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 레스토랑 아침 식사. 차려놓은 음식을 먼저 먹으려고 달려드는 파리 땜에 식탁보를 검정비닐로 고른 것 같다. 플라스틱 통 윗부분 자른 걸 우유 잔으로 무한 반복해서 쓰는 게 그들 생활 습관이다.
김득진 작가

 쿠바 정부가 주관하는 브리가다 캠프는 패키지 관광이라 보는 게 옳다. 값싼 대신 손수 캠프장 청소며 페인트칠을 해야 한다. 거기다가 농사일도 버젓이 일정에 잡혀 있다. 오십 년 된 트랙터가 식사 끝낸 대원들을 실어 농장에 부려 놓는다. 입 무거운 관리인 손짓 따라 잡초 뽑거나 채소 수확에 내몰리는 데다 씨 뿌리기 좋으라고 밭 일구는 일도 대원들 몫이다. 허드렛일에 지나지 않지만 일정표에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바뀌어 있다. 말이 체험이지 닷새를 그렇게 흘려보내면 진이 빠진다. 가이드 따라 쇼핑센터 끌려 다니듯 짜증이 날 무렵 유기농으로 길러 푸릇푸릇한 채소가 거친 말 만들어내려고 꼬물거리던 혓바닥을 헹궈준다.

쿠바에선 먹고 죽으려 해도 농약이 없고, 유기농 채소보다 화학비료나 농약 친 게 훨씬 비싸다. 원조해 주던 소련이 발을 떼고부터 왕따 신세가 된 나라, 미국의 무역 제한 정책 때문에 농약이며 비료를 구할 수 없었다. 힘 모아 어려움 이겨내자고 특별시기라 한 뒤 머리를 짜서 전 세계의 유기농법을 받아들였다. 천 가지 넘는 지렁이를 수입해 기른 다음 밭에 흩뿌려 지력을 높였고, 간작으로 허브를 심어 해충을 물리쳤다. 비료에 길들여졌던 땅은 지렁이와 천적 덕분에 땅 힘을 되찾았다. 도시농업과 유기농법이 바탕 된 소규모 자급자족 시스템인 오르가노포니코가 정착된 순간이다. 쿠바의 3대 특산품이 유명해진 건 농사 손쉽게 해 주는 화석에너지와 화학비료를 멀리한 결과다.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커피, 시가, 설탕이며 파생 상품은 특별시기를 지나면서 더욱 순도가 높아져서 건강 증진에 큰 역할을 해냈다. 거동이 가능하면서 오래 사는 국민이 늘어 신장수국가라 불리게 된 건 눈물겨운 성과다.

순무, 당근, 고구마, 토마토는 밭에서 직접 뽑았으니 믿을 수 있지만 레스토랑 위생은 영 아니다. 요구르트 병마개 부분을 잘라내고 무한 재활용 하는 건 애교에 속한다. 파리 천국인 홀, 오렌지나 구아바 주스 담아 둔 주황색 플라스틱 통이 까맣게 보인다. 그걸 감추려고 테이블에 검은 비닐을 깐 것 같다. 식사 시간에 조금 늦게 가면 망고며 구아바 주스가 바닥나 버린 뒤다. 수북 쌓아뒀던 오이, 수박, 당근, 채 썬 양배추는 새까맣게 앉았던 파리가 다 먹어치운 것 같다.

어떨 땐 포크나 수저도 없어서 당황스럽다. 설거지 하는 여자나 배식하는 남자 손놀림은 아침 식사 끝나기 전 점심 준비해야 할 정도로 느려 터졌다. 하지만 서비스 나쁘다고 투덜거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주스가 떨어지면 카페에서 콜라나 맥주를 사 오는 걸로 봐서 레스토랑 관리인과 카페 주인 사이에 어떤 짬짜미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 흔적이 어디에도 드러나지 않는 게 미심쩍지만, 혁명의 도구는 유기농 재배를 위해 기르는 지렁이 종류만큼 많다.

레스토랑은 누구나 하루 세 번 들르는 곳이다. 배고프지 않아도 때가 되면 먹어야 하는 게 인간 본능이니까. 먹고 비우고 씻는 게 순리인데 뒤처리 할 때마다 적게 먹어야지, 다짐한다. 볼일 본 뒤 휴지로 닦으려면 머리로 문을 밀지 않고선 공간이 확보되지 않는다. 변기 레버마저 고장 나서 페인트 통에 물을 받아 내리는 동안 얼굴은 변색으로 바뀌고 만다. 그럴 때 대략난감인 백인과 달리 흑인의 표정이 덤덤해 뵈는 건 조상 잘 둔 덕분이다. 샤워장 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수용 인원을 예측 못 한 건지 샤워꼭지에서 떨어지는 물은 아기 오줌 같다. 졸졸 흐르는 걸 지켜보고 서 있으면 이러려고 여길 왔나 한숨부터 난다. 웃통 벗어 젖인 채 숨 막히는 샤워장 벗어나 세면장으로 간다. 그나마 낫다는 세면장마저 빨래하는 여자 대원들 눈치를 봐야 한다. 그들이 ‘두차!’ ‘두차!’ 라며 손가락질 하는 걸 보면 샤워장 놔두고 여기서 왜 이러느냐는 뜻이다. 궁핍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허기진 사람 심정을 알 턱이 없다. 날마다 마주쳐야 하는 뒷일 걱정이 레스토랑 들어서면 까마득 잊히는 건 신기하다. 갓 수확해서 푸른 물 뚝뚝 떨어지는 유기농 채소를 보고서 폭풍 흡입 욕구 억누른다는 게 쉬운 일인가. 거기다 곁들이는 돼지고기, 닭고기라면 복부지방으로 바뀌기 전에 배설될 게 확실해서 포크를 쉬 내려놓지 못한다. 며칠 동안 꾸역꾸역 먹었더니 임신 오 개월 같지만 맘만 먹으면 금세 되돌려 놓을 수 있겠다고, 유기농 재배의 보이지 않는 힘은 자신감으로 옷을 바꿔 입는다.

부실하고 불결하게 레스토랑 관리하던 직원들도 휴일은 꼬박꼬박 챙긴다. 전 세계 30여 나라 사람들을 불러들인 메이데이, 출근하는 직원이 아예 없다. 아침 식사 시간에 맞춰 레스토랑에 갔더니 몇 가지 과일과 푸석한 빵이 놓여 있다. 모르긴 해도 캠프 운영자들이 식당 직원 대신 아침 준비를 했나 보다. 내리쬐는 땡볕과 허기와의 싸움은 휴일 다음 날까지 이어질 게 뻔해서 혁명 전적지 가까운 호텔로 캠프를 옮겨 온 모양이다. 덕분에 스페인 전통 요리 어린 돼지 바비큐를 맛보니 보너스 탄 기분이다. 여러 가지 술과 파스타 곁들인 식사에다 스페인 전통 요리 어린 돼지 바비큐 특식을 먹으니 보너스 탄 듯 쾌감이 밀려든다. 하지만 씻으려고 화장실 들어서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호텔이지만 물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아서다. 변기 물 내리려고 갖다 둔 페인트 통 채워지길 기다리는 동안 코 고는 소리 들려오는 건 천만 다행이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