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주 희 논설위원 / 침례신학대 교수

‘페니스 파시즘’이란 책에서 노혜경은 ‘상처의 핵심은 침묵당함이다. 그것도 자발성을 가장한 침묵이다.’라고 말한다. 모든 상처입은 이들은 침묵할 것을 암묵적으로 강요당한다. 그것은 때로 용서하라는 명제로 등장하기도 한다. 개인 뿐 아니라 집단일 때도 상처는 침묵을 강요당한다는 데서 온다. 글에서는 상처 입힌 자를 드러내지 않는 방법으로 상처를 가리기도 한다.

 

“고등학교 다닐 때/버스 안에서 늘 새침하던/어떻게든 사귀고 싶었던/포항여고 그 계집애/어느 날 누이동생이/그저 철없는 표정으로/내 일기장 속에서도 늘 새침하던/계집애의 심각한 편지를/가져 왔다//그날 밤 달은 뜨고/그 탱자나무 울타리 옆 빈터/그 빈터엔 정말 계집애가/교복 차림으로 검은 운동화로/작은 그림자를 밟고 여우처럼/꿈처럼 서 있었다 나를/허연 달빛 아래서/기다리고 있었다//그날 밤 얻어맞았다//그 탱자나무 울타리 옆 빈터/그 빈터에서 정말 계집애는/죽도록 얻어맞았다 처음엔//눈만 동그랗게 뜨면서 나중엔//눈물도 안 흘리고 왜/때리느냐고 묻지도 않고/그냥 달빛 아래서 죽도록/얻어맞았다//그날 밤 달은 지고/그 또 다른 허연 분노가/면도칼로 책상 모서리를/나를 함부로 깎으면서/나는 왜 나인가/나는 왜 나인가/나는 자꾸 책상 모서리를/눈물을 흘리며 책상 모서리를/깎아댔다(박남철, ‘첫사랑’)”

 

첫사랑을 얘기하겠단다. 제목으로 내 걸었으니. 버스 안에서 등하교길에 마주치는 여학생(첫사랑의 대상을 계집애라고 지칭하는 이 시적 주체는 쫄보 마초일지)이 마음에 들어 어떻게든 사귀고 싶었고, 일기장에 그 마음을 적어두기도 했단다. (이 대목에서부터 수상한 조짐은 보인다. ‘꼭’ 사귀고 싶은 것과 ‘어떻게든’ 사귀고 싶은 건 다르지 않을까.) 밤 달이 떴고,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는 빈 터(공터라고 예전에는 흔히 부르던, 사람 없고, 종종 우범지대가 되기도 하는)에 여학생이 기다리고 있었단다. (그렇게 사귀고 싶던 여학생이었는데 어째 그녀가 먼저 와서 교복차림으로 여우처럼 꿈처럼 서있었어야 했는지. 시적 주체는 사귀고는 싶지만 먼저 나가지는 않는 성품인지, 수줍음이나 망설였다고 쳐주더라도. 여학생은 그런 게 없었을까.) 여기까지는 그냥저냥한 소년소녀의 첫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풀려나갈 법도 하지만 갑자기 그녀가 얻어맞는 괴담으로 흐른다. 얼마나 급작스러운 일인지 ‘눈만 동그랗게 뜨면서, 눈물도 안흘리고, 왜 때리느냐고 묻지도 않고’ 달빛 아래서 죽도록 얻어맞았다고 한다. 이런 시적 주체의 교활함이라니. 포항여고 여학생을 누가 때렸는가. 갑자기 시적 초점을 바꿔버리는 것이다. 내가 때렸다가 아니라 계집애가 맞았다고, 마치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러서 맞은 것처럼. 시는 첫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인 데이트 폭력를 말하고 있다. 시인의 한심함이라니, 폭력도 사랑에 들어간다는 말인가. 이런다면 모르는 남녀가 만나서 알아가고 사랑하고 연애 하고 결혼도 하는 인생의 긴 이야기들이 가능해질 것인가.

행위의 주체를 바꿔버리는 서술의 교활은 어디에나 있다. 그 교활은 익숙함과 안정이라는 외피를 두른다. 이 시의 결말을 보더라도 그는 돌아와 또 다른 폭력을 행사할 뿐 일상의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는다. 심지어 면도칼을 꺼내 책상 모서리를 깎는다. ‘나는 왜 나인가’ 폼 잡고 질러대면서, 이 장면은 분조조절에 실패한 정신적 불안정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읽을 수 있는데 시라는 이름만 들이대면 우리는 이상하게 거기서 진리 같은 걸 꺼내들려고 애를 쓴다.

문제는 이 정서가 아직 미숙한 십대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른이 되어 시인이라는 타이틀까지 달고 어린 시절 얘기를 ‘첫사랑’이라고 쓰고 있다면 그 때 그 행위에 대한 안타까움, 상대에 대한 미안스러움 정도는 바탕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죽도록 얻어맞은 애, 포항여고 그 계집애라고 불린 데이트 폭력의 희생자는 어디에 있을까. 그 기막힌 상처를 어떻넘어서서 누군가를 사랑해 보기나 했을까. 이런 류의 시에는 자기 연민이나 들어있지 반성도 관계도 빠져있다. 단지 폭력성의 과시이며 자기 연민에 불과하다. 희롱을 당했다는 상처받음의 미투에 더해 부지불식간에 잘못을 저지른 이들의 참회와 반성의 미투도 일어나야 하는 것 아닌가 시를 보며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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