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유영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남의 눈을 통해 나를 확인하는 일은 즐겁다.

최근 TV의 인기프로그램들 중에 외국인들이 한국에 처음 와서 낯선 일을 경험하는 것을 바라보는 마음이 그러하다.

저들의 눈에 한국의 문화와 역사는 어떻게 비춰질까. 한국의 복잡한 거리를 걸으며 우리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한국 음식에 대한 인상은 어떨까. 그래서 그들이 빨판이 붙는 산낙지를 입에 넣으며 인상을 쓰거나 매운 떡볶이를 먹으며 입을 호호거리거나 시장바닥을 누비는 것을 재미있게 바라본다. 그리고 그들의 행동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돌아본다. 우리는 우리의 이웃나라 문화에 대해, 그리고 낯선 타국의 음식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갑자기 점심으로 시켜먹고 있던 ‘짬뽕’이란 음식에 생각이 꽂힌다. 이 음식은 본래 우리 음식이 아닌데 왜 이처럼 우리 입맛에 익숙한 음식이 되었을까.

음식인문학자 주영하 교수는 <차폰 잔폰 짬뽕>이란 책을 통해 ‘짬뽕’이 우리 음식이 되기까지의 배경과 역사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솔직히 우리 사회에 깊숙이 파고 든 음식과 그 단어의 어원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빵’이 포루투갈어인 것을 모르는 채 우리말로 쓰이는 것처럼 ‘짬뽕’ 역시 그저 매운 중국식 국수, 또는 서로 다른 것을 ‘뒤섞는 것’ 정도로 이해되는 음식이었다.

그러나 ‘짬뽕’이 실은 일본의 화교들로부터 만들어져 한반도로 건너온 음식이며, 우리의 짜장면 또한 그런 식으로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져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음식문화의 역사와 이동에 흥미를 갖게 된다.

수년간의 현지 조사와 문헌 연구를 토대로 동아시아 음식 문화의 역사를 정리한 저자는 ‘짬뽕’의 변화과정이 일본 제국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일제 침략 이후 한·중·일이 동일한 정치·경제적 권역에 들면서, 일본 나가사키에 정착한 화교들이 중국식 우동을 현지화해 ‘잔폰’을 만들고 이것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변형을 거쳐 지금의 ‘짬뽕’이 됐으며 ‘차폰’은 중국식 발음이라는 것이다.

또 짜장면이 한국의 대중음식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1960년 대 이후 차별적인 법으로 화교에게 농토를 갖지 못하게 규제하자 이들이 중국식당을 차렸으며 이때 주된 메뉴가 바로 짜장면이었고, 여기에 짬뽕과 우동이 일본화교로부터 들어오면서 일본식 이름이 그대로 붙여졌다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음식은 주권이나 인권의 문제와 직결된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음식문화만으로 볼 것이 아니라 정치·경제학의 차원에서 살펴봐야 하는 문제이다.

그런데 세계화는 음식문화의 다양한 발전을 방해한다. 전 세계를 단일한 식품산업 시스템에 편입시키는 세계화의 영향으로 이제 지구촌 어느 오지에서도 맥도널드 같은 다국적 기업이 만든 식품을 먹을 수 있는 환경이 됐기 때문이다.

또 국가주의 역시 식탁을 초라하게 만들고 있다. ‘국가’라는 단일 정체성아래 주변부 먹을거리가 중심부로 포섭되면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소수자들의 음식과 향토음식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수민족들의 고유음식은 관광객을 위한 상품으로 전락해 자취를 감추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도 지역의 토속 음식들은 옛날 음식으로만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면 대안은 무엇일까. 지역 사회 중심의 로컬푸드 시스템 복원이다.

로컬푸드란 주민들 스스로가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이를 위해 지역별로 독자적인 음식 재료와 음식물 창조, 농수산물의 자급자족을 위한 생산 시스템 구축으로 다양한 음식의 미래를 찾아야 할 것이다. 물론 국가나 민족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음식문화에 대한 획일적 정책도 벗어나야 하지만 그보다 먼저 고유 음식을 지키고 발전시키려는 지역민들의 노력과 교류의 장이 중요하다.

그리고 고유성을 마치 철갑옷으로 삼아서 보호하려는 자세보다는, 공통의 관심사를 찾아 널리 퍼뜨려야 하며, 건강에 유익한 먹을거리 생산과 소비를 위해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음식 문화를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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