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원적 질문, 나에게 있어 한국은 어떤 존재인가 / 리란(李然) 일본 교토대 대학원 박사과정

리란 교토대 대학원 박사과정.

저는 지난해 8월 3일~17일에 개최된 꽃동네 영성원에서의 영성 세미나, 안동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에서 열린 외천활리의 인문학, 청주에서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와 미래공창─조명희·나쓰메 소세키·루쉰의 비교 조명’이라는 주제로 열린 포럼에 참석해 귀중한 체험을 했습니다. 지면을 빌려서 그것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 뜻밖에 찾아온 첫 번째 한국 여행

그때의 심정을 상기해 보면 먼저 떠오른 것은 여태까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자기에 대한 어떤 물음이다.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한국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이다. 그 대답은 오래전부터 계속 내 속에 어렴풋이 존재했지만 단편적인 답밖에 안 나오지 않았다. 중국 동북지역 출신의 나에게 한국은 일종의 ‘이웃집’과도 같은 존재이며, 언젠가 놀러가 체험하고 싶었던 곳이었다. 동아시아 사상사 전문의 나에게 한국은 또한 연구대상이기도 하고 동아시아에서 중요한 일각으로도 인식돼 있어서 언젠가 절차탁마(切磋琢磨)하러 가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이 두 가지 이미지는 각각 다른 차원에서 존재하고 같은 대상에 대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평행선과 같이 서로 교차하지 않았다. 그리고 두 개의 ‘언젠가’가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 꽃동네:생명과 영성

포럼 첫째 날에 신부님들의 안내로 견학하게 된 꽃동네 복지시설의 모습과 들은 이야기는 참으로 충격적이었다. 미혼모가 낳은 아이들을 수용하는 ‘천사의 집’, 특수학교, 중환자를 수용하는 병원, 묘지 등 여러 가지 시설이 갖추어진 꽃동네는 모든 측면에서 생명을 지키고 뒤받치고 있다. 가톨릭의 신조인 “생명을 소중히” 하는 것을 어떻게 관철하느냐 그 모습을 보여주었다. 병원에서 만난 어떤 청년은 특히 인상적이다. 어린 시절에 뇌성마비로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꽃동네에 맡겨진 그는 매일 육체적인 고통을 견디면서 오로지 침대 위에서만 살고 있다. 그래도 그가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는 이유가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기를 버린 어머니를 용서할 수 있었던 것. 하나는 남을 위해 매일 기도하는 것. 그리고 받은 용돈을 기부하고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이다. 거기서 느꼈던 것은 이 청년이 받은 치료는 육체적 생명의 기능을 유지하는 것보다 오히려 살리기 위한 정신적인 지주(支柱)가 주어졌다는 것이다. 그를 지탱하는 것은 받은 희생과 봉헌(奉獻)에 대한 가르침 이외에, 스스로 그 가르침을 추구하는 의욕이다. 또한 그러한 정신적 치료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주는 쪽에 동등한 효과, 혹은 그 이상의 것이 돌아온다는 호수성(互酬性)이 있다. 그의 존재 자체도 역시 거기서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계속 주고 있다고 말했다. 생명의 존재로써의 의의는 역시 타인과의 접속 속에서 확립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포럼에서는 ‘영성’에 대해 의논이 불교, 가톨릭, 철학, 사회학, 문학(시詩)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서로 다른 각도에서 전개되었다. 학제적인 시각이 가져온 신선함은 자기 생각의 규모와 사정(射程)을 넓혀주는 힘이 되었다.

