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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에세이-다국어책 코너의 기억
동양 에세이-다국어책 코너의 기억
  • 김미희
  • 승인 2018.02.06 22: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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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희 <옥천교육지원청 장학사>
김미희 <옥천교육지원청 장학사>

Kelly는 도서관 직원이었다.

2004년에 미국의 모 대학에서 어린 두 아이들과 함께 늦은 유학 생활을 시작하던 나는 생존, 보육, 학업의 세 바퀴를 굴리느라 허덕이며 지내고 있었다.

몇 달 후 집근처 시립도서관에 우연히 들렀을 때 처음 만난 Kelly는 우리를 다국어책 코너로 안내해 한국어책들을 보여주었다. 영어에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우리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 반가웠고, 오색빛깔 다국어책 사이에서 반짝이던 한글은 주눅 들었던 어깨를 펴주었고, 목말랐던 배움에 단비를 내려주었다. 

대학원생이었던 우리 부부는 자원봉사자와 함께 주 2회 1:1영어 수업을 하였고, 초등 1학년 딸은 Storytelling 수업을, 4살 아들은 동화캐릭터로 가득 찬 책 놀이방에서 노느라 우리 가족은 도서관을 제 집 드나들 듯 하였다.

대출 책 수의 제한이 없고, 내 집처럼 편안한 의자, 공간 배치, 영아부터 노인, 그리고 노숙자부터 가족까지 아우르는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은 도서관에 대한 내 생각의 강둑을 무너뜨렸다. 특히 매년 큰 강당에 수많은 책들을 쌓아놓고 1달러 양동이를 사면 누구나 책을 양동이 가득 담아 갈 수 있는 행사는 그 어떤 독서교육보다 감동적이었다.

어느 날 Kelly는 나를 자신의 모임에 초대하였다. 도서관 가족실 문을 열자 한국 아이를 입양한 열다섯 가족들이 일제히 환호를 하며 박수를 쳐 주었다.

한국 아이를 입양한 지 10년 만에 딸에게 한국어 동화를 들려주게 해주었다며 눈물을 글썽이는 미국엄마에게 정신을 빼앗겨 나는 그만 2주일에 한번 한국어 동화책을 읽어주겠다고 그들에게 약속하고 말았다.

당시 내가 읽어주었던 첫 동화책이 ‘비빔밥(Bibimbob)’이라는 동화였고, 책 읽고 함께 만들어 먹은 비빔밥은 참 맛있었다.
2006년 학위를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동화책 읽어주기는 계속 되었다.

도서관은 책만 읽는 곳이 아니었다. 도서관은 만남의 장이었다. 서로 다른 언어가 만나고, 서로 다른 사람이 섞이고, 서로 다른 배움이 비벼지는 비빔밥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 동네 도서관 구석에 있는 다국어책 코너를 볼 때마다 누군가 자신의 모국어 책을 찾아보진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오래전 내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동네 도서관에 갈 때마다 다국어책 읽어주기 행사가 있지는 않을까 하고 기웃거려 본다. 오래전 내가 우리 아이들과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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