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요즘 정치인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현란스럽다. 아니 헷갈린다. 어디서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다. 누군가 주변에서 팩트(사실)를 확인시켜 주지 않거나 통역해 주지 않는 이상 다른 나라 말을 듣는 기분이다.

정치인들의 ‘돼먹지 않은’ 말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입만 벌렸다하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낸다. 아무리 정치인들이 말을 먹고 산다지만 국민들 앞에서 하는 행태를 보면 최소한의 예의나 양심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런 사람에게 표를 준 유권자도 책임이 있지만, 정치인답게 최소한의 품위 쯤은 보여줘야 하는 게 도리가 아닌가.

정권이야 언제든 공수가 바뀔 수 있다. 정권을 잡았다가 언제 정권을 내 놓을지 모르는 게 정치현실이다. 권력이 돌고 돌지 않고 한 세력이 장기간 집권한다면 부정부패, 무능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미 그런 경험을 했다. 양당체제인 미국을 봐도 공화당과 민주당이 주거니 받거니 정권을 공유한다. 국민들은 특정 정당이 주구장창 대통령 자리를 꿰차도록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정권을 빼앗겼다고 해서 세상만사가 다 끝이 난 양 행동할게 아니라 수권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준비하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대형 화재참사로 큰 슬픔에 잠겨 있는 유족들과 국민들을 상대로 ‘정치 장사’를 하는 정치인들이 있으니 한심스럽기만 하다. 아니 제정신이냐고 묻고 싶다.

제천과 밀양에서 발생한 화재참사는 빠른 수습과 확실한 재발방지책 마련이 우선이다. 정치권이 한 목소리를 내 다시는 제2, 3의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 국민을 위한 정치다.

그런데 참사현장을 찾은 정치인들은 뭐라 했는가. 툭하면 누구누구 사퇴하라고 외치면서 불난 집에 부채질이나 하고 있다. 심지어 화재에 색깔론을 덧씌워 정치공세를 하고 있다.

물론 제천참사가 발생한지 한달여만에 밀양참사가 또 났으니 국민들 불안은 증폭되고 안전한 나라를 만들라는 국민적 요구는 거세다. 정치인인 만큼 국민요구를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밀양 현장에서 “청와대와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며 총공세를 폈다. 솔직히 말해 불을 청와대가 냈나, 아니면 (불을 내라고) 청와대가 사주했나. 그런데도 무슨 사고만 터지면 대통령, 국무총리가 책임져라, 사퇴하라고 하니 대통령, 국무총리 자리는 언제 온전할지 궁금하다.

홍준표 대표와 김 원내대표 머리속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정권이 바뀐 것이 세월호 때문이라는 피해의식이 자리했을 수 있다. 세월호는 단순한 사고, 밀양참사는 정권 탓으로 보는 인식이 그것이다. 이는 세월호 사고 자체가 원인이 아니라 사고 후 수습과정에 숱한 무능과 속임수가 정권 몰락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 같다. 특히 홍 대표는 밀양 화재 참사 현장에서 정권 책임론을 제기하며 자신의 경남도지사 재임기간(2012년 12월부터 2017년 4월까지 4년4개월)에는 화재 인명사고가 한명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CBS노컷뉴스의 팩트 체크 결과 허위로 드러났다. 그 기간동안 화재인명 피해는 사망 99명, 부상 478명에 달했다. 임기 시작부터 화재인명 사고가 꾸준히 발생했는데도 어쩌면 저렇게 거짓말을 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간다.

홍 대표는 여론조사기관인 힌국갤럽의 조사(1월19일 발표)와 자신들의 조사결과가 차이가 난다면서 문재인 대통령 지지도는 50% 줄이고 자유한국당에 대해선 2.5배를 곱해야 한다고 했다. 당시 결과는 문 대통령 67%, 자유한국당 9%였다. 여론조사기관에 대한 불신을 강조한 나머지 나름 셈법을 제시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를 수긍할 어리석은 국민은 없다.

여야 당 대표를 가릴 것 없이 벌이는 낯 뜨거운 입씨름은 이제 거둬야 한다. 국력을 한데 모아 당장 열흘 앞으로 다가온 평창동계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치러야 한다. 평창올림픽과 밀양 화재 참사를 색깔론 공격의 소재로 이용하는 것은 연이은 참사에 불안해 하는 국민들을 무시하는 행위다.

정치공방이 한창일 때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는 밀양 참사현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잇따른 화재 참사는 정치권 모두의 책임이다. 정쟁의 대상으로 볼 게 아니라 종합대책을 마련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