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상 통사通史 그려낸 가치있는 저술

코지마 츠요시 일본 도쿄대 교수

동양일보가 연중 펼치고 있는 ‘동양포럼’으로 한국의 독자들과 만나온 오구라 기조 일본 교토대 교수가 최근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와 ‘조선사상전사(朝鮮思想全史)’ 책 두 권을 펴냈다.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는 현대 한국 사회를 성리학의 핵심개념인 ‘리’와 ‘기’로 해부한 독창적인 한국론을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은 한국에도 번역·출간됐지만 ‘조선사상전사’는 아직까지 일본에서만 만날 수 있다.

‘조선사상전사’는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유교·불교·도교 등의 사상과 철학을 넘어 신화·역사·종교·정치까지 모두 담고 있다.

이 두 책에 대해 코지마 츠요시(小島毅) 일본 도쿄대 교수와 조성환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책임연구원이 쓴 서평을 싣는다. <편집자>

이러한 종류의 책이 간행되는 것을 나는 고대하고 있었다. 저자 스스로 말했듯이 한국에 대한 “적당한 사상사의 입문서가 없었던”(13쪽) 것이 실정이었기 때문이다. (단 저자는 ‘조선’을 쓰지만 나는 ‘한국’을 쓰기 때문에 이 글에서도 그렇게 한다)

일본에서 한국사상을 연구하는 내가 아는 사람은 저자 이외에도 몇 명이 있다. 그중의 한 사람에게 “선생은 통사를 안 쓰는가요?”라고 물어본 적도 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대답은 부정적인 것이었다. “앞으로 자기 지견(知見)이 더 깊어지고 엄밀하고 정확하게 쓸 수 있다는 자신이 생기면 쓸지도” 모른다는 취지였다.

 

‘조선사상전사’.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 학문의 엄밀성만 고집하면 전문가들만 읽어

학문에 엄밀성·정확성이 필수적인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것에 고집하면 전문가 이외의 독자에게 학계의 연구 성과를 제공할 수 없게 된다.

나는 이와 같은 입장에서 저작을 몇 권 썼기 때문에 저자의 분발에 대해 전면적으로 찬성의 뜻을 표하는 바이다. 나도 ‘유교의 역사(儒敎の歷史)’(山川出版社, 2017년)를 막 펴냈는데 그 속에서 한국에 관해서도 기술했지만 ‘조선사상사’가 먼저 나왔더라면 좀 더 제대로 쓸 수 있었다고 후회하고 있다.

이 책의 대략은 생략한다. 그 구성상의 특징은 근대 이후의 기술이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는 점일 것이다. 제2장부터 제6장까지가 태고(太古)시대부터 18세기까지를 다루어 212쪽짜리가 되고, 제7장부터 제10장까지가 19세기부터 현재까지를 다루어서 딱 200쪽이 되니 거의 같은 분량이다.

이것은 저자가 현재 및 장래의 문제로써 사상사를 잡으려고 하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자세에도 나는 깊이 공감했다. 근현대에 대한 깊이 있고 긴 기술에 의해 총 쪽수가 450쪽에 달하는 신서(新書)로서는 이례적으로 두꺼운 책이 되었다. 그런데도 정가가 1100엔으로 저렴하게 설정되었으므로 많은 독자를 획득할 수 있다고 기대가 된다.

 

● 책에 일관되게 서술된 키워드는 ‘영성’

본서를 일관하는 키워드이자 저자의 분석 개념이 되어 있는 말이 ‘영성(靈性)’이다.

이것은 저자가 지금까지 연구해온 시각을 발전시킨 것으로 통사를 단순한 사실의 나열에 그치지 않게 하기 위한 효과적인 도구로 기능하고 있다.

‘신라적(新羅的) 영성’이 화엄경학(華嚴經學)이나 영남(嶺南)의 성리학, 그리고 동학까지 이어진다는 생각은 아마 종래에 없었던 견해로 “사상사의 테두리를 국가나 민족이라는 단위로부터 해방시키는 길을 열게 될” 것이다.(074~075쪽).

그러나 일의 성격상 그것을 실증하기 어렵다. 또 이것이 단순한 지역성과 어디가 다르냐에 대한 설명도 필요할 것이다. “국가나 민족이라는 단위”라고 하지만 저자 스스로 제1장 첫머리에서 말했듯이 “‘조선민족’이라는 고유의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다.”(015쪽) 예컨대 만약 유럽 전체를 하나의 국가, 하나의 민족으로 간주한다면 “니벨룽겐의 노래부터 루터, 칸트로 이어지는 ‘독일적 영성’이 있다”는 분석이 유효해진다. 하지만 ‘독일민족’의 존재를 자명시하는 테두리에서는 이것은 단지 ‘독일의 사상’을 이야기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 오구라가 말하는 ‘신라의 영성’

저자가 “신라가 있었던 지방은 조선의 다른 지역과는 이질적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신라적 영성’이란 무엇인가? 저자가 가설한 분석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신라적 영성이 있다고 가정해보면 그 사상가들의 공통성을 설명할 수 있다”고 하는 논법은 “그 사상가들에게 보이는 공통성은 그들이 신라의 옛땅 출신이기 때문이다”라고 하는 순환논법인 것처럼 보인다. 저자의 생각을 앞으로 보다 정확한 표현으로 읽고 싶다고 느꼈다.

또 신라시대에 관해서 사상사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에 대해 감상을 말하고자 한다. “신라는 중국화”되었지만 “일본은 결국 국풍화(國風化)라는 방향성을 걸었다”고 쓰여 있다(073쪽).