‘영성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문제를 둘러싸고 선생님들은 ‘영성’의 정의에 대해 여러 가지로 제시했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한 것은 김태창 선생님이 “이성·감성·의식이 모두 작용하지 않는 경우에도 또한 타자와의 교류를 가능케 하는 무언가”라고 제시하셨듯이, 영성이란 본능과 가까운 것이 아닐까라는 것이다. 그리고 기능적으로 말하면 영성이란 이성과 감성이 서로 다투어서 그 균형이 상실될 때, 붕괴상태에 “변화를 가져오는 무언가”(도호쿠대학 가타오카 류 선생)이다. 영성을 구체적인 모습으로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만, 오구라 키조 선생이 주장한 것처럼 때로는 “무언가와 무언가 사이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제3의 생명”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더욱이 이른바 영성의 ‘실용성’에 관한 논의는 ‘영성과 사회’, ‘영성과 미래’라는 주제 하에서 이루어졌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아와 타자(타인·자연·신)와의 관계와 동일본대지진 후의 정신문제 및 회복, 남아프리카에서의 흑인과 백인의 화해와 같은 현실문제에 대해 ‘영성’에 의한 해결의 경험과 가능성을 논의했다. 이러한 분석에 의해 다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참고가 되는 한편, ‘영성’ 자체의 철학적 고찰에도 새로운 시좌(視座)와 힌트를 제공해 준다. 이와 같은 순환은 포럼 참석 멤버의 학제적(學際的)인 구성이 가져온 이점이자, 나에게 있어서도 배울 만한 중요한 방법이다.

 

● 안동:과거와 미래, 계승과 발전

한국유교의 본거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안동에서 열린 이퇴계(退溪)에 관한 국체심포지엄에서는 한국의 학자 이외에 일본, 대만, 중국대륙에서 온 학자도 참가하고, 질이 높은 발표를 했다. 나에게는 참으로 좋은 공부가 됐다. 먼저 세 명의 학자가 각각의 소속 지역(대만, 일본, 한국)에서의 키워드인 ‘이동(理動)─이발(理發)─이도(理到)’에 대한 선행연구를 소개해 주었다. 그리고 의논이 전개된 여러 가지 시각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리(理)’ 그 자체에 대한 이해 △퇴계학 내부에서의 ‘이동─이발─이도’의 전개 △학제적인 새로운 시좌에서의 고찰과 비교 △한문 문헌의 한국어 번역과 이해.

논의의 중심이 된 하나의 큰 문제는 전통의 유지와 개량·개혁이다. 그 초점은 퇴계학과 주자학, 퇴계학과 양명학과의 관계에 해당된다. 그것에 대해 먼저 ‘공시성(共時性)’(서로 떨어진 장소에서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일, 의미 있는 우연의 일치)라는 시각이 제시했듯이 사상의 발정에는 시공간적인 불확정성이 있다는 것이 중요한 점이다. 그리고 개인적인 관점으로는 유학의 ‘도통(道統)’ 자체는 본디 변화에 의해 잇는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의 학파로 불리는 것은 두 가지 원인이 있다. 하나는 ‘술이부작(述而不作)’과 ‘주소(注疏)’라는 작법이 그 근간을 고정화시키고, 또 하나는 ‘중용(中庸)’ 사상에 의한 균형 유지의 술법이다. 즉 분류(分流)하는 자유는 어떤 의미애서 보증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학이 나아갈 방향성에 대해 그 옳고 그름보다 과정에 보다 힘써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유학 내부의 분류뿐만 아니라 비슷한 문제와 논쟁은 서양과 만날 때에도 있었다. 유학의 계승과 다루는 방법에 대해 앞으로도 검토해야 할 과제로 염두에 두고자 한다.

심포지엄 사이에 이퇴계에 대해 그 학술성과 이외의 일면도 알 수 있었다. 주최 측 덕분에 퇴계 종가의 저택을 방문하고 종손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그 후 퇴계 산소에 성묘도 했다. 또한 이퇴계가 창건한 도산서원의 유적지를 견학할 수 있었다. 게다가 마지막 날에는 퇴계의 제자인 김학봉 종손의 안내로 저택 및 소장품을 구경했다. 두 집에서 보고 들은 것은 단순한 ‘전통’이라기보다 오히려 ‘살아있는 전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학문으로써의 ‘유학’과 달리, 앞사람부터 이어받은 가르침을 실천하는 ‘유교’라는 생활이다.

