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 시인

(나기황 시인) 한 해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보면 그 해의 트렌드를 읽을 수 있다.

김난도 교수가 이끄는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2018년의 소비트렌드를 설명하는 키워드로 ‘웩더독(Wag the Dogs)’을 선정했다.

10대 트렌드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웩더독’은 ‘꼬리가 몸통을 흔들다’는 숙어적 표현으로 ‘사소한 일이 중대한 일을 결정짓게 한다.’는 뜻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예를 들면, 인기캐릭터가 새겨진 사은품을 받기 위해 값비싼 물건을 사는 경우라든지 디저트로 나오는 아이스크림이 맛있어 꼭 그 레스토랑을 찾는다는 등 주객이 전도된 소비패턴을 빗대어 말하는 것이다.

몇 가지 소비트렌드를 살펴보면, 지난해만 해도 “인생 뭐 있어, 한번뿐인 인생인데” 하며 자신을 위해 여행 등에 과감히 투자하며 삶을 즐기는 ‘욜로(YOLO)라이프’가 대세였다면, 올해는 적은 비용으로도 소소한 일상에서 자기만의 확실한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소확행(小確幸)’소비가 유행할 전망이다. 또 하나의 트렌드로 ‘가심비(價心費)’를 들 수 있다. 소비를 결정할 때 가격대비 성능을 따지는 가성비는 기본이고, 얼마나 심리적 안정감을 주느냐가 선택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2018년 가장 주목할 만한 트렌드 중 하나는 단연 ‘워라밸’ 세대의 등장이다.

‘워라밸’은 일과 삶의 균형을 의미하는 ‘Work-Life-Balance’의 줄임말이다.

88년생부터 94년생까지 사회에 갓 진출한 직장인세대가 바라는 삶의 모습이 향후 소비트렌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워라밸’ 세대의 특징은 기본적으로 직장(일)을 개인(가정)생활보다 최우선순위에 놓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직장선택의 기준도 비록 연봉은 다소 적을 지라도 정시에 퇴근을 하고 자기시간을 가질 수 있는 소위 ‘저녁이 있는 삶’이 보장되느냐가 우선이다.

‘칼 퇴근’후에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감상을 하고, 북 카페에 들려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동호회 모임이나 헬스, 스쿼시를 즐기며 스트레스 제로의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워라 밸’세대의 생각이다.

이런 사고방식에 대해 기성세대들은 어이없다고 혀를 차며 고개를 저을 수도 있다.

60년대 열사(熱砂)의 중동건설현장과 파독(派獨)광부시절을 떠올릴 수도 있고, 베이비붐세대는 IMF외환위기로 대책 없이 거리로 내몰리던 때를 생각하며 다시 가슴을 쓸어내릴지도 모른다.

마땅한 알바자리조차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는 동년배 ‘N포 세대’에게도 ‘워라밸’은 배부른 투정으로 비칠 수 있다.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은 단지 희망사항일까.

분명한 것은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부부세대에서 개인세대로 옮겨가는 시대적 흐름을 바꿀 수는 없다. 혼밥, 혼술 족(族)에서부터 ‘욜로 라이프’와 ‘워라밸 세대’로 이어지는 사회구조적 소비행태도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그런 변화의 과정에서 급격히 해체되어 가는 공동체의식이다.

요즘 소비트렌드가 지향하는 방향이 모두 개인에게 치중돼있어 자칫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왜곡된 소비트렌드를 만들지 않을까 우려되는 것이다.

‘워라밸 세대’가 지향하는 ‘일과 생활, 직장과 가정의 균형’있는 삶의 이면에 이기적이고 자기애(愛)적 쏠림현상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워라밸’세대에게 야근수당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았던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강요할 수는 없다.

‘맞벌이는 하되 자녀를 갖지 않는 ’딩크족(DINK: Double Income No Kids)을 부러워한다 해서 나무랄 수도 없다.

‘일과 생활의 균형’있는 삶은 비단 ‘워라밸’세대 뿐만이 아니라 오랫동안 인류가 갈구해 온 바람직한 사회상이기 때문이다.

‘워라밸’이 ‘칼 퇴근’으로 끝나지 말고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한 공동체적인 노력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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