사실 문제로 근년 일본의 이른바 국풍시대(國風時代 10~11세기 무렵, 대륙에서 일본으로 전래된 종교·문학·의상 등이 일본의 풍토·취향에 맞게 변화·토착화된 시대-옮긴이 주) 연구 추세는 이 시기에도 당(唐)나라나 오월(吳越)나라와의 교류는 계속되고 중국문화의 존재감은 매우 컸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다지지 않는다.

문제는 바로 이 시기에 일본에서는 귀족 남성의 이름이 한자 1~2글자의 중국식으로 변화된 것과 관련된다. 신라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성(姓)에까지 일어났을 것이다. “신라는 중국화 되었다”는 한마디에 저자의 미언대의(微言大義)가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 개개인에게 이름은 자기 정체성과 관계

어떤 것을 뭐라고 이르는가, 즉 이름은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특히 개개인에게 있어서 그것은 자기 정체성과 관련된다. 이 점에 한국 사람들이 여전히 갖추고 있는 한국적 영성을 푸는 열쇠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저자는 굳이 조선이라고 부르지만) 한국 사람들이 스스로 ‘한(韓)’이라고 일컫는 심성과 통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북녘’에서는 ‘조선’에 고집하지만) 유교가 중시한 것은 정명(正名) 즉 사물의 이름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시대는 훨씬 내려가는데 동학에 관한 기술을 살펴보자.

같은 19세기 중엽에 일어난 중국의 태평천국(太平天國) 운동이나 일본의 신흥종교 각파(各派)와 비슷한 상황·내용이지만 여전히 “자민족의 사상자원”(266쪽)으로 보람 있게 말해지고 있는 점은 흥미롭다. 저자의 분석으로는 종래의 ‘엘리트주의적 철학적 교리’에 대해 처음으로 등장한 ‘평등사상’이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한다(261쪽).

과연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가 ‘철학’에 의해 사상사를 말하는 방법 그 자체가 그렇게 보이는 원인이라고도 생각된다. 과연 ‘교리’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민중은 단지 객체이자 지배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회를 통합하는 것은 ‘교리’가 아니라 오히려 의례 등의 관습·관행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조선시대에 민중 측에서도 가례(家禮)·향례(鄕禮) 차원의 주자학적 의례의 관행이 존중되고 주체적으로 섭취된 면은 없을까? 본서의 조선시대에 대한 기술이 기라성 같은 유학자들의 열전으로 가득차고 주자학의 사회 기반에 대한 침투가 분석되어 있지 않은 점이 나에게는 아쉽게 느껴졌다.

 

● 한국 근대에 일본의 소행은 ‘규탄적’

한국의 근대를 말할 경우, 특히 저자와 나와 같은 일본인의 경우 일본의 소행에 대해 뭐라 말하기 어렵다. 저자는 제8장 첫머리에서 조슈(長州; 지금의 야마구치현山口縣 북부 지역-원문 주)의 역할을 규탄적(糾彈的)으로 말한다(279~281쪽).

나도 완전히 동감하고 이전에 비슷한 기술을 한 적도 있다. 저자의 기술에 부가해서 말하면 이것은 조슈( 및 야마구치현 남부 스오우周防 지역)와 한국과의 역사적인 관계에 유래한다. 즉 12세기부터 16세기까지 이 지역은 오오우치씨(大內氏) 집안이 통치했었는데 그들은 백제 왕실의 후손을 자칭하고 있었다. 게다가 14세기부터는 중앙정부(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 밑에서 고려·조선과의 외교·무역에 종사하면서 경제적·문화적인 혜택을 누려 왔다.

이러한 전사(前史)가 메이지유신을 맡은 조슈 출신자들에게 계승되고 한국과의 적극적 관계(물론 부정적인 의미에서이지만)를 일본이 추진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사상으로 말하면 조슈 사람들은 진구 황후(神功皇后)의 ‘신라 정벌’을 역사적 사실로 믿고 있어서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는 것을 먼 옛날 이래의 정상적인 상태라는 역사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양국의 불행한 관계는 이렇게 발생한 것이다.

부언하면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를 창건한 것도 그들이며, 지금도 신사에의 길목을 내려다보는 거대한 동상은 오오무라 마스지로(大村益次郞)라는 조슈의 장군이다. 본서의 취지와 직접 관계는 없지만 ‘일본식 영성’이라는 말이 탄생한 것도 일본의 침략전쟁 중이었다는 것은 지적해 두고 싶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저자는 가치 판단에 입각한 사상사를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본서 안에서 그 자신이 비판하는 ‘춘추필법(春秋筆法)’이 되지 않기 위함이기도 한다.

 

● ‘병합 식민지’로 양국관계 규정 높이 평가

일본의 통치를 받아들인 인물들의 사상도 제대로 소개·분석한다. 그 경우에 ‘일본1’과 ‘일본2’, ‘조선1’과 ‘조선2’를 구별하고 ‘병합 식민지’로 양국 관계를 규정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광복 후 시기의 서술, 불행하게도 남북이 분단된 이후에 대해서도 비평을 가해야 할 테지만 나의 학력으로는 힘이 벅차고 주어진 글자 수도 거의 다했다.

마지막에 요약하면 본서는 간편하게 한국의 사상 통사(通史)를 그려낸 일본어의 저술로서 앞으로도 오래도록 읽힐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 한국 사람들에게도 일본의 양식적인 연구자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리기 위한 좋은 자료이다.

‘혐한(嫌韓)’을 주장하는 인사들은 사실 한국의 역사나 문화·사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본서를 통해서 인식해 주셨으면 한다는 것이 나의 간절한 바람이다.

<번역/야규 마코토 원광대 원불교사상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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