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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칼럼-다시 인문학<이현수>
동양칼럼-다시 인문학<이현수>
  • 이현수
  • 승인 2018.01.21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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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수 한국폴리텍대 청주캠퍼스 학장

(이현수 한국폴리텍대 청주캠퍼스 학장) 공대 학장이 뜬금없이 인문학 타령이냐고 힐책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도처에서 목도되는 인문학의 고사 위기 속에 일말의 책임감 같은 것이 들었다. 돌아보자. 실체 없는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로 나라를 흥분시켰고 좌절시켰던 ‘황우석 사태’와 작금의 인문학 위기는 사실은 맞닿아 있다. 세상은 그의 학문적 업적에 열광했지만, 연구논문이 조작으로 밝혀진 후 그에게 쏟아진 비난은 야만에 가까웠다. 대중의 기호에 부합하는 성과중심의 학문은 이처럼 쉽게 달궈진 냄비와 같다. 그러나 학문은 성찰로 하는 것이다. 인문학의 성과란 것도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사회 각계에서 그것을 이해하고 로드맵을 함께 고민해 만들어가야 하는 인간의 필수학문이다. 휘황찬란한 과학의 시대에도 신은 건재했고 4차 산업혁명이 마무리되는 시점에도 굳건하게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지능은 비대해졌고, 정보를 습득하는 능력도 높아졌지만, 반면 정서적으로 이를 공감하는 능력은 턱없이 모자라는 심각한 불균형 상태에 직면해 있다. 여전히 난해한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다시 인문학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이다. 영혼의 균열과 지식의 불균형 상태를 맞은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고즈넉한 인문학의 역할이다.

통계청 국가 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인문학 박사학위 취득자 중 29%가 미취업 상태에 놓여 있다. 학위를 받기 전 취업 상태였던 43%의 취득자를 감안한다면 이른바 인문학 오버 닥터와 인문학의 위기는 필연적이다. 최근 들어 전국의 대학에서 500여 개의 학과가 폐과 혹은 통폐합됐다. 대학의 경쟁력을 위해 시대 흐름과 산업현장의 수요를 반영한 필연적인 구조 개편은 필요하기도 하고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인문, 사회, 예체능 계열로 국한되는 것이 문제다. 이러니 인문학을 전공한 박사 낭인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재정이 열악한 사립대의 경우, 퇴직 교수의 빈자리는 쉽사리 채워지지 않는다. 서슬 퍼런 대학 구조개혁 평가의 쓰나미 속에 입학금 불가 조치와 등록금 동결에 모든 대학이 예외일 순 없다. 이 판에 어느 대학이 인문학 전공 교원의 신규채용에 관심조차 보이겠는가. 4차 산업혁명에 끈덕지게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모든 교육은 인문학으로부터 발원한다고 외쳐봐야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철학이 결여된 과학은 오래가지 못한다. 빅 데이터를 만들고 분석하는 일은 공학도의 몫이고, 인간의 감성과 실효적 가치를 입히는 일은 인문 학도의 영역이다. 스티브 잡스의 아이 폰이 그랬다. 저마다 그 쓰임과 밥그릇이 다르다. 청년실업의 대란 가운데 인문학 전공 졸업생의 위기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과라서 죄송하다’는 자조 섞인 한탄은 인문학의 눈물이다. 이들의 고난이 오랫동안 이 사회를 지배하는 현상으로 굳어진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담하다. 척박하다. 인문학은 무한한 장점과 매력을 안고 있다. 인간과 관련된 근원의 문제를 천착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인문학은 그 출발점이 사람이고, 종착점 또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능력이 우수한 사람이라도,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 ‘우리’에 대한 공감이 부족하다면, 그 능력은 개인의 영달을 위한 도구일 뿐이며 사회적 해악이 될 수 있다. 이것은 인문학이 가장 우려하는 현상인 동시에 인문학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사회적 대답이 될 수 있다. 점점 더 팽배해지고 있는 물질만능적인 사고로는 나라와 시민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는 무거운 미래 전망까지 나오는 이 시대에 인문학마저 자취를 감춘다면 인간들은 어디에 마음을 둘 것이며 무엇으로 위로받을 것인가. 근대화 시절 국가가 나서서 중공업과 중화학 같은 기초 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했듯이 인문학 분야를 유치 학문 분야로 지정해서 보호하고 육성해야 할 때가 지금이다. 그러기 위해 스킬 중심의 기술자를 만들기보다 철학이 있는 장인을 만드는 교육의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하다. 이제 대학은 인문학 연구의 방향과 내용을 새롭게 재정립해야 한다. 대학은 인문학 연구를 통해, 허물어진 인문학의 영역을 고쳐 세우고, 인간됨의 정체성과 삶의 내용을 소통과 배려 없는 시대에 응당 제공해 주어야 한다. 갈수록 사람다운 삶이 더욱 힘들어지는 시대이지 않은가. 이러한 척박한 시대에 맞설 수 있는 근원적 공동체의 길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 인문학의 힘이다.

우리의 대학교육이 스펙에 열중하는 사이, 성찰과 공감 없는 청년을 사회에 배출하고 있지는 않은지 통렬하게 돌아보자. 더불어 사는 사회, 함께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시대가 체감하기 위해서라도 다시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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