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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울보·우지<박희팔>
풍향계-울보·우지<박희팔>
  • 박희팔
  • 승인 2018.01.2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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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울남’은 ‘울’에다 ‘사내 남(男)’을 붙여 ‘울男’이다. ‘울기를 잘하는 사내아이’라는 말이다. ‘울녀’는 ‘울’에다 ‘계집 녀(女)’를 붙여 ‘울女’다. ‘울기를 잘하는 계집아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 둘은 반은 고유어이고 반은 한자어이다. 그런데 ‘울보’는 ‘걸핏하면 우는 아이’다. ‘우지’도 ‘걸핏하면 우는 아이’다, 사내아이나 계집아이 구별 없이 쓰는 말이면서 둘 다 고유어이다. ‘울기를 잘한다.’와 ‘걸핏하면 운다.’는 같은 뜻의 말이어서, 같은 뜻의 말이라면 시골사람들은 예부터 우리나라말인 고유어를 많이 썼기 때문에 ‘울남·울녀’라는 말보다는 ‘울보·우지’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써오고 있다. 한데, 이 울보와 우지는 사내아이나 계집아이 구별 없이 두루 쓰는 말이라 했거니와 이 동네에서는 편의상 이 둘을 구별하기로 했다.

세상에 처음 나올 때에야 사람이라면 누구든 다 울겠지만 그 첫울음 직후엔 아직 말을 못하니 울음으로 제 뜻을 표할 수밖에 없을 때, 가령 배가 고파서 젖 보챔으로나 아니면 제 몸이 불편을 느낄 때나 울어대는 것이지 그 시기가 지나면 말로 제 뜻을 표하지 울음으로 대신하진 않는다. 그런데 말 못하는 시기가 지나 말은 청산유수로 하는데 그 울음은 떼놓질 못하고 여전히 습관처럼 젖어있는 아이가 동네에 둘이나 있다. 하나는 사내아이고 또 하나는 계집아이다. 이 둘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말만으로도 충분히 제 의사표시를 할 수 있으련만 울음부터 앞세워 제 뜻을 관철시키려한다. “넌 우째 사내놈이 울기부터 하냐. 그냥 밥 달라고 말로 해도 되잖여!” “그러니까 빨랑 밥 줘 엉엉!” “또, 또, 울어!” “밥부터 줘야 그치지. 엉엉.” “울음을 그쳐야 밥을 주지. 뚝 그치지 못햐!” “배고픈데 어떡케 안 울어 엉엉!” “에그, 말이나 못 하믄…. 알았다 알았어.” 계집아이 집에서도, “넌 어떻게 생겨먹은 기집애가 매번 보는 고모만 봐도 그렇게 울어쌌냐. 내가 그렇게 무서우냐. 싫으냐?” “몰라, 몰라 앵앵!” “쟤, 지나가는 강아지만 봐도 꼬약꼬약 우는 애예요.” “강아진 보구 안 울었어 뭐. 왜 그짓말 해 엄만 앵앵!” “울면서두 지 할 말은 다하구 참견할 건 다 참견해요.” “그럼 그냥 울기만 할까. 앵 앵 앵 앵….” “알았다. 알았다. 뭘 어떻게 해 달란 말이냐?” “울지 않게 해줘!” “뭣이?” 하니 참 못 말리는 두 애들이다. 이러니 동네서도 울보우지로 낙인이 찍혀 있는데, 그냥 울보우지라면 둘 중 어느 애를 지칭하는지가 혼동이 돼서 하루는 이걸 가지고 말들을 주고받았다. “걸핏하면 울어제끼는 저 애들 말여 아무래도 구별을 해야겄잖여?” “그러니께 자네는 누굴 울보라 할지 누굴 우지라 할지 그걸 구별하자는겨. 그렇다면 울보는 우렁찬 느낌이 나고 우지는 찔찔대고 우는 느낌이 나니까 사내애를 ‘울보’라 하고 계집애를 ‘우지’라고 하는 게 워뗘?” “그거 괜찮을 것 같으이.” 해서 그렇게 칭하기로 한 것이다.

사내아인 울보는 초등학교 들어가면서는 노래를 잘 불러 학예회 때마다 독창대표로 뽑히더니 청년이 되면서는 면내·읍내 노래자랑에서는 장려상부터 우수상, 최우수상, 대상 등을 휩쓰는 거였다. “거 참 사람은 두고 볼 일여, 어려서 하도 울어대면 목구멍이 확 뚫려서 노래를 잘한다더니 그 말이 옳은가벼. 그 울보가 저리 될 줄을 누가 알았남!” “글씨 말여, 가수 뺨친다고 처녀애들이 줄을 섰다누만.” “그 녀석이 걸핏만 하면 울어대서 누가 저런 놈한테 시집오겠냐고 하지 않았는가?”

계집아이인 우지는 점점 커가면서 몸매가 날씬하고 얼굴도 갸름한 것이 한 인물 하더니, 읍내여고를 졸업하면서는 곧바로 농산물아가씨로 뽑혀 다니며 농촌홍보에 여념이 없다는 것이다. “우지 말여, 걸핏하면 앵앵 울어대고 찔찔거리고 울어서 그럴 때마다 손등이나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연방 훔쳐내더니 그래서 그런지 눈자위가 촉촉한 것이 쌍꺼풀이 져서 인물이 예쁘장해졌잖여.” “젤로 눈물 많이 흘린 눈동자가 저리 맑고 눈매가 저리 고울까!” “눈썹은 늘 눈물에 젖어 있더니 그게 거름이 됐던지 저렇게 길쭉길쭉한 것이 꼭 인형 뻔나!”

한 살 위인 울보가 먼저 장가를 갔다. 군 노래자랑에 같이 출연했던 아가씨의 프로 포즈에 넘어갔다는 것이다. “색시도 울보였나벼 노래자랑에서 만났다니 말여. 둘 사이에서 뭐가 나오나 봐야지.” 우지가 시집가는 날, 온 동네사람들이 혼가에서 대절한 버스 타고 서울의 예식장까지 갔다. 식이 끝나고 신랑신부가 동네축하객들에게 인사차 왔다. “우지 너도 시집을 가는구나. 자 기분이다 신혼여행에 보태 써라!” 옆집아저씨가 껄껄 웃으며 지갑에서 십만 원을 꺼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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