이자 후예이다. 김진 교수(울산대)는 ‘철학논총’ 52집에서 레이몽 파니카의 사상으로 다석 유영모를 분석한 ‘다석(多夕)의 종교다원주의와 파니카의 우주신인론’을 다루었고, 김경재 교수(한신대)는 ‘생태계 위기와 종교적 영성의 각성-우주·신·인간적 영성과 생태학적 중추신경계 비유론’을 신학연구 46집에서 발표했다. 여기서 밝혀진 다석은 예수 그리스도 이외의 다른 그리스도가 가능하며 영성을 자각한 사람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천명했다.

파니카는 예수가 그리스도이지만 그리스도는 예수만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다석도 하느님의 존재는 하나이면서 모든 것인 절대인 동시에 절대적인 ‘빔’의 무로 보았으며, 한사상의 ‘한’ 개념과 상통한다고 햇다. 파니카는 인도 힌두교를 정점으로 하는 동양사상과 로마 가톨릭사상을 정점으로 하는 서양사상이 회통함으로써 인간과 우주와 신이 상즉상입(相卽相入: 우주생명이 대립하지 않고 융합해 작용하여 무한히 상관연동 관계를 유지함)하는 파노라마를 연출한다고 보았다. 하느님의 얼, 또는 영이 주관하는 나는 얼나(靈我)이고 참나(眞我)이다. 얼의 생명을 얻은 자들은 바탈(性)을 살려낸 ‘얼나’로서, 하느님의 영(靈), 또는 법신불의 불성(佛性)과도 상통한다.

파니카는 우주생명을 우주신인론적 영성의 관점에서 자연과 우주를 고립된 물질이 아니라 살아움직이는 에너지로 파악하였다. 우주생명은 단순한 물질이나 전환 가능한 에너지가 아니며, 세계 역시 단순한 거주지나 실재의 확장된 일부분이 아니다. 모든 외부실재나 초세계적인 것까지도 시공차원의 존재를 전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세계외부성이나 초세계성조차도 세계적인 것 또는 세속적인 것과 연관되어 있다. 신적 차원이나 인간이 없는 우주차원은 따로 존재할 수 없다는 주장을 폈다. 그리스도는 기독교의 메시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의 그리스도는 예수이다. 그러나 힌두교와 불교의 그리스도는 예수가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는 그리스도이지만 그리스도는 예수가 아니다’라는 파니카의 명제를 정식화할 수 있다. 역사적 예수를 넘어서 현존하는 그리스도가 여러 종교전통에서 각각의 방식으로 구원역사를 펼친다 한다. 파니카의 그리스도는 모든 종교에 적용될 수 있는 ‘우주신인론적 영성의 현현’이다. 그런데 이러한 파니카의 영성도 지방 간·세대 간·남녀 간의 사이를 아우르는 간주관적 밝힘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공공하는 영성작용’을 구체적으로 입증하지 못하였다. 이들 취약성을 극복하기 위한 청주 발 영성인문학에 대한 정유년의 동양포럼의 성과를 살펴본다.

동양포럼은 한 해 동안 동아시아 시민성 함양에 초점을 맞추었다. 지금의 생활지형은 저성장·저출산·고령화·양극화·세계화의 추세가 뚜렷함에 따라, 새로운 시민성 함양을 요청하고 있다.

우리는 유럽연합(EU)을 통해 이러한 변화를 체감하였다. 한·중·일은 오랜 세월을 함께 하면서 상생을 이루어오면서도 대립과 갈등의 상극상황을 올바르게 극복하지 못했다. ‘국민’이라는 개념이 국가의존·종속개념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한·중·일 삼국은 국민감정으로 말미암아 상호 배타적인 상극상태를 지속하였던 것이다.

이제는 지나친 국가의존성에서 벗어나 ‘동아시아시민성(East Asian Citizenship)’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시민성’은 동아시아 시민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자과 실천을 요하는 인간 파악이다. 이를 위해 동아시아 시민공동체 구성원을 양성하는 동아시아 시민교육이 필요하다. 한·중·일은 동아시아 시민공동체 토양을 다지면서 문화교류를 이어왔지만, 동아시아 시민공동체에 관한 정체성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성립되지 못하고 상생보다 상대적 우월감을 과시하거나 상대국민을 정복대상으로 삼았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국민형성에 중점을 둔 국민윤리 교육이 실시되었고, 일본에서는 대화교를 통한 일본국의 세력화를 이루었고, 중국에서는 신실학운동이라는 정치 이데올로기로 인민 계몽을 획책하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동아시아 시민의식 함양이 요청되는 실정이다.