 

● 청주:‘타자’라는 거울

이 포럼은 ‘발표 없음, 토론 없음, 대화와 의논만’이라는 특별한 방식으로 행해졌다. 이번에 모인 것은 조명희·루쉰·소세키 연구자뿐만 아니라 문학, 사상, 사회학, 역사학, 미술, 정치, 농업 등의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분들이며, 그리고 의논된 내용도 다양한 시좌에서 이루어졌다. 이들 다양한 대화를 들으면서, 또다시 사고의 스케일을 넓히는 힘을 받았다고 느꼈다.

이번의 키워드인 ‘탈식민지화’와 ‘탈영토화’에 대해, 내 관심은 그 실현, 즉 ‘탈(脫)’에 있었다. ‘탈’이라는 행동은 ‘자력탈출’과 ‘타력탈출’의 두 가지 형태가 있지만, 어느 쪽도 단독으로 발동할 수 없다. ‘자력’뿐이라면 힘이 부족하기 일쑤이지만, ‘타력’에 너무 의지하면 또다시 남에 의해 ‘식민지화’에 빠질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즉 자아의 형성과 타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처리해야 되느냐라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이에 대해 김태창 선생이 제기한 ‘호력(互力)’이라는 개념은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루쉰이라는 인물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나의 세대에서는 루쉰과 그의 작품은 국어수업의 ‘단골’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작품에 대해 흔히들 ‘시대에서 뒤떨어졌다’고 하는 등 부정적인 평가가 나와서, 그 모습도 점차 교과서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

루쉰의 이름과 ‘식민지’를 포함한 단어를 나란히 놓고 보면 시대성에 대해서는 더욱더 강조되는 듯 보일지도 모른다. 과연 역사적으로 말하면 루쉰은 혁신의 선두에 서는 지도자적 존재였다. 하지만 그가 가장 칭찬받는 이른바 ‘투사정신(鬪士精神)’이야말로 시대를 초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투쟁의 대상은 근본적으로 말하면 사람이 인간인 이상 완전히 극복할 수 없는 부분, 즉 ‘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루쉰은 항상 자기의 저항과 그 저항을 집어넣고 만든 작품에 의해 “다른 길을 찾는” 자극을 준다. 그래서 루쉰의 작품을 읽을 때 작품의 연대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신선하게 느끼는 것이다.

 

● 맺음말

2주 동안 체류하면서 거의 매일같이 밀도 높은 사고의 ‘폭격’을 맞고, 아주 충실하게 지냈다. 선배 학자들에서 배운 것도 많았고 또 포럼에서 젊은 세대의 시대를 일부러 마련해주신 것은 정말로 고마운 일이었다. 서로가 어울리는 가운데 언어의 중요성을 새삼 통감했다. 얻어지는 정보량과 의사소통의 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 언어는 동아시아의 과거와 현재의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는 하나의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이 여행에서는 학술적인 면은 물론, 다른 면과도 조금씩 접할 수 있었다. 안동으로 이동하기 전에 얻어진 며칠간의 자유 시간을 이용해서 서울에서 시내관광을 했다. 한 가지 민속촌에서 느낀 것은 민속을 보존하려면 그냥 정중하게 박물관에 놓은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 나라의 문화적 생명력의 강도는 그것을 다루는 방식에서 알 수 있다.

한 나라를 이해하는 데에는 참으로 짧은 여행이었다. 나에게 한국은 아직 수수께끼가 많은 나라이다. 하지만 수수께끼가 많을수록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견문을 넓히는 것은 자기의 무지함을 성찰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무지함을 느끼기 때문에 지견을 구하려는 의욕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것 또한 이번에 받은 최대의 ‘선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번역: 원광대 연구원 야규 마코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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