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원 신성대 사회복지과 교수

(신기원 신성대 사회복지과 교수) 어릴 적 방학이 되면 시골 할머니 댁에 가곤 하였는데 동네어귀에서 가끔 엿판을 둘러메고 “울릉도 호박엿이 왔어요”를 외치는 엿장수를 본적이 있다.

그 당시만 해도 군것질거리가 거의 없어서 엿장수는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엿을 먹을 수 있는 방안이란 고작 코 묻은 돈 몇 푼이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엿 맛은 천국에 대한 경험이었다. 한번은 사촌들과 엿장수가 가위질을 몇 번할까 라는 문제로 실랑이를 벌였다. 각자 가위질 숫자를 세면서 자기가 맞는다고 언성을 높였는데 사촌형 한마디로 정리되었다. “엿장수 맘이다”.

엿장수 맘이라는 말과 관련하여 생각되는 단어는 人治이다. 이를 리더십과 연관하여 살펴보면 德治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덕치 또는 덕치주의는 동양에서 매우 강조되었다. 덕치주의는 공자의 정치적 이상으로서 덕망 있는 사람이 도덕적으로 어두운 사람을 다스려야 한다는 정치사상이다.

이처럼 덕치주의는 지도자의 도덕성을 정치행위의 근본으로 삼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왕의 선한 의지와 능력을 함양하기 위하여 어릴 적부터 끊임없이 자기수양을 하도록 하였고 그 방법은 경연이었다. 세자들은 아침 점심 저녁 하루에 3번 유능한 신하들과 선왕들의 업적도 배우고 정치현안에 대해 논의를 하는 등 修己治人하며 리더십을 쌓았다.

그런데 왕도 사람인지라 덕을 쌓고 행하기보다 도에 지나친 이기적 행태를 보이면 제재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조선시대 역사를 봐도 왕이 지나치게 사적으로 편향된 정치행태를 보이면 사헌부·사간원·홍문관의 삼사를 통해 견제와 균형유지하려고 하였으나 잘 통하지 않았다. 오직 왕의 선택과 결정에 의존할 따름이었다. 이런 점에서 인치는 덕치를 압도하는 면이 있다. 폭군의 대표적 인물로 언급되는 연산군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엿장수 맘은 이미 조선시대부터 통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현대적 관점에서 덕치주의는 인간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인본주의적 속성을 띠고 있다. 지도자가 덕을 쌓는다는 것은 구성원들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이고 구성원의 마음을 얻으면 구성원의 자발적인 협조와 희생을 이끌기가 쉽다.

따라서 덕치주의는 광의로 보면 인치주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덕치주의와 대비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인치주의는 지도자가 구성원이나 상황과 무관하게 자기 멋대로 전횡을 휘두른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면이 강하다. 우리나라에서 좋은 정치와 관련하여 법이나 제도보다 지도자의 자질과 능력에 천착하는 이유도 덕치주의를 강조해온 전통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덕치주의는 법치주의와 상반되는 면이 있다. 덕치주의는 사람을 통해 법치주의는 규율을 통해 사람을 다스리기 때문이다. 법을 통해 일을 처리하면 주관적이기 보다는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법치주의는 시스템에 의한 정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누가 법을 만들 것인가의 문제와 법을 적용하는 사람이 어떻게 법을 적용할 것인가의 문제는 남기 때문이다. 법을 강자들이 만들어 자기들의 이익만 챙긴다면 법치주의는 인치주의와 다름없다. 법을 적용하는 사람이 본인의 양심이라는 명분아래 갈지자의 행태를 보인다면 이 또한 인치주의의 단면일 뿐이다.

사회정의가 구현되어 선진사회풍토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엿장수가 중요하다. 덕을 쌓은 엿장수가 바른 가위질을 하여 나눠진 엿에 대하여 구성원들이 어느 정도 인정을 할 수 있는 사회가 공정한 사회이다. 비정상의 정상화란 이런 엿장수를 골라내서 가위질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이다. 또 가위질을 잘못할 경우 가위를 뺏고 다른 엿장수를 뽑아서 가위질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구성원들이 뜨거운 열망과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엿장수를 지켜보면 엿장수는 쉽게 허튼 짓을 하기 어렵다.

공자는 일찍이 덕의 전파는 역마보다 빠르다고 하였다. 가위질을 제대로 배워서 실전에서도 올바른 가위질을 하는 엿장수들은 어느 누구보다 존경받는 산 교육자들이다. 이들이 나눠주는 엿을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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