지금까지 미국이 동아시아의 대량생산제조업을 지탱하게 하는 수요자로서 시장역할을 했다. 앞으로 한·중·일이 이러한 역할을 이행하지 못하면 동아시아의 미래공창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미래공창을 위한 ‘동아시아시민성’은 동아시아시민성의 회원자격에 합당한 ‘행위표준’으로서 자질이나 품성을 가진 미래형 인간이 요구된다. 동아시아시민의 ‘행위표준’에는 동아시아 공동체 삶을 중시하고 동아시아시민의 행위자 중심의 성품이나 인격형성에 도움이 되는 대화를 중시하면서 동아시아의 미래지향적 삶의 비전을 함께 모색하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동아시아 시민에 대해 상호존중과 상호배려가 전제되며 국가횡단매개의 관점에서 자국중심에서 벗어나 배려범위를 동아시아시민성 함양 수준으로 확대하고 동아시아 시민이라는 자각에 토대를 둔 공공인식이 정착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동아시아 시민성 함양을 위한 공감담론의 콘텐츠도 개발되어야 한다. 텍스트에 나타난 상호배타적 담론을 과감하게 해체하는 비판교육도 이루어져야 한다. 동아시아 생태공통체가 파괴되면 동아시아시민 모두가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리는 공감교육을 실행할 필요가 있다.

한·중·일이 과거의 국민국가 공동체에서 벗어나 21세기를 새롭게 열기 위한 동아시아시민 공동체 형성을 위해서는 상호존중과 배려 그리고 소통을 실천하는 가운데 상호고통을 경감시켜가는 개신방안이 구체적으로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의 ‘실심실학(實心實學)’과 중국의 ‘실리실학(實理實學)’, 그리고 일본의 ‘실용실학(實用實學)’의 인문학을 서로 이어주고 매개하는 영성인문학으로 거듭나야 한다. 한·중·일을 함께 살리는 국가횡단매개의 합당성으로 동아시아시민성 함양교육이 요청된다고 할 것이다.

정유년 한 해 동안의 동양포럼에서는 무심개신(無心開新)에 의한 영혼식민지화 치유방안이 끊임없이 모색됐다. 무심개신은 고려 말 백운선사께서 진실을 직시하는 가운데 개체생명의 집착에서 벗어나 무심의 존재성을 깨닫는 자유로운 생명개신의 방향이다. 그리고 조선 후기 사주당 이씨는 활명개신(活命開新)에 의한 영혼영토화 치유방안이 모색되면서 근원적 생명력을 태교에 활용함으로 21세기 군자 양성을 위해 새 밝힘하였다. 태교가 현대판 군자공동체 형성의 버팀목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한 기회였다. 아울러 의암 손병희 선생이 ‘무체법경(無體法經)’에서 제안한 ‘체천개신(體天開新)’으로 하늘영성을 자각함으로 청정하늘의 자성을 회복하는 ‘인내천(人乃天)’을 체화함으로 인간존엄성을 회복하는 인존시대를 구현할 수 있다는 자긍심을 낳았다.

파니카의 ‘우주신인론의 영성’의 골격과 일맥상통하지만, 동양포럼에서는 청주지역을 토대로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영성가치로서 재조명하였기에 음양합덕으로 회통하는 영성인문학의 새 토대를 구축할 수 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동아시아의 공동가치를 모색하기 위한 ‘그리운 인물’ 시리즈와 ‘잊을 수 없는 도서’ 시리즈를 구성하기 위한 좌담회가 연속적으로 개최되었다. 이 좌담회에서는 ‘청주인’·‘충북인’·‘한국인’·‘세계인’의 범주를 설정하여 서로를 아우르며, ‘문학’·‘철학’·‘종교’· ‘영성’을 아우르며 서로 잇고 매개하고 살리는 가운데 한국인의 영성의 멋과 맛을 생동적으로 구조화하였다.

먼저 ‘그리운 청주인’으로 민병산 시인을 다루면서, 사주당 이씨와 같이 ‘활명개신(活命開新)’의 연장선에서 파악하였다. 근원적 생명력에서 우러나온 호롱불 서체로 글을 써서 주변에 보시하는 보시바라밀의 즐거움, 고향 청주에 부치는 ‘으능나무와의 대화’ 등에서 으능나무와 함께하는 우주생명력의 이치를 지혜바라밀로 일깨워주었다. 그리고 근본악과 끊임없이 저항하며 근원적 생명력 가치를 노래한 신동문 시인도 근원적 생명력이 시인의 양심활동으로 조명하였다. 양심에 뿌리를 두고 정치적 참여의식을 태동한 신동문의 시에서는 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아픔을 근원적 생명력 차원에서 노래하며 행동파 시인으로서의 결연한 의지를 시 세계에 융해시켰다. 특히 ‘낙동강’이라는 작품을 통해, 4.19 데모를 하면서 받은 흥분을 되살려 민주주의가 생명가치로 정착되기를 염원하였다.

또한 ‘무심개신’의 정신을 살려 장사로 자금을 모아, 교육사업에 봉헌한 석정 김영근 옹에 대해서 청주 얼, 무심천을 배경으로 ‘활상개신(活商開新)’ 기치의 상인정신을 기림으로 상인도를 청주에 정착하는 데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청주대 설립자로서 거금을 쾌척하였지만, 그 흔적에서 자유로운 육바라밀 실천의 보살자로서 그의 인품을 기릴 수 있었다. ‘수기상인(修己商人)’에서 체용불이의 참 마음을 일깨웠다.

