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원 논설위원 / 신성대 교수

(신기원 논설위원 / 신성대 교수) 얼마 전 운전을 하다 겪은 일이다. 덕산에서 서산방면으로 달리는데 신호등이 초록색에서 노란색으로 바뀌었다. 달리는 속도가 있다 보니 정지를 하지 못하고 무심결에 그냥 지나쳤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커브를 도는데 앞에서 경찰관들이 차를 세우라고 손짓을 하였다. ‘아차’라는 생각과 함께 창피한 기분 그리고 ‘재수 없는 날 이구나’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경찰관이 다가오더니 도로교통법 제5조를 위반했다며 운전면허증을 달라고 하였다. “노란불에서 진입하였다”고 항변하였으나 노란불은 정지를 위한 예비신호이기 때문에 주행을 해서는 안된다는 충고성 답변만 되돌아왔다. 어쨌든 잘 봐달라며 운전면허증을 제시하였더니 뜻밖에도 「교통질서협조요청서」를 끊을 테니 앞으로는 신호등을 주의해서 운전하라고 친절하게 이야기 하였다.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를 세 차례나 하였다. 마치 횡재를 한 기분이었다. 경찰관들이 새삼 천사(?)같이 보였다.

필자의 경우 운전과 관련하여 문제가 되는 경우는 대부분 속도 때문에 발생한다. 운전하는 행태를 보면 시간여유를 가지고 목적지를 향해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빠듯한 시간 속에서 달린다. 그러다보니 갑자기 예상치 못한 지체현상이 발생하면 마음을 졸이고 과속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러다 속도위반딱지라도 날아오면 기분마저 상해서 하루를 망친다.

학교에 출근할 경우에도 서둘러서 미리 출발하기 보다는 일정한 시간이 되어서야 출발하다보니 어떤 때는 승용차의 계기판에 표시된 속도가 제대로 다 나오는지 실험하는 경우도 있다. 아직까지 큰 사고가 없어서 천만다행이지만 과속으로 달리다보면 갑작스런 상황에 대처하기가 어려워 사고가 나면 큰 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직감한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정규속도를 지키며 달리면 대체로 안전이 보장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속도를 내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인간에게는 질주본능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카레이스시합을 벌이는 선수들이나 불법으로 도로를 광란하는 사람들의 심리에는 이러한 질주본능이 숨어있다고 생각된다. 정보통신의 발달도 중요한 원인의 한 가지가 아닐까 싶다. 속도가 중시되는 정보사회는 조급성을 가져오고 이러한 심리는 결국 운전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결국 과속의 원인은 마음 때문이다. 성급하게 서두르는 마음, 남보다 앞서가려는 마음, 기다리지 못하는 마음, 시간여유를 갖고 출발하지 못하는 마음 등 이러한 마음이 과속의 주범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의 경우를 봐도 빨리 달리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는데 이는 성급한 마음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차분하게 기다리지 못하고 서두를 때 사고는 발생했다. 사실 과속을 해서 달린 경우와 제한속도를 지켜가며 달린 경우 목적지에 도달하는데 몇 분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실험결과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큰 손해라도 볼 것 같은 생각 때문에 과속을 하는 것은 우리사회에 만연한 ‘빨리 빨리 풍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산업사회에서 정보화사회로 넘어가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 강화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현대인의 관심을 끌고 있는 또 다른 주제는 ‘느림’의 미학이다. 음식과 관련해서는 ‘슬로우 푸드(slow food)’가, 삶의 철학과 관련해서는 ‘슬로우 시티(slow city)’가 강조되고 있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를 갖고 주위도 살피며 교통신호를 지키며 운전하면 과속도 안하고 기분도 상쾌해질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빨리’에 매몰된 나의 사고가 변해야 운전습관도 바뀔 것이다. 김형석교수의 ‘미리미리’와 ‘조심조심’을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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