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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눈 온 아침<김주희>
풍향계-눈 온 아침<김주희>
  • 김주희
  • 승인 2018.01.16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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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희 논설위원 / 침례신학대 교수

(김주희 논설위원 / 침례신학대 교수) 폭설로 내리는 눈을 집 안에서 내다보는 일이 안온하다. 창을 내다보면 쌓이는 눈이 비현실적으로 낙낙하다. 때는 마침 겨울방학이고 나다닐 걱정 없이 풍경을 보는 관람. 아파트라는 공동주택의 편리에는 눈 치울 생각, 주변을 가꿀 계획이 무위한 구경꾼의 시선도 포함될까. 그러고 보면 공동주택에 살기 시작한 이십 수년 동안 쓸고 가꿀 내 마당 없이 지정된 한 공간에나 머무는 여행객처럼 지내나보다. 너무도 자유로워 외로운 세상이라고 시인은 말씀했던지. 의무가 없는 공간은 자유일 수도 소외 일 수도 있으리라. 권리와 의무의 상관관계.

푹푹 내리는 눈은 먼 데의 것들을 몽올몽올 데리고 온다. 젊을 적 읽었던 시의 구절, 그 시를 쓴 시인의 삶, 시를 읽던 시절의 정황까지 해묵은 정서들을 데리고 안온하고 평온하게, 또 눈물겹게 솟았다 스러져 간다. 시가 얘기하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살아가고 싶은 절절함, 살아갈 수 없는 시대와 가난의 슬픔.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하는 인간의 한계와 숙명. 지상에 눈이 올 때면 오래된 미래인 영원한 나라에도 후한 인심처럼 눈이 내려 쌓일지. 하여 백석 시인은 나타샤와 함께 당나귀를 타고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구원의 나라에 거하실지.

한동네 몇 집 건너 있던 큰 집 가는 길 밤 새 얼어 제법 단단해진 눈 위를 비추던 아침 햇발, 그 햇살에 반짝이던 눈 알갱이들이 휘황했던 것도 같은데 온 동네 아이들이 까막 고무신을 신던 아주 어렸던 그 시절 눈 밟는 소리는 정말 뽀드득 거렸는지. 누비 두루마기를 입은 할아버지와 걸어가던 그런 일이 실제로 있기나 했던 건지. 지난여름 끝자락에 돌아가신 아버지 산소도 눈이 덮고 있는지. 아버지 영혼은 하나님 나라에서 안식하고 계시는지. 거기도 눈이 내리는 곳일지,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아계시고 함께 살던 그 때, 아버지가 정말 행복한 시절이었는지 모른다. 두 어른 앞에서는 우리에게 손님 같고 근엄했다면, 어른들이 안 계시면 다감해 지기도 하던. 아직은 실패를 경험하지 않았고, 우리도 아직 근심없는 어린 자식들이었던 아버지가 할아버지 할머니의 막내아들이었던 한참 젊던 그 때.

눈이 많이 내린 뒤면 동네 아이들은 신기한 강원도 눈 이야기를 했다. 거기는 눈이 사람 키 만치 내리기도 한다고, 자기 전에 이웃집과 밧줄을 연결해 놓고 잔다고, 그래서 눈이 쌓이면 그걸 양쪽 집에서 돌려 눈 동굴을 만들고 거기로 다닌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들은 어디서 왔던 것일까. 대대로 충청도, 그것도 청주 근처 농촌에서 살아온 동네 아이들에게 강원도의 눈 이야기는 먼 이국의 이야기 같았을지. 어쩌면 고향은 어느 시절의 이야기로 기억되는 것일지 모른다. 마치 명작의 어느 부분으로 새롭게 해석되기를 기다리는 문장들처럼.

눈 내린 날 아침 집에 있던 아버지가 우리들을 데리고 눈을 치울 때면 안마당은 소란스러웠던지.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사랑채에서 가끔씩은 방문을 열고 내다보기도 하셨던지. 우리들은 곧 더워져서 꽁꽁 싸맸던 목도리나 장갑을 벗어 할머니에게 하나씩 맡겨가면서 아버지 주변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듯 자긍심에 젖기도 했을지. 어린 동생들은 마당 위를 아장거리다가 모아놓은 눈 위를 밟아 발목까지 푹푹 적셔 발 언다는 걱정어린 꾸지람을 듣기도 하면서, 잔치처럼. 즐거운 놀이터이던 안마당. 어느 때 언니는 마루에 걸터앉아 학교 밴드부에서 가져온 리코더로 코시코스의 우편마차 같은 먼 나라의 노래를 연습하기도 하고. 우리가 달려들면 멈추고 노래를 불러주면 따라부르며 배우기도 하고, 어른들은 우리를 대견해하던. 학교 악기라고 못 건드리게 하면 부러운 마음으로 단 숨에 배워버리기도 하면서 조금씩 자라가고, 그렇게.

할아버지가 좋아하시던 누룽국을 젊던 엄마가 별식처럼 만드는 게 그런 때였을까. 지금은 손칼국수라고 부르는 누룽국. 엄마가 커다란 나무 칼판을 뉘어놓고 홍두깨로 밀가루 반죽을 얇게 넓혀가면 우리는 꼬물꼬물 둘러앉아 엄마의 칼질을 기다렸다. 국수 꼬다리 남겨달라는 청을 넣으려고. 할아버지는 엄마의 가는 면발을 좋아해서 며느리 누룽국을 최고로 치셨다지만, 우리는 국수꼬리를 청원하는 어린나라의 백성들이었던지. 아이들 그릇마다 넓적한 꼬리들을 하나씩 공정하게 넣어서 엄마는 우리를 선물처럼 기쁘게 했던지.

기억들은 눈처럼 기억으로 쌓였는데, 아버지는 영원한 나라에 있다. 아버지를 잃지 않는 길은 기억에 때가 끼지 않게 간직하는 것이기도 한지. 유년같은 눈 온 아침, 영원하게 사는 법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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