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29명의 생명을 앗아간 제천스포츠센터 화재참사가 발생한지 한 달이 다 돼 간다.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제천체육관 입구 화이트보드에는 예기치 않은 사고로 사랑하는 가족을 떠난 고인을 추모하는 글로 빼곡하다.

‘엄마, 보고 싶어’, ‘여보, 그동안 고생 많이 했어. 편안한 곳에서 근심 걱정 말고 편히 쉬고 있어. 따라 갈게. 여보, 사랑해 미안해’, ‘다음 생애도 엄마 아빠가 되어 주세요’....

지난달 21일 오후 3시53분 첫 신고 된 이번 화재는 소방당국의 늑장·부실 대처가 도마 위에 올랐다. 유족들은 2층 여자 사우나 유리창을 깨 구조했으면 대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며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이미 건물 소유주와 관리인이 구속되고 충북소방본부장과 제천소방서장 등 지휘관들이 직위해제되거나 중징계 받을 처지가 됐다. 경찰의 수사 칼끝은 소방관들을 향하고 있다.

지난 12일 제천소방서 소속 소방관 6명이 참고인 신분으로 경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으며 지난 15일엔 충북도소방본부와 제천소방서 등을 전격 압수수색하면서 긴장감은 고조되고 있다.

앞서 소방합동조사단은 현장 지휘체계에 문제가 있었다고 결론 냈다. 소방관들에게 사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인 경찰은 그러나 화재 현장에 전달된 정보를 무시했고 20명이 숨진 2층의 구조요청을 알고도 대응을 소홀히 하는 등 현장 지휘체계에 허점이 있었다는 조사 결과 발표 이후 방향을 틀었다.

유족들도 화재발생 원인과 인명구조 초기대응 과정을 밝혀 달라는 수사촉구서를 경찰에 제출했다. 경찰 입장에서는 유족들이 의혹을 제기하고 국민적 관심이 큰 만큼 수사의 공정성 확보로 한 점 의혹없는 결과를 내놔야 할 것이다. 이의 일환으로 지난 15일 충북도소방본부와 소방종합상황실, 제천소방서에 대해 전격 실시된 압수수색에서 화재 관련 서류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복사본 등을 확보해 분석에 들어갔다. 경찰은 의혹을 확인하는데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소방지휘관들의 판단 착오와 부적절한 지휘가 대형 참사를 막지 못했다면 응당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어느 신문의 ‘목숨 내걸고 불 끈 소방관, 돌아온 선물은 압수수색’이라는 제목이 말해 주듯 마녀사냥 식으로 소방관만을 몰아세우는 게 과연 온당하냐는 의견도 없지 않다. 소방관들은 대형 참사를 막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소방관이 된 것을 후회하며, 그만 둬야겠다는 소방관도 생겨나고 있다고 전해진다. 소방관들은 “대형 인명 피해를 초래한 죄인들이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면서도 화재진압과 인명구조 대응이 수사선상에 오른 것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소방관은 “초동대처가 미흡했다는 비판을 감수하겠다. 그러나 인력부족과 열악한 근무환경, 노후장비 교체 등 고질적 문제는 제쳐두고 무조건 완벽한 진화 및 구조활동을 요구하는 건 욕심”이라고 항변한다.

그럼에도 워낙 대형 참사인데다 세월호처럼 인재라는 지적이 대두되면서 철저한 진상 규명과 제2, 3의 참사를 막기 위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그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희생자들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다.

그런데 제천 화재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여성학살사건으로 규정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벌어져 부아가 치민다. 특히 남성을 배제한 온라인 커뮤니티 ‘여초연합’은 제천 화재 참사를 ‘여자라서 구하지 않았다’는 말도 되지 않는 말로 페미니스트를 자극하고 있다.

아무리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라지만 숨진 여성이 많다고 ‘여자라서 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진정한 페미니즘이 될 수 없다.

이들은 실제 지난 13일 서울 홍대입구 걷고 싶은 거리에서 시위를 갖고 여성혐오가 여성들을 사망하게 한 명백한 인재라고 주장했다. 참, 어이가 없다. 목소리 높일 걸 갖고 높여야지 얼토당토 않은 말로 페미니즘을 하겠다는 꿈을 깨라.

그렇다고 같은 여성들로부터 호응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큰 오산이다. ‘여초연합’ 같은 왜곡된 페미니즘 사상은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양성평등이 온다. ‘여자라서 구하지 않았다’는 말은 목숨 걸고 불 끈 소방관들의 명예를 더럽힌 것이다. 여성들을 더 이상 초라하게 만들지 말라. ‘여자라서 구하지 않았다’는 섬뜩한 말은 억울하게 숨진 희생자를 두 번 죽이고 유족들의 가슴에 대목을 박았다. 말이라고 해서 다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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