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을연 충남역사문화 연구원 학술지 ‘규장각’ 통해 주장

(공주=동양일보 류석만 기자) ‘명궁’(名弓), ‘신궁’(神弓)이라고 기록된 조선 22대 임금 정조(1752∼1800). 각종 문헌을 토대로 정조의 활쏘기 실력을 분석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최근 발표됐다.

장을연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최근 간행한 학술지 ‘규장각’에 게재된 논문에서 정조의 활쏘기 실력을 분석했다.

장 연구원은 “정조에게 활쏘기는 심신수양이라는 이상적인 가치보다는 상무정신에 입각한 문무의 겸비, 실전 대비를 위한 무예 연마의 현실적 수단이었다”며 “현재 남아 있는 정조 재위 기간의 활쏘기 기록은 262건”이라고 설명했다.

정조의 첫 활쏘기 기록은 ‘추행갱재첩’에서 찾을 수 있다. 정조는 숙종 탄생일을 맞아 1787년 8월 고양행궁에 행차했을 때 문무 신하와 함께 활쏘기를 했다.

이날 활쏘기는 39회에 걸쳐 이뤄졌는데, 회당 5발의 화살이 제공됐다. 정조는 첫 번째와 38번째 사수로 나와 5발씩을 모두 명중시켰다. 정조 외에 5발을 맞힌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정조의 활쏘기 기록은 1787년부터 1798년까지 전하는데, 그는 5760발을 발사해 3966발을 적중한 것으로 나타났다. 적중률은 68.9%였다. 적중률은 1790∼1793년에 80% 안팎으로 높았으나, 1795년 이후 하락세를 보였다.

장 연구원은 정조 활쏘기 실력의 정점을 찾기 위해 뛰어난 체력과 집중도를 요구하는 10순 활쏘기(한번에 50발을 쏘는 것) 기록을 살폈다.

정조의 10순 활쏘기는 1790년과 1791년에 각각 3회와 1회에 불과했으나, 1792년에는 32회로 매우 많았다. 이후 1793년부터 1798년까지는 모두 합해 15회였다.

아울러 정조가 10순 50발 가운데 49발을 맞히는 ‘몰기’(沒技)에 성공한 시기도 1792년이 15회로 가장 많았고, 1790년과 1793년에 각 1회와 2회였다. 이에 대해 장 연구원은 “몰기는 정조의 활쏘기 솜씨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라면서 “정조가 40세였던 1792년에 체력적으로나 기량 면에서 자신감이 충만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장 연구원은 이어 “정조대 이후 국왕의 활쏘기 횟수는 현저히 감소했다”며 “정조의 활쏘기 기록은 규모의 방대함과 내용의 상세함 측면에서 연구 자료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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