일제 치하에서 청풍명월을 노래한 만해 한용운 선생은 저항한 항일투사로서 겨레얼을 지켜낸 저항시인으로, 근원적 생명력을 ‘그리운 님’으로 노래하였다. ‘님의 침묵’을 통해, 조국이 일제의 계박에서 벗어나 해방을 누리기 위한 희망을 절규하였고, 동북아 시민성 함양에서 근대화와 사회진화에 대해서 깊은 사색을 이어갔다. ‘복종’이라는 시에서 근원적 생명에 대한 절대적 복종을 향유할 때 비로소 자유가 성취된다는 에토스를 살렸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운 한국인’의 고운 최치원 선생은 당시 당나라에 가서 최고문물을 접한 사상가로서, 미래공창의 표상이다. ‘포함삼교 접화군생’을 통한 풍류도에는 동인의식이 나타났고, 광명의식의 근원적 생명력 인식은 한국인의 영명(靈明)을 밝히는 지표로서 공공하는 영성작용을 구체적으로 살렸다.

동양포럼에서 ‘그리운 세계인’으로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근원적 생명력으로서 무한자와의 연결고리가 타자윤리 의식으로 조명되었다. 서양윤리의 아버지, 소크라테스와 그 이후 전개된 사상이 이성중심의 주체성 모색에 역점을 둔 것이라면, 레비나스는 이를 해체시켜 영성가치를 모색하여, 타자본위의 윤리로 대위시켰다. 이러한 타자의식으로 정지용 시인의 시 세계를 바라볼 때, ‘향수’에서 드러난 ‘흙에서 자라난 내 마음의 파란 빛’이 무한을 지향하는 영성가치의 현 주소임이 확인됐다.

서로의 주체성을 강조하기보다 타자지향의 시인의 마음으로 이웃과 일상에 다가갈 수 있는 따뜻한 시선을 선사하였다. 자기본위 양식의 삶으로 찌들고 고뇌하는 지식인의 삭막함에서 정지용 시인의 시를 살리기 위해서는 생명의식에서 타자본위의 자유로운 영혼을 살려낼 필요성을 깨닫게 한 영성인문학의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회고된다.

레비나스의 ‘존재와 다르게’라는 책도 잊을 수 없는 도서로 다루면서, 하이데거의 ‘죽음에로의 존재’와 정면 승부한 초월지향의 가치를 탐색하는 좌담회를 가졌다. 세계구성 요인으로써 자기정립과 타자와 만남은 치명적인 분열상을 낳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러한 분열은 역설적이게도 초월지평을 재구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초월지평에서 체화되는 타자의 ‘가까움’은 윤리적 의미와 함께 ‘수동의 수동성’을 경험하는 실존체험이 된다. 이는 곧 타자고통을 직면하는 감수성을 촉발시켜 타자의 윤리적 부름을 스스로의 책임으로 실천하는 일종의 타자본위의 ‘사로잡힘’의 계기로 작동하게 한다.

꽃동네 대학에서 이뤄진 ‘영성과 사회’ 주제의 국제회의에서는 영성 조명이 이루어졌다. 이 자리에서 ‘꽃동네 영성’과 ‘마더 테레사’의 영성, ‘아라이 오오수이(新井奧邃)’ 영성, 남아프리카의 ‘우분투’, 러시아 영성, 조선의 퇴계 영성, 기학(氣學)과 동학(東學)에 나타난 영성 등에 대해 발표가 이루어지면서 한국영성의 독특성이 드러났다. 아울러 꽃동네 대학의 오웅진 이사장과 야마모토 교시 미래공창신문 발행인과의 대화를 통해서 하느님의 성령이 방언으로 나타나 생명과 생명 사이를 이어주는 가능성이 모색되었다. 동경대학 명예교수, 미야모토 히사오(宮本久雄)는 마더 테레사의 영성을 말하면서 자기를 무화하는 케노시스(Kenosis)에서 암흑의 영성가치를 부각시켰다. 일본 가톨릭신학회 이사 아베 나카마로(阿部仲麻呂)는 호흡에 주목하고 호흡으로 인간이 근원적 생명력과 연결되기에 근원적 생명력으로서 신에 대한 통찰을 강조하였다.

‘나’에서 ‘참나’에 이르는 길은 가까우면서도 먼 길이다. 오감? 생각? 감정의 굴레의 ‘나’를 깨어나게 하여 근원적 생명력의 ‘참나’, 순수한 양심의 존재로 반조되는 길은 쉬우면서도 지난한 여정이다. 한·중·일의 미래공창을 위한 도덕적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청주시민과 충북도민과 함께하며 생명과 태양의 땅을 새롭게 탈바꿈하고 고령화 사회를 대비하는 개신의 새밝힘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그동안 공공철학을 제창한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은 새로운 인문학적 상상력을 바탕을 두고 생각하는 심학 패러다임으로부터 삶-살림-삶앎(생명의 자각)에 초점화하는 영성(=근원적 생명에너지) 패러다임으로의 패러다임전환을 모색해 왔다.

내년에는 영성 패러다임으로 저출산·고령화·저성장의 삼중고에 얽매어 있는 사회현실에 대응할 수 있는 미래공창 철학운동을 더 활발하게 추진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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