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을석 <충북도교육청 장학사>

당호(堂號)라는 것이 있습니다. 당호는 거처하는 집의 이름으로서 보통은 주인이 지향하고자 하는 삶의 의미를 담아 짓습니다. 쉽게 말해 집의 이름인데, 옛날에는 현판으로 만들어 걸어두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은 주인 이름 대신에 당호로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최근에 우연히 당호를 하나 발견하였습니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예상치 못한 모양으로 내걸린,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세워진’ 당호였습니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작은 당호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것은 기껏해야 손가락 세 마디 정도의 크기였습니다. 또 그것은 고풍스런 기와집 처마가 아니라 유리가 깔린 테이블 위에 올려진 조그마한 팻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 당호의 크기나 위치 탓도 있겠지만 또 다른 이유 때문에 유난히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그 당호는, ‘참음’을 강조하는 백인당(百忍堂)이었습니다.

백인당이라는 이름이 그 자리에 있게 된 연유는 모릅니다. 하지만 뜻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백 가지를 참아야 한다’, ‘백 번이나 참아야 한다’는 것이 글자가 드러내는 기본 뜻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이 백인당의 주인(소유자)을 방문합니다. 하루도 거름이 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방문합니다. 이런 점에서 백인당은 백 사람(人)이 찾는 집입니다.

또 수많은 사람들이 주인에게 뭔가를 끊임없이 요구하기도 하고 불평과 원망을 쏟아내기도 합니다. 개중에는 무엇이 필요하다, 무엇을 해야 한다 목청도 높입니다.

그 온갖 사람들의 온갖 말들을 듣고 소통해야 하니, 백인당은 분명 백 명을 만나서 백 가지를 듣고 백 번을 참아야(忍) 하는 집입니다.

리더가 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길을 보여주고 함께 나아가도록 하는 길라잡이가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동시에 자신이 가진 권한과 자원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의 요구, 비판, 갈등을 만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럼, 백 명의 사람을 만나 백 가지 이야기를 듣고 백 번을 참아서 도대체 무엇을 할까요? ‘참는 것이 곧 덕이요, 참음으로써 어짊(仁)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백인당의 주인이 백가지 어짊을 이루기를 바랍니다.

우리말 ‘어질다’는 너그럽다, 착하다, 슬기롭다 등의 뜻을 품고 있습니다. 자애로움, 관용적인 사랑, 현명함 등이 어짊의 내용입니다. 어짊을 이룸으로써 백인당(百忍堂)이 백인당(百仁堂)으로 변화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제게 백인당의 뜻을 생각해 보게 하는 집 주인은 일찍이 ‘낡은 교육’의 문제점을 설파하고 ‘새로운 교육’, ‘함께 행복한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주장이 도민의 선택을 받아 지금의 리더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에 혹 짐작이 가능한 분도 계시겠지만, 백인당의 주인은 김병우 교육감입니다. 그가 지나온 길은 도민께서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백인당(百忍堂)은 기실 교육감 접견실에 있는 실내용 솟대의 작품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호(堂號)라고 생각한대도 큰 잘못은 없으리라 여겨집니다. 집주인이 그만큼 많이 참고 그만큼 어짊을 이루어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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