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평주 원장

내가 내시경을 처음 본 것은 본과 4학년때 내과 실습을 돌 때였다. 그러니까 1990년, 지금으로부터 27년 전이다. 내시경실에서 내과 선생님이 내시경을 하는데 내시경 끝에 달린 조그만 렌즈로 환자의 위 속을 현미경을 들여다보듯 광학렌즈로 보고 있었다. 그 중간 중간에 학생들에게 잠깐씩 보여 주었는데 작은 시야의 불빛에 비친 환자의 위 점막은 희고 울퉁불퉁 했다.

그후 내과 수련의 2년차가 되어 내시경을 배우게 되었을 때는 전자 내시경으로 바뀌었는데, TV 모니터에 내시경하는 환자의 위 속 풍경이 생생하게 중계되듯 나왔다. 그 때는 내시경을 배우기 전에 교수님께서 해주시는 내시경을 당해야 했다. 환자의 고통을 미리 경험해 보자는 취지였다. 목에서 넘어 갈 때의 찢어지는 듯한 통증, 구역질, 공기를 불어 넣어 팽만된 위로 부터 느껴지는 불쾌감 등을 경험하며 난생처음 내시경이라는 것을 당해보았다.

내가 개업을 할 때, 내과 의사는 당연히 내시경 검사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당시 고급 승용차 한대 값인 3천만원 정도를 주고 내시경을 샀다. 일본 제품으로 두 세개 회사의 것이 있었는데 선배들이 더 좋다고 추천 해 주는 것으로 구입을 했다. 그때에는 수면 내시경을 하는 법이 개발되어 환자의 불편함이 개선되었다.

개업 초기에는 내시경 술기가 능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시경하는 것이 스트레스였다. 위장에 있는 병을 놓칠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내시경을 하는 동안 환자를 더 불편하게 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어떤 환자는 내시경을 하면서 얼마나 힘을 주고 구역질을 해댔는지, 내시경이 끝나고 얼굴을 보니 모세혈관 출혈이 되어 있는가 하면 왼쪽 턱이 부어 불룩해지는 환자도 있었다.

이제는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환자와 호흡을 맞춰가며 제법 능숙한 솜씨로 내시경을 한다. 어떤 환자는 선생님이 내시경을 너무 잘해서 힘 안들이고 검사했다고 고마워 했다. 내시경으로 위암, 위궤양, 십이지장궤양 등을 진단하고 치료해 주며 복통이 있는 환자에게 내시경을 해서 이상이 없음을 확인 해주고 안심시켜 주기도 한다.

국가 건강검진 지정 병원이 아닌 덕에 내시경 환자가 많이 줄었다. 내시경이 고장나면 오래된 모델이라서 수리가 않된단다. 새 모델을 사자니 7천만원 정도 한다는데 요즘 같이 내시경 검사 수가 적으면 적자가 난다. 17년 된 내시경이 고장나면 내시경 검사를 접어야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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