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오계자

(동양일보) 살면서 뇌와 가슴 그리고 몸에 활력이 넘치는 젊은 시절은 참 단순하게 기계적인 삶을 살아 온 것 같다. 이미 떠난 시간에 연연하지 말고 그 시간들을 머리맡에 두고 현재의 시간을 조리하겠다는 마음으로 그때 그 시절 나에게 부족했던 부분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역시 배품에 인색했던 것 같았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봉사활동이다. 지체부자유 장애인인 내가 몸으로 하는 일은 못 한다. 청주법원 민원실에서 민원안내 봉사도 하고 국립청주 박물관 유물 해설 자원봉사를 오랫동안 하다가 슬슬 명칭이 떠오르지 않는 증세가 있어 그만두었다. 마침 청주시에서 시민 1인 1책 만들기 사업에 강사 모집이 있어 응모했고 강사 위임을 받았다.

당시 통장회의 하는 곳에 찾아가서 70~80대 어른들이 살아오신 한 맺힌 사연들 책으로 엮어보자고 했다. 끄덕끄덕 긍정적이지만 “내가 어떻게 글을 쓰고 책을 감히 욕심 내.” 하셨다.

“그냥 그때는 그랬지” 하시며 들마루에 앉아서 옛이야기 하듯 써오시면 컴퓨터에 옮겨드리겠다고 약속도 했다.

할머니들이 밤늦게까지 눈물로 써오신 편지지의 글을 타이핑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닦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도저히 못하겠다는 어느 할머니는 “겨우 잊고 살던 얽히고설킨 한 덩어리들 꺼내려다가 어제는 숨이 막힐 만큼 서러움이 북받쳐서 울다보니 날이 새잖아요, 나 도저히 못 하겠어요 옛날 생각 더하면 병 날 것 같아요.” 그래서 포기한 할머니시다.

가끔은 젊은 사람들이 부모님의 어렵게 사시던 과거사를 책으로 엮어드리겠다고 한 편 한 편 옛이야기 듣고 써 올 때는 이렇게 젊은이들에게 어른들의 삶을 알림으로 효심은 물론 절약 정신과 가족애가 생긴다는 것도 느꼈다.

내가 가장 보람으로 느끼고 이 사업을 추진하는 청주시 직지 사업부에 박수를 드리고 싶은 예는 다음의 경우다.

한 가정에 먹구름을 걷어내고 행복을 불러 온 보람된 사연이다. 젊은 시절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두문불출하시던 80대 어머니가 하나뿐인 아들의 군대시절 보낸 편지를 아들이 한 아름 안고 나를 찾아 왔다.

그것은 단순한 편지가 아니라 어머니의 진이었다. 소나무의 송진보다 더 진한 어머니의 진. 반세기 전 교사였던 어머니의 가슴을 누가 감히 짐작이나 할까. 그 편지를 그대로 스캔을 받으니 흐려서 옆쪽에는 워드로 쳤다. 편지 글 그대로 맞춤법 띄어쓰기 격식 다 벗어놓고 어머니의 글 그대로 타이핑만 했다. 표지는 어머니의 얼굴 캐릭터로 했다.

책이 완성 되었을 때 두문불출하시던 그분은 외출을 시작하셨다. 매일 책을 끼고 지팡이에 의지해서 경로당엘 가시니 하루하루 건강도 좋아지셨다. 결혼한 지 오래 되어도 아기가 없어 기다리던 집안에 어머니가 좋아지시니 며느리는 임신을 했다. 건강하고 똘똘하게 자라고 있는 손자 덕분에 가정에 웃음소리도 난다.

청주시에서 얼마나 보람 된 일을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어제 모 기자가 이분들의 책에 대해 맞춤법도 엉망이고 어쩌고 하면서 그 소중한 진액을 쓰레기라고 했다. 그들이 가장 보람으로 여긴 열매를 쓰레기란다. 뭐 눈엔 뭐만 보이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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