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정

이혜정 <청주YWCA 사무총장>

당연한줄 알았다. 어두운 골목을 지나칠 때 불안한 것이 당연하고, 나이 들어 결혼 안 한 나에게 소위 집적(이 행동은 달리 표현이 안 된다)대는 남자들이 당연한 줄 알았다. 밤늦게 탄 택시에서 음탕한 수작을 거는 기사에게 친절하지 않은 방식으로 쏘아붙일 때, 목적지와 한참 먼 으슥한 곳에 내려주며 골탕을 먹여도 당연한 줄 알았다. 성희롱성 발언을 지적할 때 전혀 반성 없는 뻔뻔한 얼굴과 과장된 몸짓으로 ‘잘못 걸렸다’라며 크크 거리던 이들이 당연한 줄 알았다.
불쾌한 감정과 당황스럽고 황당한 상황에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 내가 당연한 줄 알았다. 이 모든 건 나의 특수한 상황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없지만 나에게 오는 불편하고 찝찝한 감정들을 그저 서랍에 감춰 놓거나, 혹은 같은 경험을 했을 이들과 아주 선정적인 방식으로 나누며 잠시의 스트레스를 푸는 게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최근 한 여성 검사가 상관인 남성 검사에 의한 성추행 사건을 공론화하면서 소위 ‘미 투(Me Too)’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이 운동에 동참한다는 것은 나의, 우리의 은밀한 경험은 여자이니 당연히 겪어야 할 통과의례가 아니라 그 사건이 엄연한 범죄행위였다고 고발하는 행위이다. 여성-피해자의식을 넘어서 주체적 행위자로서 존재하게 되는 일이다.
‘나도 그 경험이 있다’라고 고백할 때 사람들은 묻는다. 어떤 피해를 어떤 방식으로 당했느냐?, 큰 거냐?, 작은 거냐?.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당했는지에 대한 선정적인 내용이 아니라, 그동안 고백할 수 없게 했던 우리 사회이다. 여자가 “머리 나쁜 것은 용서할 수 있지만, 못 생긴 것은 용서할 수 없다”라는 농담이 사실상 농담이 아닌 뿌리 깊은 성차별적 가치의 선언과 기준이 되고 있다는 현실, 여자는 “곰보다 여우가 나아”라는 무심한 말은 “별 뜻 없이”. “무심코”, “여자가 행실이 그래서”, “옷차림이 그래서”, “술에 취해서” 등등 가해자들의 말이 용납되는 사회가 된다.
성희롱, 성폭력, 여성혐오의 말들이 오고가는 자리에서 마치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인냥 듣는 가해 남성부류가 있다.
같은 남자지만 그런 남자들은 용서할 수 없다고도 한다. 그렇게 자신하는 남자들에게 감동이라도 받아야하는가? 성차별의 언어와 문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까? 비정상적인 범죄적 행위가 한국적 관행으로 정상화되어 온 사회에서 성별로 우월성의 권력을 행사해 온 우리 사회에 어느 누가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문제제기는 여전히 상품화되고 소비된다. ‘미투운동’에 동참한 한 여성의 몸매를 품평하는 이 천박한 사회에서 인간으로서의 평등과 권리를 획득하는 과정은 그 까마득한 과거의 여성참정권의 요구만큼이나 지난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 곳곳에서 한국사회 곳곳에서 ‘미투운동’에 동참하는 나의 자매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보낸다. ‘모든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차별의 고리를 끊고자 치열하게 고백하는 나의 자매들에게 용기를 얻는다. ‘나- 역시’ 그리고 이 모든 일은 ‘우리’의 탓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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